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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Nov 03. 2024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을 찬다

정식 풋살은 실내에서 하는 스포츠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프로 선수들이 하는 경기의 방식일 뿐, 대부분의 아마추어 풋살은 야외구장에서 진행된다. 봄에는 미세먼지, 여름에는 푹푹 찌는 무더위, 겨울에는 살을 에는 찬바람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로.  


생각해 보니 풋살은 전 국민 운동인 등산, 러닝을 제외하고 제대로 배우는 첫 야외 스포츠다. 기존에 시도했던 운동들은 다 실내에서 했던지라 날씨 제약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었다. 특히 폴댄스는 겨울에도 비키니 수준의 얇고 살갗이 많이 드러나는 폴웨어만 입는데도 불구하고 온돌 난방으로 학원의 공기가 아주 후끈후끈했기에 전혀 춥지 않았다. 기온이 낮으면 몸이 경직돼 부상 위험이 커지는데 항상 20℃ 이상으로 유지되는 학원에서운동하니 부상의 위험이 현저히 낮았다. 또 한여름에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줘서 시원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하기 좋은 운동인가!


풋살에 입문하면서 발견한 이 세계의 특이점은 정말 경기 진행이 불가한 정도가 아니라면 궂은 날씨에도 악으로 깡으로 강행하는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아마추어 풋살에도 실내 구장이라는 옵션도 존재하지만 야외에 비해 구장의 크기가 작아 매치에 뛰는 인원 수도 적어지고 공간을 이용한 다이내믹한 플레이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다들 풋살 본연의 즐거움을 위해 거친 바깥 날씨 따위는 기꺼이 감수하는 편인 것이 아닐까.




풋살에 푹 빠져 앞만 보고 계속 달려가다 보니 어느덧 사계절을 다 경험해 보게 되었다.


날이 풀리면서 무거웠던 몸도 가벼워지면서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은 욕구가 새싹처럼 왕성하게 자라난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 잦다는 것이 단점. 비록 개인의 기관지 건강에는 안 좋겠으나, 비나 눈처럼 매치 진행 자체에는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는 작은 요소기에 큰 문제는 아니다. 운이 좋다면 구장 근처에 심어진 벚꽃 나무를 배경 삼아 낭만 풋살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요즘은 이상 기후로 인해 봄이 거의 없고 겨울에서 바로 여름으로 넘어가기에 봄철 풋살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은 매우 짧다.


여름

풋살을 즐기기 제일 힘든 계절이 아닐까. 그라운드를 밟고 있으면 발바닥이 불타는 것처럼 너무 뜨겁다. 9시만 되어도 어느새 해가 한가운데 떠서 정수리가 뜨거워진다. 자외선이 가장 강한 오후 12시에서 4시 사이 시간대는 정말 조심해야 하는 시간이다. 워낙 풋살은 템포가 빠르고 체력 소모가 큰 운동이기에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다. 실제 30℃가 훨씬 넘는 기온에도 소셜매치에 나갔다가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며 약간의 호흡 곤란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럴 땐 무조건 내려놓고 쉬는 게 답. 시원한 물이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게 느껴진다.


가을

여름철 내내 공기를 무겁게 채우고 몸을 처지게 만들었던 습기가 싹 사라지고 이따금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어찌나 시원한지. 풋살 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안타깝게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구장 예약을 잡기가 피켓팅 수준이라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운이 나쁘면 구장을 예약하지 못해 매치를 스킵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겨울

낮은 기온으로 인해 근육이 경직되어 부상 위험이 큰 계절이다. 막상 뛰다 보면 몸에서 열이 나기 때문에 여름에 뛰는 고통보다는 견뎌볼 만하다. 다만 영하의 기온에는 공도 얼기 때문에 공을 차다가 발목이 나갈 수도 있고, 몸에 잘못 맞으면 정말 아프다. 방한 아이템 선정이 중요해지는데, 두꺼운 패딩 같은 외투를 입으면 몸이 둔해지기도 하고, 뛰면 어차피 몸이 달아오르기 때문에 아주 얇은 패딩이나 바람막이 안에 여러 벌의 옷을 레이어드 해서 입는 것이 좋다. 귀도리와 장갑, 그리고 속절없이 나오는 콧물 때문에 넉넉한 휴지는 필수다. 붙이는 핫팩 좋으나 격렬하게 뛰다가 자칫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




지나고 보면 역시 극한의 날씨로 인해 고생하면서 풋살을 했던 날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풋살을 하는 사람이라면 비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없을 수가 없는데, 우리나라는 365일 중 무려 135일이나 비가 내리는 풍부한 강수량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대충 일 년에 ⅓ 정도는 비가 온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우천으로 인한 풋살 진행이 취소가 되는 기준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공공 풋살구장 예약페이지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무료 환불에 대해 이렇게 공지되어 있다. “운동장 사용이 불가할 정도의 강수량”. 몇 번 경험해 보니 이런 상황이다. 굵은 빗줄기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고 구장에 물이 흥건하게 고인 웅덩이가 생겨서 도저히 공을 찰 수가 없는 환경. 이런 환경이 되어야만 무료로 환불을 받을 수 있다 보니 시간당 10mm 이하의 강수량이면 그냥 대수롭지 않다는 듯 비를 맞으면서 공을 찬다.


비 오는 날의 구장은 전혀 다른 환경이 되어버린다. 우선 빗물 때문에 마찰력이 줄어들어 공의 속도가 정말 빨라진다. 내 앞의 공간으로 오는 패스를 받으려 평소와 같은 속도로 뛰다가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미끄럽기 때문에 볼터치를 잘못해서 공이 흐른다거나 넘어질 수 있어 부상 위험이 존재한다. 비 맞아서 머리가 망가진다는 불편함도 잠시, ‘에라 모르겠다’ 뛰다 보면 빗물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고, 평소보다 더 많은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만 같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우중 풋살만의 매력이 확실히 존재한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날 부천의 한 병원 옥상에 자리한 구장에서 풋살 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눈이 어찌나 많이 내리던지 천천히, 우아한 속도로 내려오는 것만 같은 눈은 어느새 소복이 쌓여 잔디의 초록색마저 가리는 수준이었다. 10분 동안 진행되는 쿼터가 끝나자마자 씩씩하게 한 명씩 삽을 들고 눈을 치우고 경기를 진행했다.  



바닥이 진짜 미끄러웠다. 조심한다고 하다가 사이드라인에서 공을 뺏기 위해 달려들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뒤로 제대로 미끄러져 버렸다. 나를 저지하려고 달려오던 상대 수비수도 뒤엉켜 순식간에 3명이나 바닥에 뻗었다. 엉덩이 꽈당한 아픔도 잊고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서로 까르르 한바탕 웃느라 경기가 중단되었다.


‘눈이나 치웁시다’ 다들 쿨하게 엉덩이에 묻은 눈을 털면서 삽을 쥐고 눈을 쓸었다.


우리 팀과 상대 팀 공격과 수비수들이 함박눈을 맞으며 그라운드를 뛰는 모습을 보는데 그 장면이 슬로모션처럼 참 아름답게 보였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는데. 설중 풋살은 멀리 서봐도 희극, 가까이 서봐도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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