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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Aug 06. 2019

아름답게 부담스러운 맛

레몬 머랭 컵케이크 

 남자 친구의 집이 있는 캐나다에서 2주가 좀 안 되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숨 막히는 서울의 공기와 길을 벗어나, 눈에 보이는 것의 구 할이 나무이거나 바다, 강, 하늘... 인 곳. 내가 정확히 뭘 하게 될지, 어떤 것들을 보게 될지 모른 채, 아무런 계획 없이, 총 16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갔다. 여행 후, 구체적인 영감과 다짐 같은 것들은 없었다. 그보다는 내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지, 무엇을 우선순위로 하고 싶은지 와 같은 정확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고 왔다. 동시에 이 동기 부여가 집으로 돌아와 조금씩 사라져서 또 중간 정도의 삶에서 기쁨을 찾아 만족하는 삶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슬픈 예상도 해보며. 

 오래전엔 여행을 떠나면 빨리 집에 오고 싶었다. 좀 지겹고 피곤했다. 최근엔 여행을 가면 찾아간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눌러앉을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아, 좀 더 무리하더라도 하루 이틀 더 있도록 계획해볼걸 그랬나. 

 오랜만에 베이킹을 할 때엔 막막해진다. 만들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벅찬 마음 때문에 집중을 못하거나, 밀린 일중 뭐부터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재료를 어렵게 찾아야 하는 것은 싫고 그동안 안 했던 것을 하자니 아이디어는 없고 해서... 내가 아는 것을 구성만 다르게 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레몬 머랭 컵케익을 만들었다. 새로 산 토치도 시험해볼 겸. 


 


내가 믿고 좋아하는 책 Odette Williams의 'Simple Cakes'에서 바닐라 케익과 마시멜로우 아이싱(머랭) 레시피를 가져왔고 컵케익 속 레몬 커드는 Dori Greenspan의 'Baking Chez Moi'의 레시피를 사용했다. 

 'Simple Cakes'의 레몬커드를 시도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변수(아무리 끓여도 커드가 커드가 되지 못하는 미스터리) 때문에 결국 이전에 해본 레시피로 다시 만들어야 했다.  이번에 한 베이킹에서 마음에 든 점은 컵케익이 딱 9개만 만들어졌다는 것이겠다. 낭비하는 결과물들이 줄어들고, 나중에 45개의 컵케익을 만든다면 어떤 레시피를 써야 할지도 알게 되었고.


 


  머랭은 아이싱이 되기엔 솔직히 너무 달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바닐라 케익이 있어서 조금 부담스러운 맛이지만 , 레몬 머랭 파이라는 것이 그냥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머랭과 레몬커드는 서로의 존재로 인해 빛나는 요소들이다. 달고 어지러운 구름을 쩍 가르며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햇빛 같은 맛. 팔자 눈썹이 된 얼굴을 부르르 떨며 이 멋진 맛을 거부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몸짓이 바로 레몬커드의 힘이다.  

 이 살짝 그을려진 머랭의 모습을 그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이 아름답게 부담스러운 맛을 컵케익으로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케익이나 파이였다면 한 조각이 꽤 부담스러웠겠다. 




 이런 구체적인 맛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디저트 클럽을 만들어 볼까 생각한다. 한 달에 두어 번 ,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내가 만들어온 케이크나 파이 등을 나눠 먹고 두 시간 내로 헤어지는 클럽이고, 클럽 멤버가 아니면 한 입도 맛볼 수 없다. 가입 조건은 구체화해야겠지만 디저트를 좋아하는 것은 물론, 구체적으로 디저트에 대한 자기만의 입장이 있다면 좋겠다. 디저트를 식후에 먹는 treat이라는 개념으로만 생각한다면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5-6 명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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