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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치도치상 Dec 16. 2023

워라밸, 어쩌라는 거야?

일과 삶의 균형 맞추기

최근에 워크숍 강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 life balance, 워라밸)에 관한 주제라더군요. 강의를 미리 점검할 겸 스크립트를 만들어보려고요.


보통 워라밸을 얘기할 때 일을 안 하고 놀아서 워라밸이 깨졌다고 하지는 않죠.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번아웃이 왔거나, 일 때문에 내 삶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을 때 워라밸이 깨졌다고 합니다. 일과 삶이 불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일 때를 말하죠.


그러면 일과 삶의 균형은 뭘까요? 일론 머스크처럼 자는 시간 외에는 일하는 사람도 워라밸이 있다고 할 수도 있고요. 스티브 잡스처럼 본인도 직원도 일주일에 80시간씩 일하면서 워라밸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요 (그럼 스톡옵션을 줘가면서 시키던가). 어떤 사람은 주 52시간 정확하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삶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워라밸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워라밸이 깨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안다면 워라밸이 어떤 것인지 어림짐작은 가능합니다.


일과 삶의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 다음과 같은 증상이 옵니다. (증상에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 일만 계속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일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인간관계에서 짜증/화가 쉽게 납니다. 회사 조직 내에서 관계든지 아니면 개인적인 인간관계든지 간에 별 것 아닌 일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납니다.


세 번째는 관절에 통증을 느낍니다. 목, 허리, 무릎, 발목에 통증이 느껴집니다. 손발이 저리기도 합니다. 위장 장애 혹은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계속 이어집니다. 심한 경우 공황 장애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일하고 있지 않으면 모든 게 다 부질없게 느껴집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일, 인간관계 등 일 외에는 부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섯 번째는 집청소를 한 지 오래됩니다. 빨래와 설거지가 늘 쌓여있습니다.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정리정돈을 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요.


여섯 번째는 아파도 쉬지 않습니다. 아니, 쉬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더 중요하지 지금 내가 아픈 게 더 중요한가라는 생각에 미칩니다.


일과 삶의 불균형 상태가 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요? 일단 야근을 합니다. 계속 일합니다. 내가 점점 사라집니다. 내가 누려왔던 삶이 사라집니다. 아니, 무시합니다. 나란 존재란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일에 비하면 가벼운 존재일 뿐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를 돌보는 일이 불가능해집니다. 위에서 열거한 증상이 더욱 심각해지겠죠. 건강한 인간관계도 점차 사라집니다.  


인간관계도 사라지니 일만 남습니다. 일이 나보다 중요하니까 일을 더 열심히 합니다. 야근을 합니다. 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과 관계는 웬 말인가요. 나를 돌보지 않습니다.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그러면 일과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번째로 바운더리 세팅을 해야 합니다. 경계, 구역, 범위라는 뜻입니다. 일의 바운더리, 삶의 바운더리를 설정해야 해요.


제가 신기하다고 생각한 한국의 문화중 하나가 명함에 개인전화번호가 들어있는 것이었어요. 뭐,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회사에 고용된 사람인데 일을 할 때 왜 개인 전화번호를 주고받을까요? 자기 사무실 전화번호가 분명 있을 텐데요.


예전에 2013년 한국에 잠시 왔을 때였습니다. 이마트에서 보너스카드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주민등록번호, 개인전화번호, 주소까지 요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보너스카드 하나 만드는데 왜 이렇게 많은 개인정보를 줘야 하냐고요. 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을 줘야 해 서라더군요. 아니 그러면 전화번호정도 남기면 되지 내 주민등록증 번호랑 주소는 왜 필요햐냐고 다시 물었어요. 답변이 기가 막히더군요. 정책상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요? 안 만들었습니다.


요즘에야 개인정보 보호법이 강화가 되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여전히 개인의 바운더리를 존중하고 있는지는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명함에 개인 전화 번호를 넣는 것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Don't get me wrong. 그런데 그 문화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시간 관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효과적으로 업무를 구성하고 조직하는 게 필요하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생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를 계획해 보면 좋습니다. 효과적으로 생산적으로 일하면 야근을 할 일도 줄어들 수도 있으니까요. 설마 요즘에도 과장 부장님이 야근을 하니까 나도 해야 하는 직장이 있으려나요?


세 번째로는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합니다. 일단 스트레스가 뭔지 알아보죠. 스트레스는 외부 자극으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긴장감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 몸/신경계가 스트레스를 받는 게 항상 나쁜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일 특히 흥분되는 일이 있을 때, 우리 몸과 마음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부정적인 일로 스트레스를 받건 긍정적인 일로 스트레스를 받건 신체의 반응은 똑같습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아예 느끼지 않는 상태가 좋은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Stress Free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어도 문제가 생깁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몸에 좋습니다.


스트레스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관리가 안될 만큼 압도된 상태가 문제입니다. 그럴 때는 몸과 마음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특별히 뇌 및 신경계가 긴장을 풀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강렬한 자극(스트레서)을 줄이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휴식을 하는 게 중요하죠.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풍경을 보면 심지어 휴식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휴식이란 뇌가 쉬는 걸 얘기하는데요. 휴식을 한다면서 핸드폰을 보면서 뇌에 강렬한 자극을 주고 있죠.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뇌에 스트레스를 더 주고 있는 셈입니다.


더더군다나 수면시간도 짧습니다. 지난번 어떤 기사를 보니 한국인 성인의 평균 수면시각이 6시간 25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평균 노동시간은 OECD국가 중에서 제일 높은 축에 속하지, 휴식도, 수면도 이루어지지 않지 번아웃(소진)이 안 오면 이상할 지경입니다. (카페인이 마지막 보루인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관리한다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휴식하면 됩니다. 운동이 되었든, 요가가 되었든, 걷기가 되었든, 명상이 되었든지 긴장을 풀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스트레스 프리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도 좋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운동이나 게임 등 좋아하는 일을 적당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유연한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 중에 번아웃을 경험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일에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도 좋습니다. 평생 걸쳐 경험해 온 가치를 무시하고 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야근해야할 때는 해야죠. 회사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가 있다면 밤새서라도 끝장을 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또 성취하는 것에서 보람과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삶에 중요하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일론 머스크도 스티브 잡스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두고 정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Sustainability. 지속가능성입니다. 내가 "일"이라는 가치를 두고 살고 있는데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일"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짧게 육 개월 길게 일이 년 내에 번아웃이 와서 일을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된다면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번아웃을 경험하는 분들이 이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분들이 꽤 되더라고요.


내가 일에 쏟고 있는 에너지와 시간 중간중간 꼭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말이죠.


이렇게 워라밸이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밸런스가 어디있는지의 기준은 다릅니다. 그걸 무자르듯이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기준에 따라서 여러가지 중요한 점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지속 가능성"에서 워라밸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열심히 트레이닝시킨 직원을 일이년만에 번아웃와서 잃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워라밸은 회사 입장에서도 직원 입장에서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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