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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치도치상 Feb 27. 2020

영어와 우리말의 차이

과학적인 언어와 시적인 언어

저는 우리말이 시적인 언어라고 생각해요. 한글을 사용하다 보면 은유/비유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의성어, 의태어 등 묘사적인 표현 역시 사용하게 되고요. 단어나 문장이 지닌 함축적인 의미, 상징적인 의미까지 고려할 때 우리말은 아름다운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과 달리 영어는 과학적인 언어에 가깝습니다. 영어는 개념이 정확하게 정리되어 있고, 그 개념에 따라서만 문장 안에서 사용합니다. 단어의 정의에 따라서 용처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밥은 먹고 다니냐?"

우리말 의미로는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문자적 의미인 '식사를 제 때에 하는가'를 비롯하여, 건강하냐, 건강하게 식사를 하냐, 불편한 곳은 없냐, 난 너를 염려한다 등의 의미가 문자적 의미 뒤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상징적인 의미들을 담고 있죠. 반면 영어로, "Do you eat routinely and legitimately?"라고 물으면 문자적 의미만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소 의학적인(medical/clinical) 질문이라고 볼 수 있죠.  


한글날이 되면 각종 신문 보도에는 우리말이 얼마나 과학적인 언어인지 보도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영어와 비교해보았을 때 그다지 과학적(scientific)이지 않습니다. 한글이 음성학적(phonetically)으로 과학적인 언어가 아니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한글은 소리와 철학이 더해진 과학적인 문자 맞습니다. 사람의 입모양, 구강을 본떠 만든 글자라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제가 의미하는 과학적(scientific)이란 의미는 환원주의(reductionism)를 바탕으로 합니다. 과학에서는 쪼개고, 개념을 정리하는 환원주의가 원칙이죠. 과학에서는 개념을 정의(define: 한계를 짓는다는 의미)하고 그 개념대로만 사용합니다. 이를 언어에 적용하면, 단어와 개념을 정의한 대로 사용한다는 의미이죠. 예를 들어볼게요.


영어로 ‘생각’은 보통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thought과 idea. thought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의미합니다. idea는 thought과는 달리 오랫동안 머무는 생각 혹은 구체적인(tangible/concrete) 생각을 말합니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는 반드시 I have an idea로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생각’은 생각이 구체화되어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thought에 비해서 오랜 시간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I have a thought 은 듣기에 좀 어색해요. I have thoughts라고 복수형으로 써야 듣기에 자연스러워요. 왜냐하면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생각이 하나만(단수)이 아니라 보통 많잖아요 (복수).   


여기서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생각이 있어.”라고 한글로 표현한다고 생각해 보죠. 그러면 텍스트 자체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좋은 생각’ 일 수도 있는데 내가 스스로를 낮춰서 생각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나는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좋은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죠. 그러니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일지라도 문맥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보았을 때, 한글은 영어와 달리 텍스트에 따라서 정확하게 정의되거나, 개념에 따라서 용처가 정확하게 설정되지 않습니다. thought과 idea는 개념이 정확하게 구분되어있고 용처도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러니 영어를 배우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다음 예문들을 살펴보면 우리말과 영어의 차이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예문은 고려대 한글 사전에서 가져왔습니다.)


  예) 김 선생은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그의 마음에는 아직도 어떤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았다.


밝은 모습이라고 했지만 영어로 직역하면 이상하게 들립니다. good appearance? good outfit?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겉모습”이 밝은 것이 아니라 표정이 밝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영어로는 밝은 표정 혹은 웃음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마음에는 어떤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이 문장은 시적인 표현이네요. 한글이 과학적 언어가 아니라 시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저는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면에 영어는 시적인 언어가 아니라 과학적 언어기 때문에 이렇게 질문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마음을 어떻게 보고 그늘이 있는지 어떻게 보이죠?" (How could you read his mind?) 그냥 눈치껏 알아들어야 하는데 말이죠. 따라서 영어식으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He shows up with a big smile, but I can see sadness in his smile.

(그는 함박웃음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그의 웃음 속에서 슬픔을 엿볼 수 있었다.)


위 번역이 영어로도 시적인 표현이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말과 비교해보았을 때에는 구체적입니다.


예) 네 계획이 어떻든 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Whatever your plans are, I do not have any willingness to work with you.

줄여서 Whatever your plans are, I am not in.

(네가 어떤 계획이 있든지 나는 너와 함께 할 뜻이 없어.)


*work는 반드시 ‘일’, ‘직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일이 돌아가는 모든 행위를 work라고 한다.

 우리말은 "눈치 챙겨" 그럼 영어는? 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마음’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6가지 정도). 따라서 그저 mind라고 번역하면 이상합니다. 위 예문을 살펴보면 함께 하고자 하는 ‘뜻’이 없다는 의미로써 마음이라는 단어를 썼죠. 그래서 willingness 혹은 intention이 되겠다.


다음 예문을 보면서 한글의 불명확성을 살펴보도록 하죠.

예) 마음을 곱게 써야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마음을 곱게 써야”할까요? "마음을 곱게 쓴다"는 표현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내적으로 (마음으로) 어떻다 하더라도 드러나는 행동(behavior)이 더 중요하다 봅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 언어, 얼굴 표정, 눈짓 등을 보고 이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떤지를 판단하는 것이죠. 마음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잖아요


직장상사 때문에 내 마음에 분노 (맨날 소리 질러), 슬픔 (반항하지 못하는), 불안 (또 뭐라고 하겠네) 등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합니다. 감정 때문에 동요하는 마음을 곱게 쓸래야 곱게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습니다. 내가 잃어서는 안 되는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합니다. 그래야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죠. 아니, 해야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을 곱게 쓴다"라는 표현은 애매모호합니다. 아니면 '마음을 곱게 쓴다'는 표현 안에 행동(behavior)까지 뭉뚱그려서 다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아래처럼 번역 가능할 것 같아요.


Maintaining interpersonal relationship requires manners and etiquette.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너와 에티켓이 필요하다.)


예) 마음이 뒤숭숭하여 잠이 오지 않는다.

“마음이 뒤숭숭하다”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 혹은 감정인지 모호합니다. 무엇으로부터 방해를 받는다는 것인지 (disturbed) 아니면 불안(anxious)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헷갈린(confused) 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I cannot sleep due to feeling disturbed/anxious. (헷갈려서 잠이 안 오는 경우는 잘 없으니 패스, 헷갈려서 방해를 받아 잠이 안 오는 것, 혹은 헷갈려서 어떻게 할지 몰라 불안해서 잠이 안 오는 것)


아니면 과거의 잘못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잘못 때문이라면 다음과 같이 씁니다.

I cannot initiate sleep because I think I did something wrong.

(내가 어떤 것을 잘못한 것 같아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몇 가지 예를 살펴본 것처럼 한글은 시적인 혹은 은유적인 표현이 많아요. 그래서 영어로 직역을 하면 의미가 정확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어는 우리말과 달리 화자가 어떤 의도와 어떤 맥락을 가지고 그런 표현을 했는지 눈치껏 알아들어야 하는 언어가 아닙니다.


그러면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머릿속에 입력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러면  방법이 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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