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죽여봐야 많이 살릴 수 있다
최근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하면서 가장 상처 받고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 있었다.
사랑의 크기는 모름지기 마음을 아끼지 않고 드러낼수록 합집합처럼 더욱 커질 것이라 믿었는데, 왜 풍선처럼 부풀다가 중간에 빵 터져버린 것일까.
첫 만남부터 특별한 느낌을 받은 사람이었다. 취미·취향이 비슷하여 대화도 잘 통하고, 그 사람 자체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 느껴지는 품위가 좋았다. 이후 바쁜 일상 속 만남을 이어가며 온갖 타이밍이 너무 적절하여 온 우주가 우리의 만남이 잘 되기를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는 그를 운명 같은 상대라 믿었다.
이전의 연애에서 나는 주로 사랑을 받는 편에 속했다. 운명의 상대라 생각해서일까, 이번만큼은 마음가짐이 달랐다. 그가 마음을 표현하며 성큼성큼 다가와주는 만큼 나도 마음을 숨기지 않고 나를 드러내어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용기를 냈다. 사랑은 아끼면 아낄수록 작아지고,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용기 내어 시도했던 내 사랑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 같았다. 사랑에 대한 내 믿음이 배반을 당한 것 같아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렇다면 이 다음 찾아올 사랑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막막했다. 좋아도 너무 좋은 티를 내지 않고, 애써 내 마음을 숨겨야 하는 걸까.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도망치듯 속초로 떠났다. 그리고 여행 중 읽었던 한 책에서 쉽게 풀리지 않던 이번 이별의 실마리를 찾았다.
걱정하는 마음이 차올라 저질렀던 그 모든 일은, 실수였습니다. 잠시 생장을 멈췄던 식물은 갑자기 과해진 물과 해를 견디지 못해 픽픽 쓰러졌어요. 식물의 머묾에는 이유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만, 그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넘치게 주는 것이 제일 위험해요.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임이랑)
식물이 저마다 살아갈 수 있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있는 것처럼, 사랑도 사람마다 맞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너무 사랑한다는 이유로 물을 너무 한꺼번에 많이 준 나머지, 과습으로 결국 내 식물을 죽게 만든 꼴이었다. 이번 이별을 야기한 원인에는 이 식물이 어떤 온도를 좋아하는지, 얼마만큼의 물을 소화할 수 있는지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적당하게 물을 주고, 온도와 습도를 맞추지 못한 내 탓도 있었을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실마리를 찾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도 식물은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주변에 물어보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에 내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 수 있지만, 사랑은 검색해도 알 수 없으니 더욱 어려운 것 같다.
많이 죽여봐야 많이 살릴 수 있어요.
그래도 책에서 말하길, 열심히 키우고 열심히 죽여봐야 훨씬 더 잘 키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번에 찾아왔던 식물은 죽였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번 내게 오는 식물은 잘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는 식물이 조용히 멈추거나 시들시들해졌을 때 그 속도에 맞춰 물과 햇빛도 줄여줍니다. 그들도 잠시 정적을 보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멈춰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잠깐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식물을 위한 길입니다. 휴식기를 맛있게 잘 보낸 식물은 반드시 다시 깨어나 이파리에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예쁘게 자라줄 테니까요.
Photo by Kawin Harasa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