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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Aug 29.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하자

과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밝히자면, 나는 금사빠의 부류에 속한다. 내가 먼저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쉽고, 누군가 나를 먼저 좋아해 주면 나도 그 사람에게 금방 마음을 여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금사빠인 나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두려워했던 때가 있었다. 2018년 겨울, 두 번의 연속적인 연애가 5개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그리고 그 관계를 끝내기로 결심했던 장본인이 나였을 때가 그랬다.


두 번의 연애 모두 너무도 당연하게 그 사람이 좋아서 시작했고, 관계가 발전되면서 사랑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자꾸 어긋났다. 상대방의 어떤 말, 행동 하나 때문에 한 달 만에 마음이 금방 식었기도 했고, 또 다른 연애는 5개월 동안 천천히 감정이 식어 결국 둘 사이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두 번의 연애 모두 관계를 끝내기로 결심한 것도 나였고, 그래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것도 나였다. 그런데 도리어 내가 더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더라도, 또 내 마음이 변덕을 부려서 또 금세 마음이 식거나 변할까 봐 두려웠다.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생각하며 내 스스를 믿을 수가 없으니 더 괴로웠다.


이 당시 내가 상처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 영화가 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이다. 주인공 리즈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 스티븐과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이혼을 하게 된다. 그 후 무명 배우로 활동하는 데이비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 관계마저 삐걱거린다. 쉼 없는 연애와 이별을 거치면서 스스로를 잃어버렸다고 느낀 리즈는 삶의 열정을 되찾고, 무너진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 인도 그리고 발리 3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본 글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영화 결말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여행지인 이탈리아에서는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며 마음껏 피자와 파스타, 젤라또를 먹으며 식욕을 되찾는다. 그리고 도착한 인도의 요가원에서는 수련을 하며 전남편 스티븐과 데이비드와의 이별의 아픔을 용기내어 마주하고, 비로소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마지막 여행지인 발리에서 오전에는 명상을 하고, 오후에는 일하며 균형 잡힌 일상을 살아가던 중 펠리페라는 남자를 만난다.


발리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곧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리즈에게 펠리페는 미국과 발리를 오가며 사랑을 이어가자며 프러포즈를 한다. 리즈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 또다시 균형을 잃고 스스로를 잃어버릴까 봐 펠리페의 프러포즈를 거절한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은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주술사 케투의 말에 용기를 내 펠리페와의 사랑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때론 사랑하다가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거야



리즈라는 캐릭터가 연이은 이별로 인한 상처의 아픔을 지니고 있고,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망설이는 인물이었던 만큼, 나 스스로를 리즈와 동일시하며 엄청 몰입했다. 위로를 준 주옥같은 대사가 많았지만 인도의 요가원에서 만난 텍사스 출신 리처드의 대사가 유독 쿵 와닿았다.


"다시 사랑을 믿어봐"


리즈가 발리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사랑을 믿어본 것처럼 나도 스스로를 용서하고, 다시 한번 사랑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2021년 여름의 나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두려워하고 있는 상태로 돌아왔다. 다만, 2018년 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번에는 변해버린 상대방의 마음이 떠나버린 자리에 남아 내 마음을 애써 정리해야 했다.


운명적인 사랑이라 믿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을 숨기지 않으며 최선을 다했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데서 오는 행복감을 느끼며 내 사랑의 크기도 커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랑도 다 못했는데 찾아온 이별의 펀치를 세게 맞았다.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가 두려워졌다.


함께 가기로 했던 여름휴가 계획이 어그러지고나서, 이미  휴가를 취소하기도 싫고 혼자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싫어 급하게 속초에 숙소를 했다. 서울로부터 거리도 멀고, 둘의 추억이 없는 곳이기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진 만큼 생각도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나를 가득 메웠고, 어딜 가든 그와의 추억이 나를 따라다녔다.


다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이별로 인한 상처로 힘들어하는 내게 따뜻한 위로를 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영화가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지난번과는 다른 장면, 다른 대사가 내 가슴에 쿵하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리즈: 내 감정, 정리된 줄 알았는데. 사랑하나 봐요. 너무 그리워요.
리처드: 맘껏 그리워해. 사랑도 그리움도 결국 바닥나. 당신 가슴에서 그 감정을 다 끌어내면 그 남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혼까지 정리하면 그만큼 여유가 생겨.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아? 새 세상이 열린다고! 그럼 꿈꾸던 사랑으로 그 공간을 채워봐. 나중엔 용량이 커져서 이 세상도 사랑하게 돼.


그에 대한 생각을 속초 밤바다에 깔끔하게 묻고 오고 싶었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의 일상에서 여전히 그는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그냥 결론을 내렸다. 애써 노력해도 떨칠 수 없다면 그냥 그와 함께한 기억의 조각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맘껏 그리워하자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이 그리움도 언젠간 바닥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랑을 품을 여유의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대답은 YES.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상처 받았었냐는 듯이 다시 사랑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금사빠니까 :)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 세상까지 품을 수 있게 사랑의 용량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래본다.


Photo by Shelby Deet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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