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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치도치상 Feb 12. 2023

네 영혼 깊은 곳의 너이기에 사랑하는 걸까 II

모찌상이라는 존재

“도치상은 내가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어도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나요?”

도치상은 모찌상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눈물이 고였고, 도치상은 목이 메었다.


모찌상이 즐겨 찾는 임산부 커뮤니티에서는 최근 한 기사가 회자되고 있었다. 한 여성이 출산 과정에서 다량의 출혈로 심정지와 뇌손상이 왔고, 출산 이후에 그녀는 지적인 상태가 5-6세의 아이처럼 되었다. 그러자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다고 한다.


모찌상은 배가 점점 불러와 출산을 앞두고 있다. 언제 양수가 터져도 모를 일이니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산부인과 선생님이 경고한 바 있지만 도치상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자 제공 외에는 그가 특별히 임신에 공헌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퇴근길의 도치상에게 문득 생각이 스쳤다. 모찌상이 만일 콩콩이를 낳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도치상은 모찌상 없는 세상, 혹시라도 모찌상이 잘못된 세상이 그려졌다. 도치상은 눈물과 콧물을 삼켰다. 사실 그랬다. 지금이야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그럴 일이 거의 없겠지만 과거에 출산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모찌상은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목숨을 걸고 콩콩이를 출산할 각오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만년 넘게 경험한 출산의 고통 및 죽음에 대한 경험은 이미 여자의 뇌에 각인되어 있으니까. 모찌상은 얼마나 불안할까.


도치상은 보통 모찌상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한다. 그는 부정적 감정과 경험을 아무 거리낌 없이 모찌상과 공유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모찌상에게 퇴근길의 상상을 말하지 않았다. 모찌상의 불안감을 감소시키기는커녕 증폭시키는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도치상은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도치상 밥 먹다가 미안해요. 촉촉 도치가 되셨군요.”

모찌상은 도치상의 눈물을 크리넥스로 닦아 주었다. 도치상은 며칠 전의 상상이 현실이  것처럼, 모찌상을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모찌상은 자기보다 머리 하나가  도치상을  안아주었다. 모찌상의 에는 콩콩이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도치상을 아름드리 안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감정이 잦아들자 도치상은 말을 꺼냈다. 도치상이 그 남편과 같은 선택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다고. 미래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나 모찌상이 출산 후에 무언가 잘못되어 모찌상이 큰 해를 입는다면 도치상은 매우 슬플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할 것이라고. 설사 모찌상을 버리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네 영혼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p.190.


모찌상 영혼 깊은 곳의 모찌상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보통이 말한 존재론적인 사랑 역시 도치상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도치상은 모찌상을 향한 사랑을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도치상은 모찌상과 이별한 후에 삶이 무엇일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아내인 모찌상 없는 텅 빈 집에는 어둠만이 드리우게 될 것이고, 도치상은 콩콩이를 볼 때마다 모찌상을 떠올릴 것이고, 도치상의 삶은 절망 그 자체일 것이다. 왜냐하면 모찌상은 도치상의 안 해, 도치상이 머무는 집의 해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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