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속도지만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D: 아, 행복해. 사랑해 ~
H: 나도 사랑해~
이 달달한 대화는 내 친한 친구 부부의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 내용이다.
한국 여자 H와 스웨덴 남자 D는 결혼 올해로 2년 차 부부이다. D가 H의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오면서 둘은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천생연분, 혹은 소울 메이트로 불리는 나의 상대방을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것 같다. 성격도, 취향도 모든 것이 잘 맞는 나의 인생의 반쪽. 그러나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지만, 특히 사랑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거나. 딱 외모는 내 이상형인데 대화 코드가 통하지 않았던 사람, 비주얼은 조금 아쉽지만 취향 및 대화 코드가 너무 잘 맞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맞는 사람을 만났어도, 항상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롱디를 하면서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져 작별을 고한 적도 있고, 처음에는 잘 맞는 것 같다고 느꼈던 사람도 연애를 하다 보니 나와 다른 점이 하나 둘 보이고, 그 차이가 극복되지 않아 헤어진 적도 있었다. 이쯤 되면 지구 상 어딘가에 존재할 나의 천생연분을 찾는 것보다는, 특정 취향 또는 가치관 등 가장 중요한 부분 외에 나머지는 어느 정도 포기 및 감수를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 친구 H와 D를 보고 있노라면, 천생연분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H는 2016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봉사활동을 함께 하면서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타지에서 봉사 활동하는 여자 친구 H를 만나러 D가 말라위에 왔던 적이 있다. 190cm의 큰 키의 소유자 D는 사진에서보다 실물이 더 귀여웠고, 엄청난 애교를 가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말라위에서 합친 이 커플의 모습을 본 첫날, 어찌나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지. D는 H가 하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밥을 먹는 모습, 물을 마시는 모습, 졸려서 눈을 꿈뻑이는 모습. D의 말 끝마다 '귀여워'가 끊이지 않았고, 꼭 그 말과 함께 H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나를 비롯한 다른 봉사 단원 동기들은 갑자기 너무 외로움을 느꼈다. 타지에서 나름 적응하고 잘 살고 있었는데, 꿀 떨어지는 H&D의 모습을 본 이후로 정말 연애가 너무 하고 싶어 졌더랬다.
H&D 커플은 그 후로도 달달한 연애를 지속하다가 작년 6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나와 말라위 봉사단원들은 결혼식에서 축하 댄스 공연도 하고, 서울 북촌에 자리 잡은 이들의 신혼집에도 여러 번 놀러 가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얼마 전 H가 서울에서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면서 H&D 부부는 1년 간 제주 살이를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4월 말 스위스 여행이 취소돼서 대안으로 여행할 곳을 물색하던 중 제주도에 정착한 이 둘을 볼 겸 제주도 비행기 티겟을 끊었다.
연애 초기였던 2016년 이후로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둘은 여전히 달달했다. 여전히 H와 D는 서로의 모든 모습을 사랑스러워했고, 귀엽다는 칭찬과 함께 입맞춤으로 표현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일박 이일 동안 이들 부부의 생활공간에서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H&D가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을 평소보다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고, 무엇이 이들을 천생연분으로 만드는지 보였다.
D는 게임 컨셉 디자이너이다. 온라인 게임에 들어가는 배경의 컨셉을 창조하는 일을 하는 만큼, 자연 및 사물에서 받는 영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실제 그가 받은 영감은 바로 그의 게임 세계에 투영된다. 그래서 D는 하루 20km 이상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고, 길에서 발견하는 벌레, 나뭇가지 등 사소한 것 하나라도 쉽게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관찰한다.
H, D 그리고 나 셋이서 제주도 올레길을 산책하는데 길에서 뭘 발견할 때마다 멈춰서는 탓에 D는 한참 뒤로 뒤쳐졌다. 갈 길은 먼데 몇 미터 걸을 때마다 멈춰 서면, 짜증도 날 법한데 H는 익숙하다는 듯이 D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조용히 기다려줬다. D가 마치고 와서 관찰한 것에 대해 재잘재잘 이야기하면 H는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다른 속도로 길을 걷지만, 그 길 위에서 서로를 기다리며 함께 걷는다는 것
천생연분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먹고 '맛있다'라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처럼 H와 D는 하루에도 '사랑해'라는 말을 수십 번 한다. 길을 걷다가도, 식사를 하다가도, 티비를 보다가도. 그들에게 '사랑해'라는 세 글자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정말 궁금해서 내내 참다가 마지막 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와인으로 무르익은 분위기를 타고 물어봤다. H&D 둘 다 나의 질문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는 눈치였다. 결론적으로는 순간 '행복하다'는 감정이 들 때 '사랑해'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았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든, 좋은 풍경을 보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결국 그 바탕에 서로의 존재가 있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연애를 할 때 '사랑해'라는 말을 꽤나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 같다. '사랑해'라는 단어를 너무 자주 사용하면 그 무게가 가벼워져, 그 의미를 잃을 것 같은 걱정 때문일까. 그러나 H&D 부부의 모습을 보면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사람에게 '사랑해'라는 말은 아낌없이 할수록 사랑의 크기는 더욱 커질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