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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Feb 11. 2022

가슴이 답답할 때 떠나는 드라이브는 언제나 옳다.  

똑같은 일상에 균열 내기

2월에 들어서면서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포근해졌다.


6시만 돼도 밤하늘이 칠흑같이 깜깜했는데 이제는 6시 30분이 되어야 어스름해지기 시작한다. 아직 봄이라고 하기엔 이르지만 그래도 아주 가까운 곳에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다.


단골 쇼핑몰의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핑크, 옐로우, 오렌지, 그린 알록달록한 파스텔톤의 신상 옷이 매일 업데이트되고 있는데 가볍고 산뜻한 옷차림에 설레는 마음이 일렁이고, 쇼핑 욕구는 한껏 차오른다.


계절상으로 봄은 다가오는데 정작  심리 상태는 다시 한겨울로 돌아간  같은 상태가 최근 지속되고 있다.


무거워지는 생각을 정리하고, 그저 쉬고 싶은 마음이 커서 무작정 금요일 휴가를 냈다. 어떤  해야  답답한 마음을 정리할지는 뾰족한 수는 없었으나 일단 드라이브를 떠나 보기로 했다.


뭘 입을지 고민하다가 평소에 손이 가던 검은색 계열의 스웨터보다는 노란색의 가디건을 오랜만에 옷장에서 꺼내 입었다. 날이 포근한 것 같았지만 막상 창문을 열어보니 하늘이 조금 뿌옇다. 기상 정보를 찾아보니 미세먼지 나쁨 수준이다. 뭐랄까 날은 따뜻하지만 미세먼지가 답답하게 시야를 가리는 이 상황이 지금의 내 심리 상태랑 너무 비슷한 것 같았다.


북적거리는 서울을 떠나 파주시로 진입하니 자유로에 있는 차들도 뜨문뜨문해져서 시속 110km가 넘는 속도로 시원하게 달렸다.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최근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았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고 흩어져서 어지러운 느낌이었는데, 오늘에서야 조금씩 연결되면서 정리되는 것 같았다. 비로소 생각의 조각들이 이어져서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각이 묵혀지고 굳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자유로를 한창 달리고 있는데 왼편에 있는 철조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상을 살면서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서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생각났다.


‘아 맞다, 우리나라 분단국가였지’


편안하지만 동시에 갇혀 있기도 한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에 약간 자극을 주면 다시금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얼마 전 인천에서 일몰을 바라볼 때였다. 지평선 너머로 빨갛게 타는 해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곧 모습을 감추려고 했다. 마음속으로 ‘해야 제발 천천히 사라져 줘’라고 외쳤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움직이는 건 해가 아니라 나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해는 그대로 있을 뿐인데 내가 있는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해가 멀어지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지구과학 시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어렸을 때 배웠을 기초 상식이 상기되었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데 일상을 내 중심으로 살다 보면 미처 인지하고 못하고, 잊게 되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았다.


분단국가라는 오래된 진실을 문득 깨달은 순간, 내 머릿속에서 여러 질문들이 스쳐 지나갔다. 1950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지금처럼 분단국가로 남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 일단 남자들이 징병제로 군대를 가지 않을 테지, 그럼 군대 가는 남자 친구 기다리면서 결국 헤어지는 커플도 줄어들겠지. 평균 연애 수명이 길어졌을까?   


- 남자들의 대화 주제도 달라지겠지. 남자들끼리 군대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주로 할까?


- 취업 시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남자와 여자가 조금 더 동일선상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양쪽에게 더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을까?


- 국가 예산의 10% 정도가 국방비로 쓰이는데, 이 예산은 다른 어떤 곳에 쓰였을까? (찾아보니 전 세계에서 GDP 대비 국방 예산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 5위라고 한다.)


물론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바뀌지 않고, 세상은 그대로 굴러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이러면 어땠을까?” 상상을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미쳤다.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고 더 나은 상황을 그려볼 상상력이 있다면 적어도 내 삶은 바뀔 수 있다.


그저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밖으로 나온 것인데 우리나라의 국방비 예산까지 생각이 미치다니. 드라이브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역시 가슴이 답답할 때 떠나는 드라이브는 항상 옳다.


경치 좋은 파주의 한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더욱 가벼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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