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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Apr 17. 2022

미니멀 라이프 과도기

이사를 했지만

얼마 전 미니멀 라이프 관련 에세이가 브런치에 올라왔다.

봤고, 읽다가 놀랐다. 4계절 옷이 30벌이랬나...



나는 간소한 것이 매우 좋다. 

이유 중 하나는 무엇을 잃어버리는걸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소중히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렸다면, 그날 반나절은 종일 짜증이 가득해서 감정 소모가 크고 마음이 아프다. 



어제는 텀블러를 버스에 두고 내렸다. 또. 어느새 2번째다. 이유를 알고 있다. 

난 버스에서 정신없이 핸드폰질을 했다. 



가장 아끼는 텀블러.

텀블러는 나의 최애 용품이다. 매일 아침 두유로 꿀 라테를 만들어 빈속에 먹고 화장 시을 가기 때문에 식사 대용으로 먹는다. 흣. 그런데 어제는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렸나 보다 하고 마음이 살랑살랑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쉬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서 이래도 되나 싶었다. 차라리 미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뭐라도 질척거릴 일이 생긴다. 예를 들면 다시 텀블러를 주문하는 일,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찾기 위해 애쓰는 일, 기억을 더듬어 타고 온 버스가 몇 번인지 내가 어디에 앉아있었는지 고민하는 일... 등


애착! 내가 동일시하는 것! 내가 아끼는 것! 진짜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 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난, 

내 생활환경이 손아귀에 쥐어질 만큼 작은 트렁크에 모두 담기거나 한눈에 보일 수 있는 생각의 부피를 원한다. 하지만 오늘도 살림살이를 하면서 "이걸 버릴까? 말까?" 이 고민으로 30분이 흘러가는 걸 목격했다. 에라이. 정말 싫은데 갖은 상상을 한다. '나이를 먹고 나서 쓸 수 있을 거야.', '살이 빠지면 괜찮을 거야.', '유행은 돌아올까?.', '필요할 때 산다고 돈 쓰지 말고 이걸로 대체해도 되잖아?' 이런 생각들로 플라스틱 공병도 모으고 잘 쓰지 않는 은, 금 소재의 액세서리들을 두고 (참고로 액세서리 안 어울림 그리고 비싸거나 선물 받음 의미가 있음..), 전자 제품 살 때 여분으로 서비스 주는 사은품들(물걸레포, 필터 남아 돔)을 그대로 둔다. 


그 후엔 이 자잘한 물품들을 어디에 모아둔담? 하고 분류를 할 생각에 또 1-2시간이 흐른다.

분류할 공간 확보나 자리 선정, 담을 그릇이나 바구니 씌우기 또는 교체하기 등등등.


뇌는 이렇게 작동하면서 에너지를 쓴다. 나름 힐링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니까. 

이래서 청소는 뒷전이 된다. 마음도 내키고 몸도 내켜야 할 수 있다. 안 그러면 진짜 온종일 걸릴만한 이유가 많다. 최적의 공간, 환경! 시스템! 뇌가 기억하는 범위 내의 가정환경을 만들고 싶다. 소유하고 있는 걸 다시 사지 않고 이왕이면 오래오래 두고 함께 갈 물품들로 소비하고 싶다. 재발 방지! 낭비 방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찾지 못해 안달이 나거나 짜증이 나서 내 마음을 들쑤시는 일 따위 싫다. 


예를 들면

"여보, 이거 어디에 있어? 어디에 있냐고??"



그러니 당장 필요하니까 싸구려를 구매한다든가, 어울리지 않은데 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던가 그런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미니멀 라이프가 왜.. 끝이 없는지 알겠나. 매우 까다롭게 소비하고 선택하고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심미적으로도 개인의 취향이라는 게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쏙 들어야 한다는 것. '그립감', '촉감', '내구성', '가성비', '소재', '성분' 블라블라...



나의 방.

작업실 겸 내 방으로 쓰겠다고 남편에게 말한 뒤 책상에 앉았다. 의자 뒤편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책들이 많다. 남편 책 반 내 책 반. 이 책들 중에 다시 봐야지 하고 펼치고 앉아서 30분 이상 볼 책들이 과연 몇 권이나 될까? 안타깝게도 이미 한차례 버렸고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남편의 베가본드 시리즈는 연애하는 십몇 년 동안 단 한번 읽는 걸 본 미완결 만화책이다.. (그러니까 못 버려요 아 완결 나왔는데 못 구했다고 했나;)


제발 

물건은 애용하는 것을 위주로 간결하게 두고 싶다. 사용의 빈도나 중요도!

이사 오기 전에 전셋집에서 짐을 쌀 때 옷을 2포 대기 싸서 버렸다. 새 집에 와서도 붙박이장 설치 후 2포 대기를 버렸다. 버리고 또 버려도 버릴 물건이 생긴다는 게 정말 소름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옷을 사지 않는다. (어차피 버려질 물건 중 대표이며 심경을 건드리는 화두의 물건이기도 함) 나도 실현이 가능하다면, 옷을 30벌로 줄여볼까? 싶다. 


일 년에 단 한 번도 쓰지 않는 물건은 웬만하면 버리자. 


이사 온 지 5개월째,

30대 중반이 되고 매달, 매일, 나름 깨어있으려고 매사에 실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매우 많다. 가계부도 써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마음도 들여다봐야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불에 먼지가 매일 쌓이는 것처럼 자신과 자기 주변을 관리하는 일, 우리의 하루는 너무 복잡하다. 그러니 미니멀 라이프가 얼마나 정신건강과 자연에 필요한지 모두 알고 실천하는 게 아니겠나. 


마음 쓰지 않아도 될 일에 이걸 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하면서 반나절 주말에 휴식하지 못하고 보냈다. 정말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니 나에게 선물은 안부 전화나 만남이 좋다. (물론 현금이 제일 좋겠지만) 물건은 받음과 동시에 고민거리도 쥐어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무튼, 언제 즘 우리 집 베란다를 정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서 더 큰 결단력과 절제력을 발휘 하서 모조리 처리해야 할까? 

나는 소중한 몇 가지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하는 자신이 되길 원한다. 

그럼 이만 좀 더 급진적인 미니멀 라이프를 추진해보자. 가속도가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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