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일벌대소동

아버지의 무릎, 벌들의 전쟁

by 행신

아버지의 오른쪽 무릎은 군대 시절부터 망가져 있었다. 군의관이 대충 넘긴 부상은 세월을 타며 앓기 시작했고, 십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독재자가 쏟아지는 민중의 함성을 억지로 눌러앉히듯, 아버지는 약과 인내로 버텼지만 결국 무너졌다. 부마항쟁이 전국 단위의 민주화 운동으로 번져 악독한 군사정권을 끝끝내 무너뜨린 것처럼, 무릎의 고통은 온몸으로 퍼져나가 합병증을 일으켰고, 일만 바라보고 몸을 돌보지 않던 아버지의 몸은 침대 속으로 폭삭 꺼져내렸다.


나는 전문직 시험을 준비 중이었고, 아버지를 제대로 병원에 모실 여유가 없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막노동을 마친 엄마는 곯아떨어져 쿠울쿠울 잠들어 있고, 아버지는 잠결에 신음을 토해냈다. 마중 대신 고통의 비명이 나를 반기던 나날, 그렇게 육 개월을 넘겼다.


사람은 정공법이 막히면 묘수를 찾는다. 우리 집 형편으로는 현대의학이 요원했기에, 아버지는 민간요법에 기댔다. 그것은 바로 ‘봉침’ — 벌의 침을 몸에 박는, 마치 무협지 속 비기 같기도 한 처방이었다.


양봉업자에게서 플라스틱 통 하나를 구입했다. 서른 마리쯤 되는 일벌이 안에서 윙윙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핀셋으로 벌 한 마리를 집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고, 벌은 잠시 머뭇거리다 침을 박았다.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통증이 가신 것 같다며 옅게 웃었다. 다음 날 다시 고통을 호소하면 또 한 마리. 살아남은 벌들에겐 무슨 먹이 같은 것도 주셨다.


그 행위가 과학적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감각이었다. 스스로 벌침을 박고, 다 쓴 탄피처럼 축 늘어진 일벌을 치우며, 아버지는 밤의 고통을 낮으로 선불 결제하듯 당겨 썼다. 그러나 궁여지책은 오래가지 않았다. 봉침의 효과는 점차 희미해졌고, 아버지의 무릎은 파랗게 멍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오랜만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안도감에 나도 불을 끄고 눕는데, 귓가에 왜애애앵 소리가 맴돌았다. 모기장을 안 친 탓이라 생각하며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렸지만, 이상했다. 지금은 11월이 아닌가.


그 순간, 바늘처럼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발바닥을 찔렀다. 벌떼였다. 아버지가 사온 플라스틱 통의 일벌들이 탈옥을 감행한 것이다. 방 안을 편대 비행하며, 방충망에 머리를 박아대다 안 되자, 마치 배수진을 친 병사들처럼 장렬하게 돌격했다. 인간에게 번식 본능도 생기력도 빼앗긴 그들은, 나이만 먹고 공부한다며 몸을 구석에 숨긴 ‘가짜 수험생’에게 수도 없는 일침을 날렸다.


지금은 지난 일이다. 아버지는 이후 병원에서 정식 진료를 받고, 무릎 수술도 잘 받으셨다. 40cm에 달하는 수술 흉터는 남았지만, 더 이상 예전 같은 통증은 없다. 나도 어찌어찌 회사에 취직해 수술비에 조금은 보탰다.


아버지는 망가진 무릎 뼈를 잘라내고 인공 관절을 넣었다. 절단된 뼛조각은 집으로 가져오셨다. 평생 아버지를 움직이게 했던 뼈는 기동성을 내려놓고, 이제는 책장 위 작은 곽 안에서 조용히 쉰다. 더 이상 화려한 뜀뛰기도, 우람한 몸짓도 없다. 아버지의 뾰족한 열정은 그렇게 한 조각 뼈로 남았다. 우당탕탕 날아다니던 일벌은 이제 다음 세대에게 벌집을 넘겨주어야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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