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쇤 Dec 26. 2022

뭐든 잘하려는 마음이 운동을 망친다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

재작년에는 필라테스, 작년엔 폴댄스 그리고 올해는 스쿼시에 풋살까지. 서른살 들어 이전에는 없었던 운동 욕심이 생겨서 3-6개월 단위로 운동을 갈아타고 있다. 그러다보니 초심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일이 잦아졌다. 새로운 운동을 배운다는 설렘도 잠시, 뒤이어 찾아오는 건 남들보다 못하는 스스로를 원망하는 비교 의식이다. 


누구나 시작하기에 앞서 그 어떤 운동이든 꽤나 잘 해내는 본인의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초반에는 자세 잡는 것부터 쉽지 않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내 몸이 원망스럽다. 게다가 그룹 레슨을 받는 상황이라면, 분명 같이 시작했는데 나보다 훨씬 잘하는 옆 사람을 보면 흥미가 팍 죽어버린다. 


개인 운동이 아니라 레슨을 받는 경우, 분명 내 돈을 투자한 것인데도 운동 가기 직전까지 '그냥 제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때 운동을 하기 싫은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기저에는 운동을 하는게 재밌지 않고, 그 재미에는 '잘하는 척도'가 영향을 미친다. 나의 경우 폴댄스를 배우던 초반(제대로 폴을 잡지도 못할 때)에는 수업을 신청해놓고도 가기 직전까지 취소할까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었다. 그러다가 한창 실력이 물 올랐을 때는 여행 때문에 수업에 빠지는 것을 너무 아쉬워할 정도 재미를 붙였다.   



얼마 전 비기너 레벨 풋살 여성 매치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혼자 왔지만, 같은 동호회 소속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다. 7:7로 경기를 하는데, 그 사람들의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현란한 드리블부터, 수준급 패스, 수비할 때 공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성까지. 공을 다루는 솜씨가 진짜 프로급이었다. 첫 2쿼터까지는 완전 주눅 들어서 공 근처에도 못 갔다. 


일요일 저녁, 추운 날씨와 다음 날 출근의 부담감을 뚫고 축구하러 온건데, 이렇게 공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끝낼 순 없었다. 쉬는 시간에 마음을 다잡았다. 


저 사람들은 실력이 나보다 훨씬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하자. 오늘 내가 저들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 대신 공을 한 번이라도 터치하는 걸 목표로 해보자 



그리고 다음 쿼터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한 걸음이라도 더 뛰었다. 상대 진영으로 공격 라인이 빠르게 올라갈 때, 골대 근처 위치로 파고들며 공을 받을 준비를 했다. 그러다보니 내 쪽으로 패스가 여러 번 왔고, 득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결국 이날 나는 총 4골을 넣었다. 모든 상황이 똑같고 그저 마음가짐만 다르게 먹었을 뿐인데 이렇게 결과가 달라지다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못하는 실력을 탓하고 있었다면 결국 공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채 패배감에 젖었을 것이다.  



운동을 막 시작한 초보자는 이렇듯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스포츠를 업으로 삼아 먹고 사는 프로나 아마추어 선수가 아닌 이상 운동을 하는 이유는 건강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이거나 일상의 활력을 위한 취미이지 다른 누구보다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력이 부족한 걸 쿨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제 막 운동을 시작했다면, 당연히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다. 실력이 더디게 늘더라도 조급할 필요가 없다. 꾸준히 하는 슬로우 러너(slow learner)가 결국 패스트 러너(fast learner)를 이길 수 있다. 주변 사람들보다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비교보다는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나아졌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과 운동할 때 신경 쓰이고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오늘 읽은 신수정 작가의 「일의 격」이라는 책에서 그 심리적 근거를 찾았다. 


경제학자가 10년치 골프 대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타이거 우즈가 참가한 경기에 상위권 선수들의 점수는 평균 타수 성적이 안 좋았다고 한다. 반면, 실력이 엄청 낮은 선수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타이거 우즈가 경기를 한동안 쉰 기간이 있었는데 이때 상위권 경쟁자들의 스코어 평균이 훨씬 높아졌다고 한다. 절대적인 존재가 사라지자, 상위권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한 것이다.


건전한 경쟁 약간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과의 경쟁은 우리의 실력을 향상시킨다. 그러나 슈퍼스타와의 경쟁은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망가뜨린다. 기량 발휘를 못하고 심리적으로 주눅 들고 쪼그라든다. -일의 격- 중에서


프로 선수도 탁월한 사람과 경쟁하는 환경에서 심리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지나친 비교 의식은 과도한 경쟁 교육 속에서 자라온 한국인만의 유물인 줄 알았는데 국적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모두 겪는 것 같다. 


정리하자면,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는 마음은 운동을 망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에게 집중해야 한다. 동시에 너무 잘하는 사람들 무리보다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있는 환경을 찾아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며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폴댄스와의 작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