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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Dec 26. 2021

“앞니 2개가 부러졌어.”

막달의 액뗌


겨울이 됐고 보금자리를 옮겼다.

만약 여기서 아이를 낳고 십 년가량 지낸다면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십년 즈음 서울에 살았지만 고향이라는 감성적인 향수는 덜하다.

길면 4년, 짧으면 2년. 짧은 단위로 동네가 바뀌어서 일수도 있고,

버전 2의 나는 버전 1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집에서 산전산후 요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인도와 도로 사이,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얕은 보도블록을 올라타지 못하고 빗겨나갔다. 

자전거는 앞으로, 내 몸뚱이는 보도블록으로.

그렇게 쉽게 쓰러졌고 앞니 두 개가 부러졌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여겼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안전지대로 올라서고 싶었다.

마음이 성급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은 사고를 초래했고 난 200만 원가량과 4주 이상이라는 긴 시간을

앞니 치료에 묶이는 신세가 됐다.



뒤따라 오던 박언니는 날 보며 어안이 벙벙해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빨리 달리지도 않았는데!” 

맞다. 난 어쩌면 그냥 자전거를 얼른 탈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꽤 답답했고 불안했고 무거웠으니까.


이때, 신체인 ‘나’를 봤다. 몸뚱이의 ‘나’

이를 인지하고 있는 정신. 몸과 정신이 일치되지 않아서 뇌는 굳었고 황당한 상태로 말이 나오지 않아 근처 벤치에 앉아 잠깐 숨을 쉬었다. 그때 내 생각의 순서를 읽어봤다. 


우선, “시간”을 알아야 했다. 몇 시지? 난 약속 장소에 늦을꺼야? 여기서 얼마나 멍을 때리고 앉아있어야 상황판단을 내릴 수 있지? 바로 뭘 해야 순서에 맞지? 그리고 몸의 상해가 생각났다. 

“아!!!! 맞다 내 이빨~~~~! 내 무릎!”




그때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기랄……”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 정신은 말짱했지만 몸이 망가졌고 이를 챙겨야 한다는 걸 알다.

언니는 말했다. “얼른 치과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당장 가~ 오늘가.”  사태를 파악하고 택시를 불러 그 못된 자전거를 꽁꽁 묶어두고 1시간 걸려 6시쯤 치과 베드에 안착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1시간 동안 뇌는 멈췄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고 내 마음은 철컹 닫혀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으려고 매우 명료한 정신만 붙든채 몸을 기대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 다친 거야?’

'아, 다쳤구나?'





몸에도 내가 있고 마음에도 내가 있다.

몸이 회복되는 동안 놀란 줄 몰랐던 마음은 꽤 충격이 컸는지

몇일을 철저한 악몽을 불러내고 설잠을 자게 했다.

이를테면, 남편이 다른여자와 아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는 뭐 그런.


난 정신만 바짝 차렸지, 애처럼 놀란 마음은 후에야 발견했으니

이렇게 정신 마음 몸을 모두 알아차리게 된 웃픈 일이 된거다.




치과 진료를 본 후 뒤늦게 남편과 통화가 닿았다. 

"오빠... 나 이가 부러졌어. 그것두 두개요."

"뭐? 장난하는거 아니지?"

"응.. 진짜 부러졌다니까 허허허"

"어쩌다가 부러졌어~"

"아니 .. 내가~"

"아이구 지금 그럼 빙구처럼 웃고 있는거야?"

"응~"


소식을 전하는데 그제서야 울어도 돼겠다 싶었는지 뺨에 굵은 눈물이 쭉쭉 두 줄씩 흐르는 게 아닌가.

(놀랐네 놀랐어…)



밤에 페이스톡으로 전화를 걸어온 엄마.

“연말에 액땜했다고 생각하자. 내년엔 정말 좋은 일들만 생기려고 그런 거야. 

아이구, 내 새끼 얼굴 좀 보자~~~~~”


부러진 이로 웃으며 닭강정을 먹는 나를 보며

엄마는 꺌꺌꺌 귀엽다고 웃었다.


화면 너머 ‘내 새끼’, ‘이쁜 얼굴 좀 보자’ 하면서 건내준 

그 사랑의 말 한마디가 단지 음성으로 귀에 전달됐을 뿐인데

모두~~~~ 치유받은 기분이었다. 




모두, 눈길과 자전거 조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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