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란 무엇인가 II
영화 매트릭스는 제가 본 Science Fiction 중 최고입니다. 최근에 워쇼스키 자매가 매트릭스 레저렉션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매트릭스 1편에서 3편까지 이어지는 Legacy가 열린 결말로 잘 마무리되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왜 굳이 또 만드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는데 역시나 폭망 했더군요.
전지전능한 오라클은 왜 스미스 요원이 자기를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영화를 몇 번씩이나 봤는데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질문이었습니다. 영화를 리뷰하는 어떤 시점 님이 그 질문에 대해서 잘 답변을 해 주셨더라고요. 궁금하신 분들은 어떤 시점 님의 "오라클은 스미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했나“를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영화가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요.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의식에 대한 탐구를 하는 중이니 어떤 시점 님의 유튜브 내용을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어요.
매트릭스에는 아키텍트와 오라클이라는 신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아키텍트는 말 그대로 매트릭스를 설계한 프로그램이고요. 오라클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인간의 의식처럼 "자의식"을 지닌 프로그램입니다. 매트릭스 내부가 아무래도 인간과 기계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보니 인간의 불완전성과 기계의 모순이 함께 동작하고 있기에 매트릭스 자체는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이지만 불완전성을 지닌 공간입니다. 그래서 아키텍트와 오라클은 불완전성을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접근을 보여줍니다.
아키텍트는 인간의 모든 행동 양식을 이해하여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매트릭스를 실현시키고자 합니다. 반대로 오라클은 인간을 이해하여 기계가 인간처럼 의식(consciousness)을 갖게 하여 인간과 기계과 조화로운 세상을 이루는 것이 꿈입니다.
인간의 불완전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계 세계 내의 모순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0과 1로 이루어진 기계가 지닌 모순? 저도 몰랐는데 기계/컴퓨터의 근간이 되는 수학에 모순이 있다네요.
쌍동이 소수라는 개념이 있는데 자기 자신만을 소수로 가진 1,3,7,13... 이런 숫자를 말한다네요. 근데 이게 무한하게 계속된대요. 17,19... 237, 이런 식으로요. 컴퓨터에 이 소수를 찾으라고 명령을 내리면,, 결괏값이 계속적으로 나오다가 오류가 나면서 컴퓨터가 멈춘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소수로 갖고 있는 쌍동이 소수가 무한하게 계속되기에 결괏값을 내다가 멈추지 못해서 컴퓨터가 먹통이 된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순환 논리를 담고 있는 문장, 예를 들어 "이 문장은 거짓이다." 역시 무한 반복하게 되죠. 문장이 참이면 문장은 거짓이 되고, 문장이 거짓이니까, 다시 문장은 참이 되고... 논리가 문장 내에서 순환하다 보니 무한 반복하게 되어 기계는 결국 오류가 납니다.
오라클과 아키텍트는 이 오류를 시정하고자 했습니다. 자기 자신 (쌍동이 소수 혹은 "이 문장")이 입력값에 넣어버리면 결과를 산출하기를 무한반복하다가 기계가 멈추어버리는 오류를요.
매트릭스 2편에서 네오가 마침내 아키텍트를 만났을 때 아키텍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7번째로 아키텍트를 찾아온 네오라고. 그전에 6번씩 찾아온 네오는 6번씩 시온과 함께 멸망했다고. 그러니까 아키텍트는 인간의 행동을 반복시켜서 기계의 무한반복의 오류를 시정할 단서를 찾으려 했던 거죠. 기계 자체로는 무한 반복의 오류가 시정이 될 수가 없으니까요.
어떤 시점 님의 유튜브를 따르면 무한반복의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분명 있다고 믿었던 수학자들이 있었다네요. 마치 아키텍트가 인간행동의 반복적 알고리즘을 파악하여 기계에 적용하려 했던 것처럼요. 그러나 그런 알고리즘은 없다고 수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네요. 괴델이라는 사람이 했다나? 여하튼, 자세한 내용은 어떤 시점님을 보면 좋겠습니다.
반면 오라클은 완전히 다른 접근을 시도합니다. 네오의 대척점에 서 있던 스미스 요원에게 자신을 내어주기로 결심한 거죠.
스미스 요원은 매트릭스 세계 내의 일종의 바이러스(코드)입니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그렇듯 스미스 요원은 자신을 끊임없이 복제해 나가면서 매트릭스 세계를 멸망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오라클을 만나고 오라클에게 자신을 주입하여 오라클의 의식도 점령해 버리죠. 그러니까 오라클은 순환 참조의 오류를 만들기 위해서 스미스 요원이 자의식이 생기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대입하면 순환 참조가 되어 무한하게 자신을 반복해서 계산하다가 결국 오류가 나버리도록 한 거였어요. 쌍둥이 소수나 "이 문장"의 예시처럼요. 자기 자신이 입력값이 되어 버리면 기계는 무한반복하다가 오류가 나버리듯이, 오라클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 즉 스미스 요원에게 자의식이 생기도록 한 거예요. 결국 스미스 요원은 네오와 결투에서 네오의 의식 역시 삼켜버립니다. 자의식이 생긴 거죠. 자의식이 생긴 스미스 요원은 자신도 모를 의식에 대한 독백을 읇조립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모두 끝이 있어, 네오."
오라클이 늘 하던 독백이었죠. 스미스 요원은 심히 혼란스러워합니다. 의식이 생겨서 자신이 끊임없이 분화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는데, 시작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 자신의 행위(끊임없이 자신을 분화하는)와 모순된다는 사실 역시 자각합니다. 인간의 의식과 유사한 자의식이 생겼지만 자의식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채 스스로 파괴됩니다. 아, 그래서 그랬던 것이구나. 와, 오라클의 큰 그림 (아니 워쇼스키 자매의 큰 그림이죠!).
기계는 자기 자신이 입력값으로 들어오면 모순을 견딜 수 없어 오류가 생깁니다. 스미스 요원처럼 말이죠.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자의식이 15-18개월 사이에 생긴데요. 아직 자의식이 없는 저의 딸은 거울을 보고 웃지만 자기 자신인지 모릅니다.) 인간에게는 기계와 달리 세상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극복하는 데에 자의식이 가장 필요합니다. 정말 역설적이죠!
저는 자의식에 관한 탐구를 하면서 우울증(depressive disorder/mood disorder)을 가진 분들이 일종의 모순적인 상황에 봉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자살을 계획하거나 시도하시는 분들이 그런 삶의 모순을 경험하여 일종의 자기를 파괴하는 식으로 끝내려는 생각이 아닐까요?
사실 그렇습니다. 어른이라면 조금씩의 우울감은 경험하게 됩니다. 많은 일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계획한 일도 내 생각과 어긋나는 일들도 태반이고요.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고요. 삶이 이럴진대 우울하지 않다면 오히려 좀 문제 아닌가요?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우울증을 경험하는 분들이 지나치게 현실적 이서 그렇다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우울증을 경험하는 분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다 맞는 말이고 옳은 말이거든요. 틀린 게 없습니다. 삶의 모순된 상황을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자각한 나머지 이 모순들을 해결할 방도를 도무지 찾을 길이 없을뿐더러 스스로의 모순을 자각한 겁니다. 모순된 자아를 자각한 스미스 요원처럼요.
행복이라는 목표를 두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행복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잡히지 않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그러면 그 오랜 시간을 두고 투자한 나는 무엇이며, 여기서 나는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러다가 자기 파괴라는 행동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지 않을까요?
매우 모순적이게도 그럴 때 우리는 자의식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모순된 나를 역설적으로 끌어안는 것이죠. 창과 방패의 싸움, 그러니까 모순이라는 내부의 이성적 전쟁을 멈추고, 스스로를 경험하는 것. 인간만이 극복할 수 있는 내부의 모순, 자아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아, Acceptance Committment Therapy 가 다시 보이더라고요. 그게 이 뜻이구나. 깨달음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