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연 Jun 30. 2019

엄마가 맛있다고 한 피칸 파이

 


내가 좋아하지 않지만, 남이 먹을 음식이나 디저트를 만드는 것에는 어떤 정신적 초능력을 발현해야 한다. 그 초능력이 어려운 것은 아니고, 한번 발현되면 당신은 그 zone에 머무를 수 있다. 생선 냄새를 끔찍해하지만 자식을 위해 기어코 아침상에 생선구이를 내어놓는, 미간에 주름진 엄마가 가진 능력과 비슷하다. 그 엄마는 원수 같은 사춘기 자식새끼가 유난히 생선 구이를 다른 반찬보다 열심히 집어 먹는 것을 지나가듯 보았다. 역시 저 계집애는 삼치를 구워 놓으면 쳐다도 안 보더니, 어쩌다 한번 사본 비싼 제주 갈치 구워 놓으니 반만 먹던 밥을 다 먹는다. 그래서 비싸도 다음 주에 또 사보는 것이다. 그런 초능력이다.  


   파이나 케이크의, 자르지 않은 홀 whole 상태의 모습이 주는, 풍족하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만든 것을 통째로 받는 이에게 보내버린다.  맛도 못 보고, 눈 질끈 감고 내보낸다. 좀 망한 것 같다고 판단하여 아쉽게 보낸, 처음 만들어 본 피칸 파이에 대해, 엄마가, 그게 되게 맛있었고 나는 그게 좋아, 맛있어,라고 한지 몇 개월이 지나 다시 만들어서 보낸 피칸파이도 역시 맛있었다고 했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며, 칭찬을 찾아다니는 어린애에서 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물론, 스트레스가 있는 환경에서는 남 기분 생각보다는 내가 가진 불만을 반드시 잔인한 말로 다채롭게 묘사해야 하는 나쁜 버릇을 고치려면 아직 멀었다.

  작은 대답, 표현 하나가 가진 힘은, 말을 이리저리 막하는 사람에게서도 , 한마디도 어렵게 하는 사람에게서도 다 나온다. 농담은 거짓을 가장한 진실이고, 마음을 벗어난 말은 잘 없다.

 단순해도 디테일한 피드백은 나에게 큰 영향은 준다. 나와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게 도와준다. 이래서 커플 간의 대화가 중요하다고들 하는 것일까. 오늘따라 본론으로 가는 것이 참 어렵다. 코앞에 있는데.

    단순히 말해, '단 하나의 맛 감상과 칭찬으로도 당신은 나의 중요한 손님이 됩니다’. 어려운 일도 쉬워지게 하는 것이, 잊지 않고 해주는 정확한 감상이다. 엄마는 그래서 이미 오래전부터 재녀베이크의 VIP이고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만든 것들을 쉽게 얻어먹을 수 있다.

  

 피칸파이를 처음 만들었을 때, 생각이 많으면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 말도 안 돼, 이게 파이가 된다고? 의구심의 물음표가 온몸을 감싸고도는 그 기분을 지나, 그것이 다 식어 피칸파이가 정말로 되어버리는 그 상황에서 오는 자기 성찰. 나에게는 달리 종교가 필요하지 않다. 나에게는 하루하루 해야 하는 순간의 결정들, 걱정과 해소가 명상이고 깨달음이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트라우마만큼 강한 괴물이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예쁘게 포장된 해석이고, 그 감각이 못나지면, 알지도 못하면서 이럴 거라 예상하는 '자만' 이 된다.

  열심히 끓인 피칸 필링이 아직 물 같은데, 벌써 다 되었다니, 일단 파이 셸에 부으래서 부었는데 큰일이고 걱정이다.  굽는 시간은 끝나가는데 오븐을 자꾸만 열어가며 아직도 출렁이는 파이 필링을 보며 걱정. 그래도 맞다고 하니 일단 식혀는 본다. 엄마가 맛있다고 말한 후에야 파이 만들기는 끝난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타르틴 베이커리의 창립자 둘이 함께 쓴 'Tartine'에 나온 메이플 피칸파이 레시피를 베이스로 했다. 메이플 시럽 대신 꿀을 사용하려 한다면 조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꿀은 가열되었을 때 특유의 향이 나는데 그게 항상 좋지만은 않다. 혹여나 Golden Syrup 이 있다면 추천! 그러나 일단 한국에서 구하기엔 메이플 시럽이 훨씬 용이하니 맛있는 파이를 위해 준비해놓길.

 이 레시피는 믹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롤링핀과 오븐, 파이 접시만 있다면 만들 수 있다.


Pecan Maple Pie

from <Tartine> by Elisabeth M. Prueiti & Chad Robertson (Chronicle Books 2006)

상기 책에서 발췌 후 번안된 레시피입니다.


*레시피를 적고 나니 상당히 기네요. 파이 도우를 성형하는 과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말 어렵지 않습니다. 한번 해보고 나면 쉬워요. 꼭 만들어보세요!


Ingredients 재료

Pie Shell 파이 셸 (미리 구워 식혀 놓습니다)  

소금 1 tsp

아주 차가운 물 2/3 컵 (150ml)

(물에 소금을 섞은 뒤 냉동실에 잠시 넣습니다.)

다목적 중력분 3컵 + 2 Tbsp (455g)

무염버터, 아주 차가운 상태 1컵+5 Tbsp (300g) : 차가운 상태의 버터를 1.5cm 정도로 깍둑썰기 해서 다시 냉장해놓습니다.


*버터 양을 컵으로 계량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베이킹을 할 때는 전자저울을 가지고 계셔야 편합니다.  


Pecan Filling 피칸 필링

설탕 3/4 컵 (150g)

메이플 시럽 (이것 아니고, 이런 것임) 1/2 컵 (155g)

옥수수 시럽 (물엿: 옥수수가 그려진 것) 165g

소금 1/2 tsp

무염 버터 1/4컵 (55g)

바닐라 익스트랙트 1 tsp

달걀 3개 살짝 풀어준 것

피칸 2 cup (285g)


달걀 주의사항
*저는 언제나 제가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달걀을 사용합니다. 시중에 왕란이라고 되어있는 것을 찾으시면 되는데 이건 대란이나 특란 보다도 큰 중량입니다. 보통 많이 사는 달걀은 52g 정도 되는 중량이고 왕란은 68g 이상입니다. 미국 레시피는 주로 이 왕란을 기준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작은 달걀을 쓰면 , 레시피의 달걀 개수가 늘어날수록 편차가 커집니다. 달걀 양이 아주 중요할 경우 g으로 표기하기도 하니 레시피를 주의 깊게 보시길. 다행히도 우리 집 앞 슈퍼에서는 이 왕란을 살 수 있어요.



Method  방법


파이 셸 만들기

1. 차가운 물에 소금을 넣고 잘 섞은 뒤 냉동실에 넣어둔다.

2. 믹싱볼에 밀가루를 담고, 잘라 냉장시켜놓은 버터 조각들을 밀가루 위에 흩뿌린다.

3. 서로 붙어있는 버터 조각들을 떼어내어 버터 표면이 밀가루로 코팅되도록 가볍게 손으로 토스하듯 믹스한다.

4. 페이스트리 블렌더, 또는 칼 두 개를 이용해 밀가루 믹스 안의 버터들을 잘게 자르듯 믹스한다. 가장 큰 버터 조각들의 사이즈가 완두콩 정도가 되고 밀가루가 거칠게 믹스된 느낌이 될 때까지 믹스한다. 덩어리들이 균일할 필요는 없다.


5. 차갑게 해 놓은 소금물을 따라 넣고 포크로 이리저리 돌리고, 또 섞어가며, 투박한 반죽 덩어리가 되도록 믹스한다. 덩어리이지만 곱고 부드러운 표면은 아니다. 반죽 안에 버터가 조금씩 보이는 정도.

6.  밀가루를 소량 뿌려 놓은 작업대에, 반죽을 놓고 반으로 나눈다. 두 개의 덩어리를 1" ( 2.4cm) 정도의 동그란 디스크 형태로 성형한다. 랩으로 꽁꽁 싸서 최소 2시간 또는 하룻밤 정도까지 냉장한다.



파이 도우 롤링하기(성형)

7. 차가운 도우를 꺼내 밀가루를 뿌려놓은 작업대에 올리고, 롤링핀(밀대)을 이용해 밀어준다. 처음에는 딱딱해서 민다기 보단 중심을 꾹 누르듯 시작해야 한다. 파이도우를 밀 때는 동그란 디스크 형태에서 한번 꾹 누르듯 밀고 45도 정도 회전해서 밀고 또 45도 회전하여 미는 식으로, 전 방향으로 골고루 밀어야 한다. 이렇게 회전하며 밀어주지 않으면 한쪽으로 긴 도우가 되어 버릴 수 있다. 도우 안에 버터가 녹아 손에 묻는 느낌이 들면 밀가루를 조금씩 뿌려가며 민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알았겠지만, 파이 도우는 재료를 차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도우를 밀 때는 손으로 오래 만지거나 망설이지 말고 힘내서 빨리 미는 게 좋다.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는다. 연습하면 본능적인 감각이 생긴다.

8. 도우 두께가 4mm 정도가 되면 15분 정도 다시 한번 냉장한다.


7.  냉장해놓은 도우를 꺼내 작업대에 올려놓고 파이 접시보다 5cm 정도 큰 원으로 자른 뒤, 파이 접시 위에 올려 손으로 가볍게 눌러 접시에 빈 공간에 없이 꼭 맞게 도우를 밀착시킨다. 접시 밖으로 나온 도우는 접시 안의 도우 밑으로 말아 넣어준다. 자연스러운 테두리 두께가 생긴다. 테두리 모양을 내주고  30분간 냉장. 오븐을 190도로 예열한다.


*테두리 모양내기: 도우 안쪽에서 바깥을 향하도록 검지로 밀면서, 동시에 반대 손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바깥에서 안으로 밀어 꼬집듯 하는 동작으로 산 모양을 만들어준다. 테두리 전체를 돌아가며 반복. 이런 모양내기도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이것을 Crimping​ 이라고 부른다. 검색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굽기: 상부 파이셸을 얹기 전에 아래 도우를 먼저 완전히 굽는 방식이므로 미리 준비한다.

8. 냉장해 놓은 파이 셸에 베이킹 페이퍼를 넣고 누름돌을 넣는다. 종이를 완전히 잘게 구겨주면 종이가 부드러워져 파이셸의 모양으로 누름돌이 더 자연스럽게 담긴다.


9. 오븐에 넣고 25분 정도 굽다가 종이를 살짝 들어 확인했을 때 파이 셀의 테두리가 연 갈색을 띠면 파이셸에서 종이와 누름돌을 꺼낸 뒤 다시 파이 셸을 넣고, 5분 정도 황금빛으로 노릇해질 때까지 더 굽는다.

* 오븐에 따라 편차가 심한 편이니 자신의 눈을 믿고, 25분이 지났는데도 아직 색이 연하다면 계속해서 굽는다. 종이와 누름돌을 꺼내고 난 뒤 다시 구울 때, 중심부에 비해 테두리 색이 너무 빠르게 어두워지는 것 같다면 쿠킹 호일을 한 장 얹어놓는다.

10. 다 구운 파이 셸에 열감이 없을 때까지 완전히 식힌다.






피칸 필링 만들기+굽기


1. 지름 23cm 이상 냄비에 설탕, 메이플 시럽, 옥수수 시럽, 소금을 모두 넣고 중간 불에서 끓인다. 팔팔 끓기 시작하자마자 거기서 1분 정도 계속 끓이다가 불을 끈다.

2. 거기에 버터를 넣고 섞어 녹인다.

3. 실온이 되도록 식힌다. 냄비가 뜨거우니 다른 용기 담아 식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식히는 동안 오븐을 176도로 예열한다.

4.  다 식은 설탕 시럽 믹스에 달걀과 바닐라를 넣고 믹스한다. 피칸도 넣고 잘 믹스한다.

5. 만들어 놓은 파이 셸에 피칸 필링을 부어준다. 여전히 상당히 묽은 느낌이 들 테지만 맞는 현상이다.



6. 파이를 오븐에 넣고 40-60분 정도, 다은 피칸 필링에 굳기가 생긴 정도로 굽는다. 중심부를 눌렀을 때 물렁하게 베개를 누르는 느낌이 드는 정도. 표면이 너무 빨리 구워지는 것 같다면 쿠킹 호일을 한 장 덮어준다.


7. 다 구워진 파이를 식힘망에 얹어 완전히 식힌다. 냉장하여 일주일 정도 보관 가능.


* 사용하고 남은 파이 도우 하나는 다음 파이를 만들 때 편리하게 쓰면 된다. 미리 밀어서 파이 접시에 (위 7번 과정) 얹어 냉동하여 두 달 정도까지 보관 가능하다.  

 








 





작가의 이전글 마크 로스코 케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