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대체 무슨 쓸모가 있나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를 읽다가 도대체 철학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의 무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읽어도 철학이 번개 같은 해결 방식을 가져다주는지를요.
그러면 실제로 철학이 유용하기는 한가? 쓸모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습니다. 쓸모가 있습니다. 마치 기초과학처럼 쓸모가 있다고 생각해요. 양자역학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이제부터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즘에 “의식”에 대한 탐구에 꽂혀있습니다. consciousness 혹은 the conscious mind입니다.
Calmer라는 철학자가 1994년 Tucsan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의식에 관한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죠. 그가 말한 쉬운 문제란 의식적 경험의 과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펜을 들고 있다가 떨어지면서 발에 부딪힙니다. 그러면 우리는 통증을 경험하죠. 펜이 발에 닿으면서 자극이 주어지고 신경계에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 주어집니다. 신경을 따라서 전기자극이 뇌에 도달하고 뇌는 신호를 해석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통증을 경험합니다. 물론, 최근의 연구는 신경신호가 뇌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피부를 통해서 통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실 이 통증도 재미있는데요. 우리는 통증을 느낄만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을 때도 통증을 경험합니다. 보통 psychosomatic symptoms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신체적으로 아무리 검사를 해봐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 아프다고 합니다. 반대로 통증이 주어질만한 큰 자극이 주어질 때도 그 통증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상투혼이라고 하죠. 경기에 오롯이 집중했을 때 통증에 무감각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통증 자체가 순전히 주관적이고도 내적인 경험인 셈이죠.
어쨌든, 자극에 대한 반응은 대략 우리가 생물학 시간에 배운 대로입니다. 과학은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통증을 경험하게 되는 지를 알려줍니다.
문제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최근까지 연구는 왜 고통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경험하는지 모릅니다. 즉, 물리적 반응, 자극에 대한 우리 신경계의 반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왜 그 과정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하지 못합니다.
좀비를 예로 들어보죠 (Calmer는 철학적 좀비라고 예를 듭니다). 좀비가 펜을 들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발에 떨어뜨렸다고 합시다. 그러면 좀비의 신경계에 주어지는 자극에 대한 반응은 우리와 동일합니다. 자극이 주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 신경계는 전기 신호를 줄 것이고 뇌는 이것을 해석하겠죠.
그러나 좀비는 우리처럼 의식적 경험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통증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동일한 물리적 자극이 주어졌고 신경계가 반응했는데 우리는 의식적으로 통증이라고 경험하고 좀비는 그렇지 못합니다.
Calmer가 얘기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왜 경험하는가? 왜 의식적으로 경험하는가? 똑같은 물리적 현상을 좀비는 의식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우리는 왜 의식적으로 경험하는지 과학은 답변하지 못합니다.
철학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질문을 통해서 우리가 탐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죠.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유용합니다.
그러면 의식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우리가 지어낸 일종의 관념 아닐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우리 삶에 큰일이 벌어집니다.
가장 좋은 예로 큰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개복 수술을 하는 경우 전신 마취를 하게 되죠. 의식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서 측정가능하지 않다면 우리는 전신 마취를 할 수 없습니다. 의식이 있는지 없는 지를 의학적으로 측정하지 못하면 마취를 하더라도 수술 중에 의식이 깨어날 수 있는 것이죠. 94년 이전에는 삼천 명 중에 한 명 꼴로 수술 중에 의식이 깨어나 쇼크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후로는 기술이 정교하게 발달해서 뇌파가 의식상 태인지 무의식상태인지 알 수 있게 되어서 수술 중에 의식이 깨는 확률은 급감했다고 합니다.
실험이 있습니다. 뇌파를 측정하는 기계를 연결하고 피실험자에게 작은 물체를 이동하라는 명령을 주고 뇌파의 움직임을 관찰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뇌파가 일어나는 전기신호가 측정된 후에 정확하게 0.5초가 지난 후 의식적인 움직임이 관찰되었고 그 후 0.3초가 지나서 피실험자는 작은 물체를 움직였다고 합니다.
이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일 의식이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의 복합체라면 전기 신호가 일어나는 순간부터 의식이 존재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았던 거죠. 그러니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학적으로 말하기도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