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보다는 꿰매기
얼마 전 브런치에 글을 썼는데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기름칠이 안 돼서 삐걱거리는 오래된 기계처럼 버벅거렸다. 다음 이어갈 문장이 막히면 그냥 스킵하고 아예 다른 문단의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 문장을 쓰는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또 다른 문단의 글이 떠올랐다.
한 마디로 말하면, 글 쓰는 과정이 정말 산만했다. 첫 문장에서 그다음 문장으로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기고 분산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여러 개의 글 뭉텅이들을 다 쓰고 난 뒤 이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글로 완성해야 했다. 특정 문단을 맨 앞에도 붙여봤다가 흐름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 싶으면 문단 간의 위치를 조정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마치 내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생각하면 일필휘지로 한 번에 써야만 할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실제 글을 쓰는 과정은 글 뭉텅이를 먼저 써내고, 꿰매듯이 문단을 이어 붙이는 작업에 더 가깝다.
글쓰기란 원래 그 과정이 산만하고, 나중에 정돈하는 것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중해서 한 번에 써 내려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글을 선뜻 시작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글을 잘 쓰고 또 많이 쓰려면 인풋을 많이 받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어디선가 받은 영감들을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그때그때 꺼내어 이어 붙이면 그것이 한 편의 글이 될 테니까.
최근 <일의 격>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저자(신수정)가 대기업의 임원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리더십과 사람에 관한 통찰을 페이스북, 링크드인 등의 SNS에 올린 짤막한 글을 엮어서 낸 책이다. SNS에 올렸던 글이다 보니 글 한 편당 길이가 짧고 7~8개의 문단이 넘버링되어 있다.
읽다 보니 일정한 글쓰기 패턴이 보였는데, 읽었던 책이나 만났던 사람과 관련된 여러 일화들이 엮이고, 이를 통해 하나의 통찰을 이끌어낸다. 작가도 처음에는 연결성이 없어 보였던 글의 조각들을 요리조리 이어 붙이시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1. 얼마 전 만난 한 후배가 이야기한다. “엄청나게 바쁘시죠. 그런데도 책도 읽고 SNS도 하시고 신기합니다.” (이하 생략)
2. 한 책에서 전략적 무능이라는 표현을 읽었다. 이 말은 우리가 모든 것에 유능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하 생략)
3. 예전에 한 선배가 계셨다. 그분은 일주일 내내 항상 저녁 회식 약속이 있었고, 심지어 두 번의 저녁식사까지 하셨다. (이하 생략)
4. (…)
<일의 격> ‘전략적 무능’ 중에서
또 내가 글을 쓸 때 경험하는 것은 처음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결론과 다르게 끝맺음 지을 때가 꽤나 많다는 것이다. 여러 글의 조각들이 이어 붙여지다 보니 처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그 흐름에 맡게 끝맺음한 결론이 더 마음에 든다.
과정이 논리 정연하지 않아도 일단 쓰고 이후에 다듬는 것, 그리고 처음 생각했던 방향이 아니더라도 흐름에 맡게 써 내려가는 것. 글을 쓸 때 중요한 것은 유연함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툭툭 써내려가다보면, 완벽하진 않아도 그럴듯한 한 편의 글이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