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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Jul 21. 2020

열정 세 스푼, 자유 두 스푼, 원칙 한 스푼의 레시피

다섯 사람으로 알아보는 나의 모습

가장 가까운 사람 5명의 평균을 내면 그게 나


라는 말이 있다. 근묵자흑, 유유상종 등과 같은 사자성어가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보면, 어울리는 무리의 사람들은 비슷한 성향 및 성격을 가졌다는 현상은 어느 정도 증명된 명제인 것 같다. 내 몸에 걸친 옷과 액세서리가 간접적으로 내 취향을 드러내는 것처럼 내가 맺은 인연들에도 고스란히 나의 취향이 반영되는 것일까.  




2013년 북유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의 탈린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교환학생 오티 첫날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모인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들 틈에 껴 차가운 인상을 가진 키 큰 서양인들 중 그 누구와도 친구가 쉽사리 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강당에서의 오티를 마치고 캠퍼스 투어를 하고 있는데, 금발에 흰 피부, 커다란 눈을 가진 그렇지만 정말 따뜻한 인상을 주는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친구는 내게 먼저 미소를 지어 보였고,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우리는 바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는 독일 출신의 크리스티나. 몇 마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나는 크리스티나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


직감은 현실로 이어져 크리스티나와 그녀의 룸메이트,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친구 등 이렇게 서로의 인연이 맞닿아 나는 5개월의 교환학기 동안 나는 7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의 친구들과 어울렸다. 이 7명의 국적을 보면 한국인 1명(나), 일본인 1명, 프랑스인 1명, 오스트리아인 1명, 독일인 3명이었는데, 오스트리아가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게르만족 계통임을 감안하면 57%의 구성원이 거의 독일인이었다.


내가 어쩌다 이 그룹의 구성원이 된 것이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교환학생 전용 기숙사에는 이탈리아, 폴란드, 체코, 프랑스 등의 국적을 가진 친구들이 살았고 그들과도 친구가 될 기회가 무수히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독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꼈고 이들과 어울리기를 선택했다. 걸핏하면 수업에 늦어서 내가 한 필기를 베끼고, 듣기보다는 자기 할 말만 하는 프랑스 친구 B와 대비되어 약속을 잘 지키고, 모국의 역사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독일 친구들에게 뭐라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신뢰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 조금 깨달았던 것 같다. 나 또한 이런 성향의 사람에 가깝다는 것을.




 주변의 5명의 사람/그룹들


1. 아프리카 말라위 봉사 동기 단원들

내 주변의 5명을 생각했을 때, 주저 없이 1순위로 떠올린 친구들이다. 2016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1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어디서도 겪지 못할 짜릿한 경험을 함께 했으며,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타지 생활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줬다. 가끔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의 속마음을 여과 없이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어찌 보면 내가 가장 많이 마음을 의지하는 친구들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 달에 한 번은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과 함께 있노라면, 가끔 한국도 말라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을 특별한 무대로 만들 수 있는 주체할 수 없는 흥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들이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는 않다. 몰상식한 사람들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분노하며, 이 세상을 조금 더 바르게 살아갈 동기를 불어넣어주는 친구들이다.


2. 직장 동료 S

누가 보면 자매라고 할 정도로 SNS에 함께한 일상들이 자주 올라오는 사이인 S는 나의 현재 직장 동료이다. 이전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할 파트너로서 S를 처음 만났다. 현명하고 매력적인 사람이라 친해지고 싶었지만, 공적인 관계였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다가 작년 10월부터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대놓고 친해지게 되었다. 회사 사람들과의 술자리, 서핑, 여행 등 일을 벌이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지만 누구보다 속이 깊은 사람이다. 어쩔 때는 친구로, 사수로, 인생의 선배로 그녀와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는 다면적인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앞으로도 그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것 같다.


3. 엄마

가끔 생각만 해도 내 눈시울을 바로 붉게 만드는 사람, 우리 엄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전업주부셨던 엄마는 나를 발레 학원에 보내주기 위해 공장에 취직하셨다. 어느 날 엄마의 손가락이 기계 안으로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때의 수술로 아직도 구부러지지 않는 엄마의 왼쪽 약지 손가락을 보면 무한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몰려온다. 풍족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딸만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시키기 위해 항상 당신을 희생하며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줬다.

엄마는 나를 넓은 세상에 내놓았지만, 마냥 자유롭게 풀어놓지는 않으셨다. '술 마셔도 안 마신 사람처럼 행동해라',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네가 지나온 자리를 말끔히 정리해라' 등 항상 원칙과 규율을 강조하셨다. 서른을 앞둔 나이가 되어보니 그때는 그렇게 듣기 싫던 잔소리가 어느새 나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 덕에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맛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4. 스타트업 뽀시래기 친구들

2년 전 첫 직장이었던 한 민간 스타트업 지원기관에 취직했을 때, 국내 스타트업 씬에 처음 입문한 주니어로서 나는 모르는 지식이 너무 많았고, 네트워킹이 중요한 이 세계에서 스스로가 너무 작은 존재가 된 것과 같은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한 다리 건너 서로가 다 아는 3명의 주니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드디어 이 세계에도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그 후 각자가 1명씩 친구를 데려와서 8명으로 이루어진 일명 스뽀(스타트업 뽀시래기) 모임을 결성했다. 170개의 티켓 매진을 기록한 스타트업 주니어를 위한 콘퍼런스를 성황리에 마무리하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뽀시래기가 아니라 덩어리가 되었지만, 꾸준히 만나 주니어 때와는 다른 결의 고민을 하며 여전히 공감대를 이어오고 있다.    


5. 크리에이터 클럽 멤버들

소셜 살롱 크리에이터 클럽은 요즘 내 열정에 기름을 부어주는 주유소이다. 원래도 열정이 참 많은 사람이었지만, 혼자 태우다 보면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얼마 못가 꺼지곤 했다. 크리에이터 클럽에는 나의 도전을 응원해주거나, 나와 함께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의 나이도, 직업도 모르지만 사람을 향한 따뜻함과 삶을 향한 열정이 다양하고도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크리에이터 클럽에서 만난 멤버들 덕에 편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갈 힘을 얻고 있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모임이다.





나와 가장 밀도 있는 관계를 이어오며 영향을 주고받는 이들을 이렇게 나열하니, 수수께끼가 풀리듯 나를 더 잘 알게 된 느낌이다. 옛날에 유행했던 짤처럼 표현하자면, 신이 나를 만들 때 열정 세 스푼, 자유로운 영혼 두 스푼, 원칙 한 스푼을 넣어 만든 요리가 내가 아닐까.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면서도 정도(正道) 지키고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이게 내 주변의 다섯 사람으로 알아본 나의 모습이다.


Photo by Kevin Delvecchi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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