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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Jun 07. 2020

인스타그램 관종입니다만

남들이 뭐라고 하든 좋은 내 모습 

저는 인스타그램 관종입니다.


나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수는 천 개가 넘는다. 거의 매일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나의 따끈한 일상을 인친(인스타 친구)들에게 공유한다. 주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자취방을 예쁘게 꾸민 것을 자랑하고 싶을 때, 감명 깊은 책을 읽었을 때, 여행을 통해 행복함을 느낄 때, 또는 내가 상처 받고 힘든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랄 때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함께 솔직한 나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한다. 나를 팔로우하는 648명의 사람들에게 나의 일상, 취향, 생각 등을 여과없이 공유하는 셈이다. 게시물 수가 천 개를 넘어가니, 내 피드를 내리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려 맨 아래에 올려진 사진은 확인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최근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는 모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대화의 주제가 '철학'이란 무엇일까에서 시작해서 다양한 주제로 연결되고, 이어지다가 어쩌다 보니'배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배려'는 각자 다 달랐는데, 나는 배려를 '나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하는 행동'이라고 나름 정의를 내렸다. 


그러다가 모임에 계셨던 어떤 분께서 카톡 프사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본인의 사진을 많이 올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셨다. 그분 성격이 워낙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너무 행복해하는 사진을 자랑하듯이 올리는 사람들은 그 사진을 보는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한 번도 그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 약간 충격이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을 해보니, '나 행복해요'라고 티를 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 있어 움츠러들고 싶지 않았다.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거의 10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바빠서 일기 쓰기를 빼먹는 날이 있으면, 마치 나 자신을 잠시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게는 인스타그램에 기록하는 사진과 글도 일기와 비슷하다. 물론 오픈되어 있기 때문에 100% 진심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식은 없다. 핸드폰의 카메라 화질도 좋고, 용량도 충분하여 하루에도 생각없이 찍는 사진들이 정말 많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다는 것은 갤러리 속에 있는 수많은 사진 중에 주옥같은 순간을 구별해내는 의식과도 같다. 제때 가려내지 못하면 평생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들이 영원히 파묻혀 잃어버리게 될까봐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행복했던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 순간 나를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을 부여잡기 위해, 그리고 이를 통해 더 행복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앞으로도 열심히 기록하고 표현할 것이다. 누군가 이런 모습을 관종으로 본다면, 기꺼이 그런 존재가 되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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