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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Feb 27. 2022

운동, 책 그리고 글쓰기

나만의 동굴에 갇혔을 때 몰입하는 3가지

최근 스트레스만으로 급 체했을 정도로 힘든 날이 있었다. 그 후 약 2주간 암울한 심리 상태가 지속되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점심에는 동료들과 나가서 식사하는 것을 선호하고, 피곤한 상태였어도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E’ 형인데, 갑자기 ‘I’ 성향이 튀어나왔다. 누군가를 만나서 아무렇지 않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원래도 꾸준히 하던 운동을 아침, 저녁으로 더 열심히 했고, 점심시간에는 혼자 빠르게 밥을 먹고, 남은 시간에 카페에 가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다. 그야말로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갇힌 것처럼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예전의 나였다면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 같은데, 서른 살이 된 나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관찰자의 모드로 스스로를 돌아보니 외부의 상황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운동, 책 그리고 글쓰기 이렇게 3가지에 몰입하는 것 같았다.  




운동


작년에 바디 프로필에 도전하면서부터 운동을 꾸준히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제 운동은 조금이라도 생각이 복잡하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내가 본능적으로 몰두하는 취미가 되었다. 일이 많아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은 평소보다 두 시간 반 일찍 일어나 기어코 헬스장을 간다. 출근 전에는 헬스, 퇴근 후에는 폴댄스.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운동으로 끝내는 루틴을 이어간다.  


처음에는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로 운동을 지속한다. 힘든 시기일수록 운동에 의지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운동에 매달리게 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트레드밀을 달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웨이트 운동을 하면서 더 단단해지는 근육만큼 나도 한층 단단해지는 과정이라 자기 암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동을 했다고 해서 안 풀리던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루틴은 쉽게 외부의 힘에 휩쓸리지 않도록 내 중심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운동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운동만큼 정직하게 노력의 결과를 빠르게 보여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매일이 일에 치이는 일상이고, 성장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느끼기가 어렵다. 하지만 운동은 꾸준히만 하면 숨 가쁘지 않게 더 오래 달릴 수 있고, 더 무거운 중량을 시도하는 등 한 뼘 더 성장한 모습을 잦은 간격으로 확인할 수 있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소소한의 성취감을 선사해주기에, 운동이 더 좋아졌다.



  


한 달에 2-3권은 꾸준히 책을 읽는다. 몰랐던 지식과 세상을 접하기 위해서 책을 주로 읽지만 일상과의 분리를 통해 나를 가두고 싶을 때도 책은 매우 유용하다.


아무리 바쁜 시기라도 출근 전 30분은 커피와 독서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확보하는 시간이다. 커피를 내린 뒤 타이머를 20분에 맞춰 놓고 이 시간만큼은 책에만 집중한다. 이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으면 출근과 일에 대한 복잡한 생각을 잠시 떨치고 딴 세상에 빠져든 기분이 든다. 가끔은 소름 돋게도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과 맞닿은, 일과 삶에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영감을 얻기도 한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다면 아침뿐만 아니라 저녁에도 책을 찾게 된다. 집 가는 길 무기력함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이제 본능적으로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턴테이블을 켜서 바늘이 LP를 긁는 진동으로 울려 퍼지는 쳇 베이커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 이런 무드에는 소설책이나 에세이가 제격이다. 이렇게 LP를 들으면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홀짝이는 와인에도 이상하게 정신이 더 또렷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글쓰기 


글쓰기는 내게 항상 숙제와도 같다. 한 달에 적어도 2번은 아무 주제로라도 글을 써서 브런치에 발행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쉽지 않다.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하고 한 달을 허무하게 떠나보낼 때도 있다.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이고, 너무 바쁘거나 또는 너무 삶이 평탄해서 별 문제가 없다면 글이 잘 써지지가 않는다.  


야속하게도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삶이 좀 힘들어지면 그제야 표현하고 싶은 내 안의 욕구가 가득 차오른다. 그러면 퇴근 후 운동을 마치고 늦은 11시에도 노트북을 켜고, 점심시간에는 대충 때우듯이 먹고 근처 카페에 가서 이십 분이라도 글을 써 내려간다.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글을 쓰면서 현재의 상황을 되돌아보고, 과거의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더 나아지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쓴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때는 글을 쓰게 만들었던 상태나, 상황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가끔씩 동굴에 갇힐 때마다 찾는 것이 술, 잠, 넷플릭스가 아니라 운동, 책 그리고 글쓰기라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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