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편지
나는 낭만이라곤 없다.
가장 낭만적인 사람이 무슨 말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의미 없는 눈물을 흘리곤 한다.
눈물이 왜 날까 모르는 것처럼
웃음도 시기심도 이유 없이 피어난다.
나는 낭만이라곤 없다. 후하게 베푸는 법도 잘 모르고 좋은 말을 상냥히 해주는 법도 잘 몰라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옛날에 나에게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다. 번화한 길거리에서 임시로 생겼다 사라지는 그런 작은 거처 점술가 아저씨가 한 겨울에 온열기 앞에서 입김을 불며 해준 말이다.
생각을 하고 말은 잘 뱉지 않는다.
생각을 보고 말은 되도록 참는다.
어린 넷째 동생이 말을 배울 때가 기억이 난다. 단어를 하나 듣고 생소했거나 인상 깊었거나 어색하다고 느끼면 중얼거리며 몇 번이고 되뇌던 녀석. '나도 저렇게 말을 배웠을까?' 했을 만큼 걘 유독 중얼거렸다. 어린 그때의 나도 동생이 내 말을 배울까 봐 '아, 이런 말은 조심해야 해.' 하고 여겼다.
낭만을 꿈꾼다.
내게 유토피아는 낭만이라는 말에 씌워진 바람에 흩날리는 봄치마와 같은 커튼이다.
커튼의 밑단, 바람이 만드는 플로우. 살랑 살랑 부는 오후에 머리맡 팔베개를 하고 티셔츠가 살 싹 올라가서 배가 보이고 발목과 발이 드러나도 춥지 않은 그런 날. 커튼 아래, 그 아래 누워 커튼이 흩날리는 걸 보고 있을 때의 기분. 마치 정오의 오로라처럼 펼쳐지는 그 세상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아 얼마나 넘실거리는지 참 나울 나울 행복한 미소를 짓고 꿈을 꾸게 만든다.
나처럼 낭만을 꿈꾸는 친구가 있다. 녀석이 우리 집엘 놀러 왔다. 이사를 했고 집들이를 와서는 현금 봉투와 편지를 주고 갔다. 다른 한 친구와 셋이서 오후부터 저녁을 보내고 봄내음과 해 질 녘을 경험했다. 햇살이 다했고 바람이 다했다. 저 멀리 우리가 처음 만났던 담양이 생각난다.
성장이 떠오르는 밤이다.
그리운 사람들, 보고 싶은 친구들, 여운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손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사랑하는 나의 친구에게.
친구, 우리가 열일곱에 만나 이제 서른 하고도 수년이 지났다.
한 인생의 가장 순수하고 여물지 않던 때부터 지금까지
너는 나에게 얼마나 좋은 친구였는지를 생각하면
그것을 말로 형용할 방법이 없음을 느낀다.
소녀가 여인으로
학생이 교육자로
끊임없이 움트어 내는 예술가로
그리고 한 가정의 아내로 성장한
너를 볼 때 나는 너무나 뿌듯하고 감동스러워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곤 해.
서로의 좋은 날 힘든 날을
함께 나누며 보내온 17년 세월이
너무도 순식간이었으니
앞으로 나누고 응원할 우리의 생도
묵묵히 찬란하기를 그리고 훗날 돌이켜 볼 때
또 참 빨리 잘 지나갔구나
할 수 있기를.
건강이 제일!
너의 마음의 평화와 가정의 행복
그리고 너의 꿈이,
네가 살뜰히 꾸며놓은 이 집에서
많은 살을 붙인 든든한 뼈대로
이루어 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