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과 살신성인의 차이
며칠 전에 한 연예인이 자살했더군요. 언제부턴가 "자살"이라는 단어는 언론의 금기어입니다. 언론이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고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까요? 아니면, "자살"이라는 단어가 지닌 부정적인 영향을 막기 위해서일까요. 어쨌든 자살이라는 단어가 지닌 부정적인 면을 감소시키고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추측합니다.
심리 상담을 하는 사람인지라 자살 충동을 가진 사람들,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날 것으로 사용합니다. 부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으로 낙인찍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자살이 위험한 행동이며, 생명을 앗아가는 참혹한 행위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심리 상태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대처 방안을 찾고 예방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상담 장면에서 "자살"을 극단적 행위라든지, 안타까운 선택이라든지 등으로 음조를 낮추어 부드럽게 표현하면 역효과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 행위를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선택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한다고 저는 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저는 그 연예인 분을 잘 모릅니다. 그분의 삶이나 영화/드라마/작품도 잘 모릅니다. 저에게는 그분을 판단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러나 행동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있죠.
저는 보통 행동에 대해서 옳다 혹은 잘못되었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적절한지 적절하지 않은 지 여부만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행동은 다양한 측면에서 어떤 때에는 옳을 수도 어떤 때에는 그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자살"에 대해서는 단호합니다. 자살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낭만주의(Romanticism)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회 부조리에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 행위라고 하기도 합니다. 사회적인 압력에 의한 타살이라고 하기도 하더군요.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행위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많은 경우 자살은 스스로에게 위해를 가하는 잔혹한 행동이자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입니다.
더더군다나 행위가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단순한 결론에 이릅니다. 룸살롱을 전전했으며, 마약을 했다는 의심을 받아 경찰 조사를 여러 차례 받았고, 그로 인해서 큰돈을 소송비로 지불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칩시다. 그러면 당신은 자녀들이 그와 유사한 상황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자녀들에게 "자살"을 선택하라고 가르치시겠습니까?
저는 제 아이에게 그런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자살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가르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로 남은 삶을 살아가는 게 훨씬 더 현명하다고 가르치려고요. 자신의 생명과 타인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니 함부로 대하는 게 아니라고 가르치는 게 아빠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연예인 분의 죽음과 그를 애도하는 방송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자살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위로하고, 죽은 사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되어야 하며, "안타까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그분의 유가족을 위해서 "자살"이란 단어조차 금기시되어야 하는구나. 이런 문화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인다면 자연스럽게 "자살"을 선택하겠죠. 괜히 한국이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며칠 전에 방학동 아파트에서 화재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고 들었습니다. 3층의 화재로 4층에 살던 아이들과 엄마는 뛰어내려 살았지만 7개월 된 아기를 안고 뛰어내린 아빠는 끝내 사망했다고요.
방학동 아빠는 스스로 목숨을 던져 아기를 구한 의인이시더군요. 연예인 분의 사망 소식과 그 아빠의 사망소식을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통스러우면 가족을 두고 자살을 할 것인가? 내 가족에게 화마가 닥쳤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린 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던질 것인가?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제 잘못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더라도 자살을 하지 안겠다고 생각했습니자. 그대신 제 죄값을 치루고 제 책임을 다하면서 아내와 자식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살겠습니다.
화마가 닥친다면 죽음 앞에서 몹시 망설여지고 정말 두렵겠지만 저는 어린 딸을 살리고 죽음을 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빠는 가족을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야 하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