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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Aug 01. 2021

네 비주얼은 상위 몇 프로라고 생각하니?

그놈의 외모

"배우를 하고 싶다고?"

"네."

"그럼 네가 생각했을 때 네 비주얼이 상위 몇 프로쯤 된다고 생각하니?"

"....(음 수학을 못합니다만..)"

"내가 봤을 땐, 너가 정말 정말 나중에 잘되면 잘 나가는 에이급 조연배우? 정도는 가능할까 싶은데."

"아 네.."

"회사에서는 상품 가치가 있는 배우에게 투자를 해. 원빈이나 전지현을 봐. 보석처럼 빛나는 얼굴이잖니. 회사는 상위 10프로 되는 애들을 데려다가 상위 5프로처럼 꾸며서 팔아. 또는 상위 5프로를 데려다가 상위 1프로처럼 만드는 일을 하지."

"아 네.."

'근데 넌 아니잖니.'




십년 전 일이니까 그때는 사회가 더욱 외모지상주의였다. 그래서 듣고만 앉아있었나보다. 지금 들었으면 황당한 소리를 왜 듣고 있어야 하나 하며 박차고 "죄송합니다."하고 일어섰을지도 모른다. 그 대표는 호의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줬다. 현실을 알라고 말했다. 나의 체형, 키, 몸매, 살집, 얼굴 그 어느 것 하나 내세울만하지 않으며 절대 투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너의 꿈을 응원할 수는 있지만 연예계라는 바닥은 살얼음 판이라고. 그러며 전도연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덧붙였다. 전도연은 눈빛부터 달랐고 앙큼한 매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마치 나에게도 앙큼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검은색 에이형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후회스러웠다. 대체 왜 상대에게 마음에 드려고 했을까. 그래야만 하는 직업인지는 일로 겪은게 아니었다. 앞뒤가 구린 소문이거나 경험담이 비꼬아진 이상한 개념들로 여배우를 꿈꾸는 여자는 매우 불쾌한 위치였다.


스물 둘, 셋즘 작은 소속사가 있었고 이리저리 유명 메이크업샵도 가보고 모델하는 친구들도 만나보고 걸그룹을 하라고 투자자들 앞에서 춤추며 끼도 뽐냈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하니 웃프다. 배우든, 연예계든 아는 사람이 없는 나로서 당시 믿을만한 사람은 중학교 때 학원 선생님 한 분 이었다. 아는 인맥 중에 영화제작일을 하는 사람을 소개해주고 매니저를 만났다. 그렇게 2-3년 정도 소속되어있었다. 선생님은 술한잔 사주시며 이야기 했다. 세상은 정말 무섭고 그 바닥은 더욱 더러운 곳이니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의 꿈은 당시 원대했다. 아시아의 무대에서 활동하는 배우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남에게 평가를 받는다는게 스스로를 얼마나 위축시키는지 아는가. 그게 자신의 손짓이자 눈빛이고 입술이자 입모양이고 말투이자 음성이라면. 표정이 굳고 걸음을 걸을 때 발가락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이며 늘 밝고 미소지어야하는 태도의 괴리감 사이에서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도마 위에 올려진 비닐 벗은 물고기랄까.



그땐 그랬다.


성적 희롱이 될 만한 말투, 무슨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곳에서 낯선 사람과 오디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시선들, 이상한 사람은 많으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자도 많을테지만 어린 나이에 그런 위태로운 경험은 마음의 문을 닫기에 충분했다. 철컹 - 철 컹 -


자신감 소멸, 반사회적인 생각, 자기 파괴.

내 이름을 지우고 싶었다. 배우로 활동한 시간을 지우고 싶었다. 원래의 내 모습이 아닌 조장된 상태로 희망이나 '꿈'이라는 빛살좋은 개살구로 사는 기분은 매우 처참하다. 아마 어딘가 나처럼 상처받은 누군가 성별을 떠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정말 많이 세상이 건강하고 올바르게 가기위해 조정 되고 힘써지고 있다. 어딜가도 외모로 가격을 매기진 않는 세상이 오지 않았나..? 소극적인 자세로 움츠려드는 나를 볼 때마다, 난 필시 누군가를 움츠려들게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친절해야지 하고 다짐한다. 



당신 존재 자체를 꽃피울 수 있는 곳에서.

그 서늘하고 축축한 마음을 가끔 따뜻한 자리로 의식적 선택을 통해 옮겨주세요..

굳세게 가슴을 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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