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당원 한스씨와의 추억

by 행신

교환학생 때 만났던 룸메 녀석이 떠오른다. 그는 독일인이었고 이름은 한스였다. 자기는 해적당(Pirate Party) 당원이란다. 해적당? 무슨 원피스 찾는 정당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꽤 역사가 깊은 정당이었다. 여러 주장이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지적재산권 폐지’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이 만들어 낸 지적 성취를 특정 사람 혹은 집단이 독점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국가폭력이라고 했다. 따라서, 지적 재산권을 폐지해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접근 수준을 가지는 게 가장 이상적인 사회 형태라는 주장을 했다.

매우 참신하고 놀라운 주장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물건에 이름을 쓰는 것이다. 지금은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그 시점에서 우리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썼다. 교과서는 표지랑 맨 위 책장이 겹겹이 모아놓였던 곳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름을 쓰고, 제출한 미술 작품에도 항상 우측 하단에 이름을 썼다. 이렇듯, ‘내 것’이라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지적 재산권 또한 내가 공들여 만든 것임을 세상에 표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룸메 녀석은 그런 생각 자체를 기득권식 주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관점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만들어낸 지적 성취물은 개인이 혼자 노력한 것도 있겠지만, 사회의 영역이 크다는 것이었다. 만약 자기가 독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싱가포르라는 나라를 골라서 올 수준의 여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지적 재산권 또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연스러운 의견 개진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물이다. 요약하면 ‘지적인 성취물은 재산으로 분류될 수 없다’가 그의 입장이었다.

그는 엄청나게 비싼 노트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온갖 게임이며 영화들을 전부 어둠의 경로로 취득했다. 문돌이에 컴퓨터와는 거리가 먼 나였지만, 가만 보면 신기하기도 했다. 시중에서 버젓이 돈을 주고 팔리는 여러 성취물들이 저기에서는 ‘All Free’ 였으니까. 솔직히 저 녀석은 불법프로그램을 떳떳하게 다운받고 싶어서 해적당의 강령을 어거지로 끼워맞춘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에게

“너 같은 인간들이 범람하면, 예술하는 사람은 창작의 동력을 잃을 것 아님?”

이라고 비판했는데, 다음과 같은 답을 주었다.

“예술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과연 경제적인 동기일까? 그들은 돈이 되든 되지 않든 예술을 할거다.”

그는 오히려 지적 재산권이 폐지된 채 너도 나도 해당 캐릭터나 플롯 등을 교류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큰 풍요가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처해 있는 기후 위기 또한 지적재산권이 만든 거대한 비극이라고 말했다. 만약 선진국의 친환경 기술 라이센스가 개발도상국에 무료로 풀린다면 저절로 탄소중립은 실현될 것이다. 하지만 그 지적 재산권이라는 형체 없는 무형자산이 인간의 자유로운 사상을 자유롭게 막고 있다며 열을 내었다.

나는 한스와 동아시아 국제 정치 경제 뭐시기 강의를 들었다. 각 나라 분쟁지역들 선별해서 발표시키는 그저 그런 강의였다. 한스는 러시아-일본 영토 분쟁을 발표로 하였다. 나랑 같은 조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조발표를 준비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봤다. 그는 일본인 학생 둘과 같이 조모임을 했는데 그쪽 둘은 진짜 여행을 목표로 싱가포르에 왔기 때문에 한스 혼자 발표 준비를 전부 다 했다. 한스 말로는, 온갖 불법 해킹 사이트는 러시아를 통해서 뚫으면 된다고 하기 때문에 러시아 관련 자료를 보는 건 매우 쉽다나.

한스의 조 발표 날이 다가왔다. 일본인 두명 중 한명은 여행간답시고 발표날임에도 오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발표 끝나기 5분 전에 부랴부랴 왔다. 한스는 표정이 험악해졌지만, 그래도 발표날이니까 웃으며 최선을 다해 발표했다. 학부 수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퀄리티였고,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와 교수님의 의례적인 질문을 끝으로 발표는 끝이 났다.

한달 쯤 지났나, 한스는 갑자기 얼굴이 벌개진 채 방으로 들어갔다.

“한스 왜그래?”

“아니, 글쎄 교수가 발표 점수를 똑같이 준다는거야. 우리가 각자 받은 개별 발표점수 있잖아. 그거를 3등분 해서 뿌린다는데?”

“근데 발표는 거의 네가 거의 다 했잖아.”

“그런데 말이야. 걔네는 한 게 없는데, 왜 점수가 똑같지? 점수에는 차등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심지어 한 놈은 오지도 않았는데.”

“그러게 너가 열심히 노력했는데.”

“맞아. 저 발표는 내 열정의 결과야!(That presentation is the result of my passion!)”

한스는 자신이 불공평한 심사 기준에 열이 씩씩 올라 독일산 맥주를 목젖 아프도록 벌컥벌컥 마셔댔다. 교수는 아무리 따져도 조원 관리를 못한 네 책임이라며 한스를 탓했다. 한스는 자신의 노력을 조원들이 똑같이 나눠가지는게 너무도 억울했지만, 교환학생을 온 그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그는 화를 식히고자 불법으로 다운받은 문명5를 켜고, 불법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팝송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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