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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Jun 24. 2022

어른이 되어 눈을 흘긴다는 것의 의미

우리 모두가 눈을 자주 흘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눈을 자주 흘기는 아이였다.


욕심이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아서 밖에 외출만 했다 하면 내 마음을 훔친 물건이 자주 생겼다. 지금은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큰 편이 아닌데, 신기하게도 어릴 때의 나는 그랬다. 아무튼,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내 레이더 망에 걸리면 엄마에게 달려가 옷자락을 붙잡고 졸랐고, 엄마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무작정 사달라며 때를 썼다.


원하는 물건을 갖기 위해 내가 시도한 최후의 수단은 눈을 잔뜩 치켜뜨는 것이었다. 심술궂게 부풀린 볼과 한껏 삐죽 내민 뾰로통한 입술과 함께. 이런 표정이 나온다는 건 이 꼬마가 잔뜩 뿔이 났다는 의미이므로, 이쯤대면 엄마는 져주듯이 물건을 사주셨다. 그렇게 눈을 흘기는 것이 한 번 통하니 그 후부터는 갖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원하는 바를 쟁취하고 싶을 때마다 마치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이 눈을 자주 흘겼던 것 같다.  


그랬던 꼬마는 이제 서른한  먹은 어른이 되었고, 특히 직장인이 되면서부터는 웬만하면 일상에서 눈을 흘길 필요가 없다. 그래서  흘김이라는 행위 자체를 까먹고 살았는데 얼마  누군가로부터  흘김을 당했다! 그런데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 전 내가 쓴 책(서투르지만 둥글둥글한 팀장입니다)이 출간되고, 막 따끈따끈한 인쇄본이 도착했을 때였다. 팀원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서프라이즈로 전달해주고 싶어서 회사에 출근해서 팀원 한 명씩 미팅룸으로 불렀다.


그중 J는 4번째 타자였는데 갑자기 1:1로 소환되니 ‘대체 뭐지?’ 하는 눈빛으로 미팅룸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팀원들한테는 조용히 책을 내밀었지만, 이번에는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J… 저 할 말이 있어요.”

“(휘둥그레 한 컷 커진 눈) …?”

“사실 저 퇴사해요”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J의 얼굴이 빨개지며 눈에 고인 눈물이 보였다. 허걱. 장난이 지나쳤다 싶어서 바로 뻥이라며 이실직고하고, 책을 건넸다.


너무도 쉽게 속아주고 또 눈물까지 보여준 J가 고맙고 귀여워서 며칠 전에 당시의 일화를 들먹이며 놀렸다. 그때 J가 “진짜 너무해요!” 하며 눈을 흘겼다. 성인이 된 후 또 다른 성인에게 이렇게 눈 흘김을 당한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연인도 친한 친구도 아니고, 직장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팀원으로부터.


곰곰이 생각해보니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눈을 흘긴다는  자체를 상상할 수가 없다. 회사란 곳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주어지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도 살을 맞대는 현장이다. 속으로는 ‘, 이걸 내가 ?’, ‘진짜 하기 싫다생각해도 마음과는 별개로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 이미 외치고 있는 넵무새가 되기 일쑤다. 대표님이나 동료가 어떤 업무를 부탁했는데, 마음에  든다고 해서 눈을 흘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팀원에게  흘김을 당했을   상황이 어색하면서도 기뻤던  같다. 적어도 감정이 드러나는 솔직한 얼굴을 보여줘도 안전함을 느낄  있는 사람은 되는  같아서.


과장 조금 보태면, 상대방에게 눈을 흘긴다는 것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듯이 아닐까? 서운하고 미워하는 것도 결국 애정이 있어야 나올  있는 감정이니까.  


그러니 누군가에게 눈 흘김을 받는다면, 기꺼이 기뻐해도 좋겠다. 그리고 살면서 눈을 흘길 수 있는 대상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면 좋겠다.



Photo by Mickael Gresse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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