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로저스, 훌륭한 삶
융 정신분석(Jungian Psycho-anlysis)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일 년 반에 걸쳐서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꿈에 나타나는 무의식이라기보다는 현재 당면한 나의 현실과 그 현실에 반추된 무의식에 대한 나만의 해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무의식보다는 나의 현존재(existence)를 통해서 무의식이 해석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치료가 제게는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의식을 탐구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정신분석이 틀렸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정신분석이 공헌한 바도 그리고 미지의 세계인 무의식을 알아가는 데에 정신분석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별히 조현병이라든지 인격장애라든지 심각한 증상을 지닌 분들에게는 정신분석만큼 좋은 치료방법은 없죠.
로저스는 ‘인간 중심/내담자 중심 치료’를 말했습니다. 그는 정신분석가들이 말하는 ‘무의식’의 추동이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 자신(self)이 삶을 스스로 이끌어나간다고 보았습니다.
로저스에 따르면 심리치료는 심리적인 문제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해석해서 고쳐나가는 데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내담자의 심리적 성장을 돕는 것이 심리 치료의 본질이라고 로저스는 말했습니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도록 합니다. 현재 벌어지는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자각할 수 있도록 할 때 비로소 성장합니다.
훌륭한 삶을 경험하려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순간순간 온전히 경험하며, 마음을 열고 유연하게 살아가야 한다.
로저스; 콜린 외 공저, 심리의 책, p.133
로저스는 성장함으로써 훌륭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훌륭한 삶이 어떤 것인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온전히 경험할 것, 마음을 열 것, 유연하게 사고할 것.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경험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매여있습니다. 과거 이미 지나간 일에 매여있기에 후회합니다. ‘내가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그 사람이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이런 사건이 일어나서 내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야.’ 이 사람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합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고 늘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통해서 바라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미래를 이미 살고 있습니다. 미래에 닥칠 일 때문에 늘 불안합니다.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는 대가로 현재의 삶을 지불합니다.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합니다.
로저스는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음을 여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환경에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절당할까 봐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합니다. 마음을 여는 일은 불확실성에 자신을 던지는 일입니다.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고 거부당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훌륭한 삶은 유연하게 사고할 때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 담고 있습니다. 혹은 "네가 옳다면, 내가 틀린 거네."라는 흑백사고를 합니다. 흥미롭습니다. 세상은 총천연색인데 사고는 흑 아니면 백입니다. 유연한 사고는 세상에는 흑, 백 뿐만 아니라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 보라색 등등 다양한 색깔과 문화, 다양한 생각이 공존함을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온전히 마음을 열고 유연하게 사고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실현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순간순간 마음에서 올라오는 감정과 마주하고, 감정을 단죄하지 않고,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존중한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리고 나를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판단하지 않는다면 분명 가능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