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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Jul 25. 2020

더러워진 내 방이 보내는 신호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일상의 균형에 대하여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점점 많아지고, 부엌에는 아직 설거지가 안된 그릇이 포개져있고, 빨래통에는 옷가지들이 쌓여간다.


“너 지금 괜찮은 거야?”


더러워진 내 방이 보내는 신호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투두 리스트(To Do List)를 적고, 하루의 끝에는 일기를 쓰면서 그날의 나를 돌아보며 열심히 주어진 하루를 살아간다.


아무리 피곤하고, 늦잠을 잤더라도 간밤의 나의 흔적으로 헝클어진 이부자리는 말끔하게 정리하고 침대를 나온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부엌에 쌓인 설거지가 보기 싫어 그릇이 쌓일 때마다 부지런히 치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딛고 있는 일상의 완벽한 균형에 균열이 가고, 그 틈이 커지며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인과의 밥&술 약속, 야근으로 귀가가 늦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내일을 맞아하기 위해 성급히 엔진의 시동을 끈다. 나를 돌아볼 여유가 점점 사라진다. 무방비 상태로 다음 날을 맞이해 내 하루의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고, 외부의 영향에 휩쓸리며 정신없이 따라가기에 바빠진다.


늦은 밤 택시를 타고 들어와 알딸딸하게 남아있는 술기운에도 뭐가 불안한지 바로 잠들지 못하고 모두가 잠자는 시간, 조용한 인스타그램 속 지인들의 행복해 보이는 일상을 뒤적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보다는, 가볍게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에 하염없이 빠져든다. 매일 꾸준히 쓰던 일기 조차 건너뛴다.


이런 흐트러진 나의 심리 상태는 지저분한 내 집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직 설거지가 안돼서 쓸 수 있는 여분의 그릇이 없어 요리하기를 포기하고, 냉장고에는 싹을 피우는 야채들이 자라난다.



휴, 그래도 내 방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려서 안심이다. 눈에 띌 정도의 무질서함을 인지한 것은 무너진 일상에서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이미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마치 누르면 제일 아플 때보다 이미 아픔은 옅어졌을 때 가장 새파랗게 보이는 멍처럼.


이번 주말, 창문을 활짝 열고 집안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며 내 마음도 말끔히 청소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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