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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Mar 05. 2019

혼자 미국식 베이킹을 한다는 것.

1년 차 홈 베이커의 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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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하고도 두 달 전 지금 사는 합정동의 작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 원룸 형태의 오피스텔에서는 생각할 수 없던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사를 한 후 우리(나와 나의 파트너)는 작은 부엌을 개선하기 위한 툴들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아래에 수납공간이 있는 높고도 널찍한, 나무 상판의 아일랜드 테이블,

그리고 컨벡션 오븐.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30여 년간 나는 언제나 미국식 빵과 케익를 좋아하고 디저트 메뉴를 보면 심장이 뛰는 사람이었다. 한 번도 베이킹을 해보지 않았지만 나는 빵과 과자의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왜 안 했는지에 대한 답은, 오랜 시간 내가 가지고 있던,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아주 쉽게 나온다. 해보지 않은 일은 나와는 다른 차원의 일이며 엄청난 세상이라고 믿는 경외감과 '직면'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10여 년 전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다가, 패션 디자인을 할 수 있겠다고 마음먹었던, 꼬박 새워 고민했던 그 밤을 돌이켜 보겠다. 학교를 자퇴하고 유학 준비를 하던 중 같은 대학에서 의상을 전공한 친구의 졸업 쇼를 보았다. 너무 형편없어서 말 그대로 '저건 나도 하겠다'라고 생각했고 때마침 한 패션 디자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후세인 샬라얀과 마르지엘라의 옷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런 거라면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패션은 나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왜? 미싱과 패턴을 모르니까. 그런데 문득, 패션을 전공한 내 친구들이라고 처음부터 다 할 줄 알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을 새우고 이 생각에 다다른 뒤 아침이 왔다.

그렇게 내 인생이 갑작스러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고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순수하게 행복하고 열정적인 몇 년을 보냈다.

 '해보면 된다'는 간단한 만트라는 이렇게 비싸고 오래 걸리는 경험을 통해 얻어졌다. 그래도 본래 타고난 기질이라는 건 참 무서워서 살면서 종종 잊기도 하는 비싼 나의 교훈.

나의 파트너는 가벼운 부상 때문에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던 한 가지 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정말 많은 시간을 다른 것으로 채워야 했던 그는 결과적으로는 요리를 쉽게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좋은 도구와 비싼 주물 냄비도 생겼다. 셀 수 없는 스파이스와 식재료들은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받은 자극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나도 베이킹하고 싶어'라는 투정에 '하면 되잖아'라는 그의 답에 무슨 할 말이 있었으랴. 부엌 공간이 부족해 이사를 오고 나서야 작은 컨벡션 오븐을 들였다. 새집에 들일 물건들을 사러 코스트코에 갔다가, 돌발적으로.

처음 만든 것은 초콜릿 칩 쿠키였다. 기억이 난다. 우리는 넷플릭스에서 Chef's Table 정관 스님 에피소드를 보고 있었고 나의 온 마음은 오븐 안에서 구워지는 쿠키에 쏠려 있었다.

내 손으로 만든 쿠키가 나왔을 때, 처음 미싱을 배우고 처음으로 박음질을 해서 두 개의 원단이 붙여지는 것을 스스로 했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꼈다. 똑바르고 깨끗한 봉제선은 아니지만 무에서 유가 나왔다.  

할 줄 아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는 사람이 되는 순간, 내가 이 세상에서 바로 이것을 할 줄 아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된 그 기분.


 나는 내가 케익까지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도우를 발효시킬 인내심도 없었다. 하지만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약 오르게 했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나는 그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혼자 미국 맛 베이킹을 한다는 것은 외로운 싸움이다. 지극히 일본스러운, 또는 일본에서 들여와 한국적으로 변한 빵과 케이크가 주를 이룬다. 그 어떤 누구도 과학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한 제대로 된 레시피를 공유하지 않는다. 반죽이 다 되었을 때 온도가 몇 도 정도 되어야 하고 버터는 실온이어야 하는지 차가워야 하는지, 도우의 되기는 어떤 느낌이어야 하는지. 말 그대로 엄마가 전화 너머로 알려주는 찌개 끓이는 방법 (물 좀 넣고 소금 적당히 넣고 팔팔 끓으면 조미료 한 꼬집만 넣어, 그리고 파 넣고 조금 있다가, 아 그래 그때 준 김치도 꺼내서 같이 먹어, 장조림은 다 못 먹었으면 버리고) 같다. 다른 점은 레시피 주인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 정감도 없고 블로그에 포스팅하나 늘리려는 수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의 모든 베이킹은 홈베이킹 문화가 극단적으로 앞서 나가는 미국과 영국인들이 만든 레시피와 팁에 의지한다(내가 영어를 하고 읽을 수 있음에 대한 감사는 이틀에 한번 꼴로 한다.) 내가 만들고 먹고 싶은 미국과 영국식 빵과 디저트를 개인적으로는 겉모습이 편안한: 브라우니, 케이크, 머핀, 스콘, 파운드케이크, 쿠키 등, 그을려진 투박한 표면을 가진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내 취향에 대해서는 추후의 글에서 다시 정리해보겠다.

재료를 구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예상하고 시작했다.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없는 재료도 생겨난다. '이 재료는 내가 사는 곳에는 없는데 대체제로는 뭐가 있을까요?' 유명 블로거나 베이커에게 이런 문의 메시지를 보내고 소셜미디어에 도와달라는 댓글을 다는 일은 이제 그다지 어색하지도 않다.

홈 베이커로서의 장점은, 이윤에 연연하지 않고 재료를 쓸 수 있는 자유와 순수하고 긍정적 마음에 있다. 맛있고 꽉 차 있는 것을 마음껏 만들고 나눠주고 잊어버릴 수 있는 여유는 엄청나게 달콤하다. 한 번은 내가 쓰는 재료를 바탕으로 계산을 해봤는데, 도저히 시중에서 팔 수 없는 소비자가가 나왔다.

지금까지 도구는 컨벡션 오븐과 작은 핸드믹서가 전부였다. 베이킹 14개월 만에 스탠드 믹서를 장만했다. 그것도 변압기가 없어 아직 무용지물이지만.


나는 숙련된 베이커가 아니다. 레시피 개발자도 아니며 포토그래퍼도 아니다. 외롭고 답답한 홈베이커라고 하는 것이 제일 정확할 것이다. 재료에 대한 고민을 상의하고, 레시피를 공유할 동료가 없다. 아마존과 네이버를 오가며 재료를 소싱하고 기다리고 문의하고 좌절하는 시간들을 겪으며 나는 어려움에 익숙해졌고 온라인 홈베이킹 커뮤니티의 흐름을 읽게 되었다. Malted powder가 엿기름 가루라는 것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어떤 것을 만들기 위해 나는 엿기름을 구하려 했지?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Dorie Greenspan의 초콜릿 케익 레시피 때문이었다.


이런 에피소드들; 레시피를 찾고 재료를 공수하고 대체제를 찾고, 실패하고 성공하고 자연광이 거의 없는 작은 집에서 하는 촬영 등 나의 브라운 베이킹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들, 외로운 홈 베이커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글루텐 프리 베이킹에 대한 이야기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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