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처럼 더웠던 어느 가을날 내가 속한 여성 풋살 팀에서 풋살대회에 출전했다.
대회는 다른 팀과 공정하게 겨룸으로써 객관적인 팀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다. 대회에서 3위 안에서 입상한다면 트로피와 함께 'OOO 풋살팀에서 N위 했어'라고 주변에 자랑할 수 있는 영예가 주어진다.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들끼리만 공을 차다 보니 다른 팀과 붙는다면 우리 팀의 실력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엄청난 실력자들이 모이는 판이다 보니 대판 깨질 것 같은 두려움에 대회는 한 번은 나가고 싶으면서도 또 영원히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사실 대회에 출전한다고 해서 이에 대비하여 엄청 빡세게 준비를 한 건 아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서 기본기를 닦고, 합을 맞춘 우리 팀의 짬(?)이 있으니 충분히 해볼 법하다는 오만이 깔려있었다.
대회 당일, 신분증을 챙기고 대회 규정상 필수 준비물인 신가드(정강이 보호대)를 챙겼다. 비장하게 준비를 하니 살짝 긴장이 되었다. 개인 사정으로 대회에 출전하지는 못하지만 각종 간식을 챙겨서 응원해 주러 온 팀원들 덕분에 괜히 어깨가 올라갔다.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보던 것처럼 심판과 함께 선수단이 입장하고, 일렬로 서서 인사를 한 다음에 하이파이브를 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까지도 실감이 잘 안 났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날 우리는 5번의 게임에서 단 1승도 하지 못했다. 승점은 단 1점. 그것도 정말 유니폼도 없이 이제 막 설립된 것 같은 약한 팀 대상으로 겨우 1골을 넣었다. 물론 그 골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허탈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2개 팀은 실력 측면에서 우리를 훨씬 압도했다. 그러나 다른 3팀은 붙어볼 만했다. 비등비등한 실력이었는데 왜 우리 골문은 이리도 쉽게 열리고, 상대 팀 골문은 굳게 닫혀있단 말인가.
1인분을 제대로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웠다. 나는 원래 공격 성향이 강해 아라(윙) 포지션을 주로 서는데, 이날은 계속 감독님의 지시 하에 수비를 했다. 내가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공을 상대 팀이 결국 골로 연결하는 장면이 자주 있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기억까지 합쳐지며 열등감이 삐쭉 치고 올라왔다. 그간 3번 있었던 친선 매치에서도 다 졌었는데... 승리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패배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왜 우리에게는 이렇게 1승이 어렵단 말인가.
그 길로 나는 이른바 풋태기(풋살 + 권태기)에 빠져버렸다.
풋살을 시작한 뒤 2년 만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권태기다. 그간 하루 이틀 정도 풋살하기가 귀찮은 적은 있었어도 그래도 푸른 잔디구장을 뛸 때만큼은 행복감을 느꼈는데 처음으로 풋살이 재미없어졌다. 대회 이후 팀 정기 운동 때도 그럴듯한 플레이가 나오지 않으니 재미는 반감되고 열등감만 더 크게 들었다.
권태기는 생각보다 세게 찾아왔는데, 어느 정도였다면 강화도에 3번이나 방청을 갈 정도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골 때리는 그녀들'도 거의 한 달 동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풋살 생각이 나서 괴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권태기가 찾아온 건은 대회에서 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실력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메주 운동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는데 오랫동안 실력이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라 답답함을 느꼈다.
아직도 풋태기는 진행형이다. 조급하게 극복하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다시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나를 재촉하지 않고 여유를 주기로 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풋살 외의 내 다른 삶의 요소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서. 그러다보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잔디 위에서 공을 가지고 뛰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날이 다시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