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을 읽고
그저 재밌게 읽은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행동에 어떠한 영향이라도 준 책이 진짜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읽었던 「도둑맞은 집중력」은 올해 읽은 책 중 Top 5안에 꼽힌다고 자부한다.
올해 여름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뜨끔했다. 당시 심각했던 내 집중력의 상태를 들킨 것 같았다. 사무실에 있는 내 책상에서 화장실에 가는 1분, 그 잠깐의 사이에도 핸드폰을 놓지 않았고,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켜고 피드를 스크롤하거나 지인들의 스토리를 봤다. 검색할 것이 있어서 유튜브를 들어갔다가 피드에 있는 자극적인 썸네일에 혹해 원래 보려던 콘텐츠를 잊어버리고 몇십 분이나 의미 없는 콘텐츠들을 소비하며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였다.
-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잠깐의 사이에도 핸드폰으로 카톡을 확인하거나, 이런저런 앱을 들락날락한다.
- 어떤 일에 집중하던 찰나 알림이 와서 바로 확인하고 답을 했는데 바로 직전에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까먹는다.
- TV를 보면서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한다.
혹시 위의 내용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도둑맞은 집중력」 책 처방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낸 집중력의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멀티태스킹은 일잘러의 기본 능력처럼 여겨졌는데, 마약을 하는 것보다 뇌에 가해지는 타격이 2배라니. 충격적인 결과였다.
HP가 의뢰한 한 소규모 연구는 두 가지 상황에 놓인 휴렛팩커드 직원들의 1Q를 확인했다. 먼저 연구팀은 직원들이 정신이 산만해지거나 방해받지 않을 때 IQ를 검사한 뒤 다시 이들이 이메일과 전화를 받고 있을 때 1Q를 검사했다. 연구 결과 단순히 이메일과 전화를 받는 행위 같은 "기술의 방해"가 직원들의 1Q를 평균 10점 떨어뜨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단기적 차원에서 IQ 10점 하락은 대마초를 피웠을 때 IQ에 가해지는 타격의 두 배다. 즉 업무 수행의 측면에서 볼 때 문자와 페이스북 메시지를 자주 확인하느니 책상에서 마약을 하는 게 낫다는 의미다.
집중력의 문제는 기술의 발전의 어두운 그림자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스마트폰의 발달로 우리는 24시간 내내 정보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간을 쏟을수록 돈을 버는 플랫폼 기업들의 등장으로 집중력의 문제는 더 악화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노출되는 정보 량의 엄청난 팽창과 정보가 들이닥치는 속도를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다.
그렇다면 몰입은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 걸까? 이 책에서는 몰입을 잘하기 위한 3가지 조건을 이렇게 제시한다.
1. 명확하게 정의된 목표를 설정하기 (2개 이상의 일을 동시에 X)
2.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
3. 능력의 한계에 가깝지만 능력을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기
즉, 몰입을 잘하려면 단일한 목표를 택해야 하고, 그 목표가 반드시 자신에게 유의미해야 하고, 능력의 한계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여야 한다. 그리고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속담처럼 몰입을 더 많이 경험할수록 몰입을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최근에 기억에 남는 몰입의 순간은 올해 초 이직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야 하는데, 퇴근 후에는 약속도 있고 몸도 지친 상태라 도저히 시작할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미라클 모닝이다. 5시 30분에 일어나 하루를 일찍 맞이하고 출근하기 전까지 2~3시간을 내리 몰입했다. 이른 아침이라 피곤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신은 쌩쌩했고 최상의 집중력을 뽐냈다. 덕분에 2주 만에 정리를 끝내고 여러 기업에 지원할 수 있었다.
명확하면서도 나에게 의미가 있었던 목표, 출근 전 시간을 활용하여 무리하지 않게 작업할 수 있는 시간 확보 등 3박자가 잘 들어맞았던 결과였다.
이 책을 읽으며 산만함은 의식적인 노력하에 충분히 해결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컨트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이폰 스크린 타임 기능으로 앱 시간제한을 둬서 하루에 인스타그램 접속 시간이 30분을 넘어서면 비활성화되도록 설정했고, 자정이 넘으면 앱이 비활성화되는 다운타임도 설정했다.(하지만 클릭 한 번으로 비활성화 제한만 풀면 너무나 손쉽게 사용할 수가 있어서 얼마 가지 못해 무용지물이 되긴 했다;;)
또 다른 변화는 종이 신문을 구독한 것이다. 인터넷 신문의 특성상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 클릭하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균형 잡힌 시각보다는 주제 편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종이 신문을 구독한 지 2개월이 되어 가는데 국내 경제, 정치부터 해외 이슈까지. 다양한 이슈를 한 판에 골고루 접할 수 있어 좋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는가, ‘Where we are’에 대한 감이 잡히는 느낌이랄까.
개인의 노력과 별개로 사회구조적으로 집중력을 향상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건 암울한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욕망을 불어넣어 소비를 더 늘리고, 잠을 덜 자면서 콘텐츠를 소비하게 만드는 등 똑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밀어 넣을 방법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점점 구조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카오톡 등 매일 사용하는 앱들이 득 보다 실이 더 많은 건 아닌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