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인 줄 몰랐어
며칠 전 늦은 시각 남편과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글에서 썼던 비폭력 관계에 심취한 나머지 남편과 신혼 초기에 심하게 다퉜던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을 막 했을 때 우리 둘은 가정의 탄생에서 경제관념과 행정 문제로 가치관이 달라 크게 다퉜다. 돈에 대해 개념과 목표가 부실했던 나는 남편에게 혼이 많이 났고 급기야 결혼을 후회하는 모습에 상처를 너무 크게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경제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졌고 쓰러질 뻔했다.
그는 그때 현실적으로 돈을 벌라고 주장했고 나는 미래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기다려달라, 포용해주길 바랬다. 쉽게 말해 그는 꿈과 별개로 일을 하지 않는 나를 비난했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으니 미래를 보고 기다려달라고 사정했다.
그 상처는 해소되지 않았는지 툭하면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를 억울하고 미운 기분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면 둘 사이에 내가 손해보고 있고 참고 있다, 희생하고 상처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당신을 위해 이만큼 양보하고 있으니 나의 노력을 인정해라는 마음.
생각해보면 상처가 깊었지만 그 일로 많은 성장도 이뤘다.
남편에게 아내로서 기대고 있었던걸 인정했고 동등한 입장으로 그에게 잣대를 댈 땐 언제고 나에겐 느슨하게 어리고 약자다라는 이유로 높은 대우를 바랐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자립하고 성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과 실행을 통해 행동하는 기쁨을 얻었고 소득도 늘었다.
사과해라. 그때 받은 상처에 대해서.
놀랍게도 대화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이 이야기 끝에서 대단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에게도 이 일화는 평생 지우고 싶은 큰 상처라는 것이다. 다시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가장 아픈 구석 중에 하나인 기억..
나만 그 싸움에 상처받은 피해자인 줄 알고 평생 그에게 사과받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가끔 뒤끝 있게 굴어왔는데, 알고 보니 그에게도.. 나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크고 깊었다는 것이다.
그 일을 살면서 다시 들추고 싶지 않아서 반성하며 자신의 성장을 이뤄왔다는 것. 내가 상처받을 까 봐 일부러 그 일을 다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으며 나에게 더 한없이 잘해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일도 내 마음이 조작해낸 상처받은 자의 일관된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사과를 받았으면서 몇 번이고 사과를 받고 싶고, 기억에서 사과받은 부분은 편집해버리는 그런^^?
남녀 관계에서 우위를 놓자면 내가 위고 싶고, 내가 주기보다는 받고 싶은?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고 싶은?
넌 듣고 싶은 말만 듣잖아 바보야
언제나 생각하자 상대방의 입장에서
언제나 생각하자 내 마음의 소리에 휘둘리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