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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Feb 12. 2023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소피의 저주는 어떻게 풀렸을까?

90세 노파가 된 소피의 저주에 숨긴 비밀

얼마 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영화를 다시 봤다. 횟수로 치면 5번 넘게 보는 건데도 여전히 재밌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이전에는 안 보이던 것이 보였다.


영화의 끝 부분에서 순무 허수아비는 소피의 키스로 저주가 풀려 이웃나라 왕자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의 키스를 받아야만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저주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소피의 저주는 어떻게 풀린 걸까?


소피는 황야의 마녀의 건 저주로 하루아침에 등이 굽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90세 노파가 되었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굽어졌던 허리가 펴지며 40-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모습으로 젊어지고, 왕궁에서 마법사 설리번에 맞서 하울을 옹호하는 장면에서는 20대 소피의 모습까지 돌아왔다가 결국 할머니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20대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머리카락 색은 여전히 회색에 머물렀지만),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도 소피의 저주를 풀리게 한 계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장면이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소피가 걸린 저주가 90세 노파로 늙게 만든 것이라고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황야의 마녀가 건 저주는 주체적이지 못하고, 자신감 없는 소피의 내면을 겉으로 드러낸 저주였던 것이다. 마법사 하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본인의 감정에 솔직해지며 젊어졌다가도, 외모에 자신이 없어하고 본인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할 때 어김없이 노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영화의 후반부 하울이 소피를 위해 만든 정원에서 나누는 대화의 장면에서 갑자기 소피가 본인의 외모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내비치자, 급속도로 노파로 쭈그려지는 장면이 다시 보였다.


소피: (18살 소피의 모습으로) 난 하울에게 힘이 되고 싶어. 비록 예쁘지도 않고 청소 밖에 못해도.
하울: 소피, 넌 예뻐!
소피: (등이 굽고 주름이 많은 90세 할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노인의 좋은 점은 잃을 게 적다는 거지.


중학생 때부터 나는 두꺼운 다리를 부끄러워했다. 발목이 높게 올라오는 양말을 신으면 특히 더 두꺼워 보인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하체 비만이라 여겼다. 치마를 입을 때마다 ‘다리가 두꺼운 애가 왜 치마를 입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채로 십 년을 넘게 살았다.


그러다 이십 대에 중반에 당시 사귀었던 남자 친구에게 외출을 앞두고 “나 이렇게 입으면 다리 두꺼워 보여?”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남자친구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하며 “전혀 다리가 두껍지 않은데 왜 그런 걱정을 해?”라고 도리어 물었다. 그 말에 다시 거울을 보니, 그렇게 두꺼워 보이지 않는 듯했다. 신기했다. 내 다리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날 이후 치마를 입을 때마다 묘한 자신감을 얻었다.  


얼마 전 읽었던 <일의 격>이라는 책에서 인상 깊은 문장을 발견했다.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에 영향을 받는다.


명절을 보내거나 여행을 하며 잘 먹고 잘 쉬고 난 뒤에 거울을 보면, 괜히 얼굴과 복부에 살이 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반대로 운동을 열심히 한 날에 거울을 보면, 뭔가 살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 몸무게를 재보면 이전과 변동은 없다. 이처럼 실제 일어난 현상과 별개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는 기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발생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다. 소피가 자존감이 높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상태였다면 황야의 마녀가 건 저주에도 90세 할머니가 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자기중심적으로 확대 해석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믿으며 긍정적인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평범한 인간인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슈퍼 파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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