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반 동안의 혼성 풋살 동호회 생활을 청산하고, 여성 풋살 A팀에 가입했다. SNS에서 #여성풋살 키워드로 검색해 보다가 발견한 곳이었다. 프로필에 적힌 팀 정보를 보는데 주요 활동 지역은 신도림, 영등포, 구로. 활동 시간은 토요일 오전이다. 팀을 찾을 때 장소랑 시간 맞추기가 제일 어려운데 이 두 가지 조건을 수용하는 팀을 거의 원샷원킬로 찾아버린 것이다.
‘아니 뭐지! 나를 위한 팀인가?’
SNS 피드 속에는 정기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 첫 유니폼이 나온 순간, 첫 친선 매치 등 그녀들이 공을 차고 팀으로서 호흡을 맞춰가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기록되어 있었다. 정적인 사진 너머로도 그들의 끈끈한 유대감과 풋살이라는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갑자기 사진 속 이름도 모르는 그녀들이 부러워졌다. 나도 저 속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차올랐다.
대뜸 신규 회원 모집하냐고 인스타로 DM를 보냈는데 답이 오지 않았다. 신규 회원 모집은 당분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여성 풋살 팀이 무서운 기세로 많아지고 있는 추세였기에 다른 팀을 기웃거릴 수도 있었지만 이미 마음의 일부를 빼앗겼던 걸까? ‘여기 아니면 안 간다!’는 마음으로 신규 회원 모집 글이 올라오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당시 내가 속했던 혼성 풋살 팀은 과도기를 겪고 있었다. 첫출발은 왕초보 풋살 팀에서 시작했기에 코치 주도 하에 트레이닝과 매치가 병행되었다. 그러나 대학생 신분의 코치는 취업 준비라는 본업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자 어느 순간부터 참여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자취를 감췄다.
창단의 핵심 인원이 빠지는 위기 속에도 열정적인 팀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그렇게 힘들다는 구장 예약 문제가 수월하게 풀려서 어찌어찌 모임은 계속 느슨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따로 있었다. 원년 멤버들이 하나, 둘 나가면서 빈자리는 실력자 멤버들로 채워졌고 왕초보 풋살 모임이라는 초기 정체성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 것이다.
2시간 동안 이리저리 열심히 뛰는데 실제로 공을 터치하는 횟수는 10번도 되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운 좋게 골을 넣기도 했지만 온전히 내 실력으로 만들어 낸 건 없었다. 그저 골대 옆에 자리를 잘 잡고 있다가 기가 막힌 어시스트에 발을 갖다 대서 운 좋게 들어간 경우가 대다수였다.
피지컬 및 스피드 면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존재하다 보니 애초에 몸싸움을 시도조차 안 하고, 1:1 돌파는 할 엄두도 안 났다. 공을 빼앗기면 다시 뺏어올 기세로 바로 쫓아가야 하지만, 그저 멀어져 가는 공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현타가 왔다.
어느 정도 비등비등한 실력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뛰어야 실력도 같이 느는데 워낙 실력 차이, 피지컬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들과 4:1의 성비로 뛰니 실력이 제자리에 머무는 것 같았다. 여성들로만 구성된 팀에서 뛰고 싶다는 갈증이 계속 커졌다.
A팀 인스타그램 계정에 신규 회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팅이 드디어 올라왔다. 처음 메시지를 보냈던 때가 8월인데 계절이 두 번 바뀌어 겨울이 되었다. 원한다고 바로 가입할 수 있는 건 아니고 2번의 입단 테스트가 있었다.
12월의 어느 날, 안양천에 자리한 풋살장에 떨리는 마음으로 갔다. 골 때리는 그녀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저 오늘 처음 온 신입인데요…”
대학교 팀플처럼 운영되던 혼성 팀에서만 뛰다가 구색이 갖춰진 팀에 오니 색달랐다. 감독이랑 코치도 있고, 2시간 동안 몸풀기, 기본기 트레이닝부터 매치까지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가입 신청서에 풋살 한 지 1년이 넘었다고 적었는데 그새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스텝을 밟으면서 몸을 푸는데, 뒤에서 “역시 경력자는 다르네”라는 말들이 들렸다. 필드에서의 내 실력을 보고 다들 실망하는 건 아닐지 걱정되었다. 사실 뭘 테스트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친화력과 어느 정도 기본기는 갖춘 나를 좋게 봐주셨는지 2024년 새해 첫 모임을 기점으로 정식 멤버가 되었다.
A팀의 첫인상은 참 따뜻했다. 신입에게 가해지는 텃새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시무식 기념으로 총무 B와 홍보 담당 S가 무려 20인분의 수제 귤잼을 만들어와서 나눠졌다. 귤을 손수 까고, 끓여서 졸이고, 소독한 유리병에 나눠 담고 포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상을 쏟았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풋살을 하다가 부상을 당해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J언니는 손수 만든 비즈 팔찌를 만들어서 보냈다. 얼굴도 본 적이 없기에 당연히 ‘내 건 없겠지’하고 슬쩍 뒤로 물러나 있는데 어라? 내 것도 있었다. 나는 이제 막 조인해서 팀에 기여한 것이 하나도 없는지라 과연 받을 자격이 있는 건지 멋쩍은 마음이 들었다.
집에 돌아간 이후 팀 톡에는 잼이 너무 맛있고, 팔찌가 이쁘다는 장문의 간증 메시지가 이어졌다. 음료와 구장 이용료 정산을 위한 최소한의 메시지만 오고 가는 이전 팀의 톡과는 너무 대조되었다. 조건 없이 순수한 마음이 오고 가는 이 커뮤니티가 신기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받기만 할 수는 없기에 나는 여기에 어떤 마음을 더해야 하나 살짝 걱정도 되었다.
A팀에는 00년생 막내부터 제일 위로는 아들을 군대 보낸 언니까지 나이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무려 20살의 나이 차이에도 필드 안에서는 만큼은 모두가 ‘언니-동생’이다.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들과 공차다가, 여성 팀에서 경기를 하니 확실히 몸싸움도 이전보다 더 열심히 하면서 공을 터치하는 횟수도 많아졌다.
따뜻한 그녀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마다 만나며 쑥쑥 성장해 나갈 앞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