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와 여행에 대한 단상
휴가(休暇)의 사전적(한자의) 의미는 짬을 내어 쉰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vacation인데 구속됨이 없이 자리를 비운다는 의미라니 우리 휴가와 서로 그 맥락은 동일하다. vacation은 일본에서 휴가로 번역되어 나중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 같다. 두 글자 한자어 단어중 이런 것이 많다.
여행(旅行)은 나그네 려(旅), 다닐 행(行)인데 그 한자 뜻만으로도 피곤함이 느껴진다. 영어의 travel은 travailen 에서 유래했는데 원래 뜻은 "투쟁하다, 고생하다, 노동하다"라는 의미라니 피곤함이 느껴지기는 매한가지다. 예전에는 여행이 대부분 상인이나 종교인의 몫이었는데 그들의 어려움을 표현한 듯 싶다. 오죽 피곤하면 여독(旅毒)이란 말까지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상반된 느낌의 두 단어가 결합하여 "휴가는 여행을 가는 것"이 되었고, 결국 "휴가를 간다"는 표현까지 생겼다. 휴가는 곧 여행이 된 것이다. "여름휴가 어디로 가세요?" 란 물음이 이상하지 않다.
여행은 해외여행이 좋고 이왕이면 서구 선진국이면 더욱 좋다. 이런 세태가 못마땅했던지 오래전 어떤 교수님이 신문에 쓴 칼럼이 떠오른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설이나 추석 명절에 공항은 해외여행 가려는 사람들로 매우 혼잡하다." 이제는 뉴스거리도 못 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두세 명 중 하나는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한다고 한다.
인터넷 같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과거처럼 직접 가야만 볼 수 있는 세상도 아닌데 우리나라 특유의 쏠림 문화와 이웃이 한다면 나도 해야 되는 경쟁 심리. 그리고 과시문화도 더해져 너도나도 해외여행을 가다 보니 사회 초년생은 돈 모을 새가 없고 가정 경제에도 부담이라고 한다. 외화 낭비에 따른 국가 차원의 부담은 물론이다. 아이들도 방학이 끝나 개학하면 해외여행 어디로 갔었다고 서로 자랑을 하다 보니 아이의 자존감을 위해서 무리인 줄 알면서도 해외여행 가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 왜 철철이 해외여행을 가냐고 물으니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함이란다. 우리나라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러 머나먼 다른 나라로 간다니 어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면 우리나라에 있지 않겠는가?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아가 해외여행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나. 해외여행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는 책이나 인터넷 같은 간접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경제적, 시간상 무리한 해외여행이 꼭 필요한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취지의 칼럼이었던 것 같다.
그 교수님 얘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왜 이역만리에서 떠돌고 있나? 휴가 중인가? 여행 중인가? 휴가를 빙자한 여행인가. 뉴질랜드에 잃어버린 나는 없었다. 배려 깊은 코니,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