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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Oct 20. 2024

패스: 티키타카의 중요성

주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풋살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공만 보고 무작정 달리던 왕 풋린이 시절은 졸업했다고 느꼈다. 


특히 공을 다루는 스킬보다는 경기에 임하는 마인드가 많이 달라졌다. 초반에는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골 넣는 행위 자체에 연연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경기 중에 우리 편 동료를 보고 패스를 잘 줬는지, 반대로 패스를 잘 받았는지, 상대 팀의 역습 상황에서 중요한 차단을 했는지 등 플레이 메이커로서의 내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 역할을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토요일, 일요일 연속으로 한여름의 무더위를 온몸으로 뚫으며 풋살로 불태웠던 주말의 일이다. 토요일은 모든 레벨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매치, 일요일은 왕초보 레벨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인 매치였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플레이의 전개 양상과 퀄리티는 극과 극이었는데 이로부터 나는 아주 근본적인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다.



교훈 1. 4골을 넣었지만, 내가 잘해서 잘한 것이 아니다


풋살은 특정 인원이 모여야만 플레이가 가능하다 보니 플랩풋볼, 퍼즐풋볼 같이 사람을 모아주는 소셜 매치 플랫폼이 존재한다. 이런 플랫폼을 통해 모여 같이 공을 차는 사람들의 레벨은 그때그때마다 너무나 다르다. 그래도 변치 않는 사실은 항상 내 실력이 꼴찌라는 것. 처음에는 그 사실이 절망적이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내 실력이 제일 바닥이라는 걸 처음부터 인정하고 그래도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토요일 매치에서는 난생처음으로 포트트릭(4골)을 했다. 최근 갔던 매치들마다 골 구경은 해보지도 못했던 터라 더욱 설레고 신났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4골을 넣었다는 사실 자체에 도취되었다. 그런데 그 후 곰곰이 그날의 플레이를 곱씹어보니 포트트릭이 가능했던 건 내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함께 뛰었던 동료들과의 합과 전체적인 밸런스가 잘 맞았던 결과였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마치 이미 한 번 호흡을 맞춰본 사람들처럼 패스가 착착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라인 밖으로 볼이 잘 나가지 않아 티키타카가 좋았다. 공격 상황에서 한껏 라인을 끌어올렸다가, 상대 팀의 역습 상황이 되면 다들 죽을힘을 다해 달려와 수비에 복귀했다. 어느 한 팀이 너무 열세이거나 우세하지도 않아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다. 소셜 매치 플랫폼에서 구분하는 기준에 따르면, '비기너 3 ~ 아마추어 2' 사이의 플레이어들이 포진한 것 같았다. 너무 실력 차이가 나지 않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겨루었기에 티키타카가 되면서 시너지가 났고,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던 것이다. 


교훈 2. 나만 잘한다고 경기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다음 날인 일요일 매치는 이제 막 풋살을 시작하는 왕초보 레벨의 분들 위주로 모였다. 그래서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갔다. ‘그래도 이 중에서는 내가 제일 잘하겠지?’라는 오만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힘든 경기가 펼쳐졌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당탕탕 풋살


왕초보가 전형적으로 하는 실수는 공만 보면서 경주마처럼 달린다는 것이다. 최소 3-4명이 공을 향해 온갖 방향에서 돌진하고, 그러다 보니 다가오는 상대방을 인지하지 못해 부딪히고 넘어지는 일도 잦게 발생했다. 원래 정했던 포지션은 유명무실하게 무너지고, 패스 플레이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왕초보가 자주 하는 또 다른 실수는 공을 보면 무조건 발이 먼저 나간다는 것. 정강이가 많이 차이고, 발도 많이 밟혔다. 기본기가 부족하니, 내가 패스를 해도 받아줄 사람이 없어 라인 밖으로 공이 나가기 일쑤였다.


축구나 풋살은 팀 플레이다 보니, 한 두 명 구력이 더 있는 사람이 있다고 경기를 더 잘 풀어나가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뛰다 보니 나 또한 다시 왕초보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는 경기를 하려면, 내 실력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다른 이들의 실력, 즉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교훈 3. 회사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패스의 티키타카의 중요성


당시에 회사 일이 뭔가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풋살의 관점으로 바라보니 상황 판단이 명쾌해졌다.


‘내가 패스를 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고, 나한테 패스를 주는 사람도 없구나’


2개월 전 이직하고 나서 새 조직에 가장 적응이 안 된 점은 굉장히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사무실에서 서로 대화도 잘 안 하고, 메신저에서도 하루에 몇 개의 메시지만 오고 갈 정도로 정적이었다. 바로 직전 회사는 메신저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누군가 나를 찾고, 이모지와 같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하게 오고 가던 곳이었기에 더욱 적응이 안 되었다.  


그리고 상황적으로 지속적인 인사 변동이 있어서 일을 벌이기보다는 숨쉬기의 느낌이 강했다. 해외 사업팀은 축소되었고, 기획자와 디자이너는 퇴사했다. 3명이었던 세일즈 담당자는 1명으로 줄어들었다. 나는 B2B 마케터다 보니 세일즈와 긴밀하게 일을 같이 해야 하는데 그나마 남아계신 한 분과는 초반에 라포 형성이 잘 되지 않아 거리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풋살에서 패스가 연결이 안 되고 볼이 아웃될 때마다 경기의 흐름이 툭툭 끊기듯이 사기가 저하되었다.


 내 실력이 부족한 문제면 어떻게든 노력해서 극복하면 되는데, 조직 차원의 문제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 막막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디자이너가 입사했고, 세일즈 담당자 채용되었다. 좋은 분들이 와서 패스를 주고받으며 합이 잘 맞는 드림팀을 꾸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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