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치도치상 Dec 13. 2019

새 언어 습득은 새 악기를 배우는 것

100일 뇌새김 영어되면 언어 천재임

피아노는 제게 일종의 모국어였어요. 전 피아노를 7살 때부터 쳤거든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제가 엄마 대신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엄마는 자기가 피아노 레슨을 어렸을 때에 받고 싶었지만 받지 못했다고 했었거든요.


오르간은 제게 일종의 외국어였어요. 전 스무 살 때 성당에서 미사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어요. 피아노를 치면 오르간을 쉽게 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선입견 덕분이었죠. 사실, 피아노와 오르간은 다른 악기예요. 건반이 있다는 사실만 같을 뿐이죠. 오르간은 피아노와 달리 두 손 뿐만 아니라 두 발까지 사용합니다. 오르간을 연주하다보면 머리에 쥐가 나는 느낌을 경험합니다. 영어로 이런 표현이 있어요.

It makes my brain feeling fried. ( 뇌를 튀겨주는 느낌이야)


피아노와 오르간처럼 건반악기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악기이듯이, 우리말과 영어는 언어라는 사실만 같을 뿐 다른 언어예요. 우리말은 정규 교육 과정을 배우기 이전에 모국어로써 습득합니다. 요즘에는 영어를 어릴 때부터 배운다고 하니, 이야기가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자주 접할 수 없어요. 영어 유치원 다닌다고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 영어로 얘기하시는 부모님은 많이 없으시잖아요? 따라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제가 오르간을 배울 때와 유사한 느낌일 것이라 추측합니다. 영어가 뇌를 튀겨주는 느낌.


주어 다음에 바로 동사를 배치하고, 과거형 동사인지 아니면 현재완료인지, a/an 인지 the 인지 아니면 관사가 없는 지, 시간과 장소를 가리키는 단어는 문장 어디에 배치해야하는지 등 우리말과 완전히 다른 문법 체계를 가진 영어로 말을 표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뇌가 튀겨지는 경험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과정과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유사합니다.


악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훈련이 필요하죠. 다양한 훈련 중에 크게는 이론과 실기 연습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이론을 배우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악보와 곡을 읽고 이해하여 실제 연주를 잘 하기 위함입니다. 이론에서는 음표의 종류, 악상 기호, 연주하는 방법 등을 배웁니다. 이론을 바탕으로 연습을 하죠. 곡을 천천히 연주해보고 잘 안 되는 부분만 따로 연습을 합니다. 잘되면 다시 곡 전체를 연습합니다. 잘 안 되는 부분이 나오면 다시 그 부분만 잘될 때까지 연습합니다. 곡 전체가 연주가 잘 이루어지면 서서히 속도를 붙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연습합니다.


영어를 습득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단어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원어민은 어떤 문화에서 어떻게 영어를 사용하는지 이론을 배웁니다. 그러나 이론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이론과 더불어 연습이 필요하죠. 문장을 천천히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합니다. 단어와 문장을 암기하고, 천천히 발음해보고, 잘 되면 전체 문단을 읽어보고, 잘 안 되는 단어와 문장을 다시 읽고 암기하고……. 새로운 악기를 연습할 때처럼 반복적으로 연습합니다.


특히, 외국어로써 영어를 습득하고자 하는 성인들에게는 이론을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성인들은 우리말을 모국어로 배우면서 이미 사고방식을 모국어로 구축하였죠. 스펀지처럼 영어 대화를 빨아들이고 무조건적으로 복사하는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우리말로 왜 그런지 설명을 해 주어야 이해를 합니다.


‘외국인’이라는 단어를 예를 들어보도록 할게요. 보통 ‘외국인’이라면 한국 사람과 생김새도 다르고,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래서 보통 ‘foreigner’라고 번역해서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 ‘foreigner’라는 단어는 ‘외국인’이라는 단어와 달리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방인, 우리와는 다른 사람, 낯선 사람, 우리에게 속할 수 없는 사람 등의 내포된 의미를 지닙니다. ‘외국인’이라는 뜻보다는 ‘이방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외국’에 나가서 ‘foreigner’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인종주의자로 오해를 받기 딱 좋은 단어거든요.


‘foreigner’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 보통 명확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I have many foreign customers. So I have to learn English. (나는 많은 외국인 고객이 있어. 그래서 영어를 배워야 해.)


그 고객들이 영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인 경우라면 어떨까요? 분명, 영어가 모국어이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영어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한다고 할 때는 English speaking customers 라고 정확하게 지칭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단어의 차이를 설명해 주고 올바른 표현이 무엇인지 배경을 설명해 주어야 어른들은 잘 알아듣고 흥미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영어 습득에 있어 이론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론이 아무리 빠삭해도 실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악기 연주를 할 수 없듯이,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을 할 때 발음과 intonation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발음을 원어민들처럼 완벽하게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 그렇게 되기도 어렵고요. 그러나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정도의 발음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은 장음과 단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로 의사소통을 할 때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습니다. (물론 아나운서나 강연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다르겠지만요) 반면, 영어는 장음과 단음의 구분이 필요합니다. unique (i가 장음)와 eunuch (u가 단음), beach (ee가 장음)와 bitch (i가 단음)의 발음은 장음, 단음의 차이만 존재할 뿐 다른 차이는 없습니다.


외국인 친구 중에 발음의 차이에 대해서 친절하게 지적해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단어의 차이를 구분할 정도로는 발음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그 친구 독특해”가 “그 친구 고자야”가 되거나 “나는 해변에 갔었어.”가 아니라 “나는 XX에게 갔었어” (글에 사용하기는 적절치 않은 단어니 찾아보세요)가 됩니다.


요즘에는 효과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서적이라든지 시청각 자료가 방대하기 때문에 성인인 우리들의 대부분은 영어가 어떤 언어인지, 원어민들은 영어를 어떻게 하는 지, 영어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 지, “쉐도윙” 연습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 분석과 이론은 빠삭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영어는 늘지 않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론은 빠삭한데 인내를 가지고 천천히 오랜 시간동안 연습을 하지 않거나 할 시간이 없어서입니다.


악기 연주는 몸이 기억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감각하고 지각하여 인지하여 행동에 옮기기 전에 몸이 기억하여 반사 신경으로 연주합니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신경계에는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요). 언어도 마찬가지죠. 혀와 입술, 목의 근육이 기억하여 반사 신경처럼 말하고 듣습니다. 즉, 자연스럽게 몸이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왕도도 없고, 빠른 길도 없습니다. 언어라는 것이 그렇죠. 오랜 시간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한글로 자기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는 데까지 걸린 햇수를 생각해봅시다. 보통 생후 6-24개월 (개개인의 편차는 존재)때부터 “엄마, 아빠“하고나서 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 학교 선생님, 친구들의 부모님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에 걸린 시간은 약 5년에서 8년 정도입니다. 우리말도 제대로 언어를 학습하고 구체적으로 내 생각을 전달하려면 적어도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말을 배운 시간은 거의 10년에 가깝습니다 (물론, 지적능력의 향상에 따른 영향도 있기에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죠). 우리말도 이 정도인데 영어를 100일만에 가능하다고? 하루에 5분 뇌새김해서 가능하다고? 그거 되면 언어 천재입니다. 저는 한 10년 정도 걸리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영어를 습득하는 데에 있어 동기(motivation)와 보상(reward)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이론을 깨닫고 연습을 해서 명곡을 연주할 수 있다고 해도 연주를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음악이 다 무슨 소용일까요? 우리가 유엔에서 연설하려고 영어를 배우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무엇을 배울 때에 가장 좋은 동기와 보상은 ‘즐거움’이라고 봅니다.


영어를 배울 때의 즐거움은 다양한 방식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배움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 성취감, 다른 사람과 대화의 즐거움 등이 있겠죠. ‘책상 앞에 앉아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라는 당위성이 생기는 순간, 혹은 명령하는 순간, 즐거움은 사라집니다. 그저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암기해야하는 지겨운 과목이 되어버리죠.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 채, 지겹게 반복해야하는 일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요.


혹시 여행에서 써먹기 위해서,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서 아니면 어떤 목적이든지 영어를 습득할 요량이라면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영어는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과 같아서 이론과 분석도 필요하지만 반복적인 연습 역시 중요합니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몸이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영어를 습득하면서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죠. 매번 그럴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인 배움의 과정이 즐겁다면 훌륭한 동기와 보상이 주어지니 앞으로도 즐겁게 영어를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말에 없는 영어  조동사 사용법 (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