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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치도치상 Feb 15. 2020

우리말은 "눈치 챙겨", 그럼 영어는?

텍스트와 컨텍스트/영어와 우리말의 차이

뉴욕에는 ‘플러싱’ (혹은 맨해튼 한인타운)이라는 동네에 한인들이 모여 삽니다. 뉴욕 시내에서야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으니 플러싱에 갈 수 있지만 시 외곽에 살면 차 없이는 가기가 어렵습니다. 일 년 반 만에 중고차를 구입했고 전 플러싱에 나가서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전날부터 잠을 못 이루었었죠.


친구와 저는 일 년 전에 먹었던 ‘중국집’(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중국집 음식은 분명 우리 음식입니다)을 갔고, 짬뽕을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더군요. 주인아저씨와도 오랜만에 우리말로 대화도 했습니다. 정겨운 우리말.


당시 일 년 넘게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우리말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모국어가 어떻게 떠오르지가 않았을까요. 98년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박찬호 형이 메이저리그에서 대성공을 하고 잠시 한국에 돌아와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저는 당시 찬호 형이 미국물을 많이 먹어서 우리말 발음도 “버터 발음”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딱! 찬호 형처럼 우리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찬호 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안 쓰면 이렇게 되는구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와 대화를 했던 주인아저씨는 제 말을 잘 알아들으시더군요. 저는 제대로 된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말입니다.


언어의 차이에 대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왜 그런지 알겠더군요. 우리말이 지닌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Edward T. Hall에 따르면, 우리말은 high context language (높은 맥락 언어)라고 합니다. 텍스트보다 컨텍스트(맥락)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언어입니다. 구체적인 문자, 단어나 문장이 전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배경, 화자의 표정, 목소리 톤, 추측 등 맥락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언어라는 겁니다. 소위 '눈치를 챙기는’ 언어입니다.


반면에 영어는 low context language (낮은 맥락 언어)라고 합니다. 맥락보다는 텍스트가 중요한 언어입니다. ‘눈치’를 챙기지 않는 언어입니다. 따라서 문자로, 단어와 문장으로 얘기를 잘해야 알아듣는 언어입니다.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이해 못해?”  


보통 이런 얘기를 친구에게 듣는다면, ‘눈치’가 없는 저로서는 당황스럽습니다. 생각을 이해 못한다는 것인지,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자신의 행동이 납득이 안된다는 의미인지 헷갈립니다. 아니면 그것 모두인지... 그래서 저는 ‘마음’, ‘이해하다’라는 우리말 단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고려대 국어사전에 따르면, ‘마음’은 6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1.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 2. 무엇을 하고자 하는 뜻. 3. 마음을 쓰는 태도. 4.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일어나는 감정이나 심리. 5.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본디의 속생각. 6. 이성에 대해 느끼는 사랑하는 감정.


여섯 가지 정의에 따르면 ‘마음’은 감정, 생각 등이 자리 잡는 곳이기도 하고, 의지/뜻도 되고, 행동으로 드러나는 태도도 되고, 감정이나 심리도 되고, 속생각도 됩니다. 그러니까 텍스트 상으로 ‘마음’이라고 했을 때 맥락이 없으면 감정을 가리키는지, 생각인지, 태도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이라는 단어에 대응되는 영어는 각각 다르게 표현해야 합니다. 1. 감정이 자리 잡는 곳은 영어로 heart 혹은 body이고, 기억 혹은 생각이 자리 잡는 곳은 보통 mind입니다. 2. 무엇을 하고자 하는 뜻은 willingness 혹은 wish, intention 등이 될 수 있겠습니다. 3. 마음을 쓰는 태도는 behavior혹은 attitude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일어나는 감정과 심리는 feeling, emotion, psychology 혹은 mentality정도 되겠고요. 5.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본디의 속생각이라면 intention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6. 이성에 대해 느끼는 사랑하는 감정은 feeling 혹은 heart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말로는 이 모든 것이 ‘마음’으로 사용되어도 맥락에 따라서 구분이 가능하겠지만, 혹은 구분하지 않고도 의미가 전달되겠지만, 영어로는 위에서 열거한 mind, heart, feeling, emotion, behavior, attitude, psychology, mentality, intention 등 모두 다른 의미입니다 (feeling과 emotion도 바꿔서 쓸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른 뉘앙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해하다’ 역시 4가지 정의가 있습니다. 1. 분별하거나 해석하다. (understand, distinguish, interpret, regard) 2. 잘 헤아려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형편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다. (accept, embrace, empathize) 3. (어떤 대상을 무엇으로) 간주하고 여기다. (understand, regard, consider) 4. (사람의 말이나 글의 뜻) 듣거나 보고 알다. (hear, see, understand)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이해 못해?”  

이 문장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한 생각(말)이 이해가 안 되냐.” 언어에 대한 논리적 이해를 내포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냐.” 감정에 대한 상황적인 이해를 내포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감정을 왜 받아들여주지 않느냐.” 감정에 대한 공감 여부에 질문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나를 왜 받아들이지 않느냐.”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위에서 열거한 의미의 중의적 의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열거한 의미 전체를 다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말은 텍스트 자체만 두고 파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맥락을 통해서 텍스트를 이해해야 하는 high context language 인 것이죠.


반면 영어는 위에서 열거한 네 가지 의미를 서로 다르게 써야만 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의미는 텍스트만 보았을 때에 의미는 중첩되지 않습니다.


Do you understand what I am telling you?

Do you understand how I feel?

Are you listening to me?

You are not accepting me.


우리말과 영어의 이러한 차이 때문에 영어를 배우는 일이 쉽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말을 오랜 시간 사용해왔기 때문에 우리말로 생각의 틀이 자리 잡았고, 우리말에 비해서 텍스트를 더 중요시하는 영어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 심리상담을 합니다”라는 문장을 생각해보죠. 맥락이 ‘영어를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하고, 영어 모임에 나와 자신을 소개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영어로 상담을 하나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어로는 “I am seeing foreign clients.” (외국인 내담자들을 만나요)라고 하면 의미가 불분명합니다. 일단 foreign이라는 단어가 ‘외국인’이라는 뉘앙스와 ‘이방인’이라는 뉘앙스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상하게 들립니다. 두 번째로 ‘외국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어를 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즉, 한국에 사는 중국사람, 베트남 사람, 일본 사람은 외국인이지만 그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한국어를 더 잘할 수도 있습니다). 외국인이지만 제가 중국어, 베트남어, 일본어를 할 줄 모르기에 그들을 상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가 ‘외국인 심리상담’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중국, 베트남, 일본 사람이 영어를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어서 심리상담을 한 적은 있습니다.) 따라서 영어로 소개를 할 때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얘기해야 합니다.


I am working with English speaking clients.

I am seeing English speaking clients.


이러한 차이 때문에 한글을 할 때는 영어에 비해서 상징적이고 시적이고 은유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텍스트 이면에 숨겨진 상징과 은유 및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눈치를 챙겨야 합니다. 맥락이 유사한 사람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눈치껏 잘 알아들을 수 있겠지만, 같은 맥락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대체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다이어트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모두들 해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다이어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먹는 양/탄수화물을 줄이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꾸준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 외의 방법이 있지만 보통 성공하던가요? 아니오. 단기간에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요요현상이 일어나죠. 네 맞습니다. 영어 습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를 하고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외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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