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당연한 조합
애플이 자동차 회사 맥라렌을 인수 혹은 투자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많은 사람이 그 이유를 추측하기 시작하였다. 루머 속에서 다른 기사들이 다루지 않은 부분을 한 번 들춰보자!
맥라렌은 슈퍼카 제조회사이다. 슈퍼카란 고성능 출력을 내는 고가의 자동차로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최적의 세팅을 해 놓은 자동차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포르쉐나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으로 알려진 차들이 슈퍼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회사들이 모두 슈퍼카만 만들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포르쉐의 파나메라는 슈퍼카라기보다는 고성능 세단에 가깝다) 이 회사들은 슈퍼카의 대명사이다. 상대적으로 맥라렌은 마니아층이 인지하고 있는 자동차 회사이다. 최근 들어 반포에 매장이 들어오고 650s와 570s 같은 모델들이 판매되어 길에서 간혹 목격할 수는 있지만 그 희소성은 롤스로이스에 버금간다. 그럼 그 유명한 회사들이 아닌 왜 굳이 맥라렌일까?
맥라렌은 슈퍼카 업체이지만 엔진과 미션을 만들지 않는 회사이다. 그 말은 엔진과 미션을 다른 회사로부터 받아쓰는 회사라는 뜻이다. 실제로 맥라렌 650S는 맥라렌 오토모티브(McLaren Automotive)와 엔진 제조업체 리카도(Ricardo)가 힘을 합쳐 만든 엔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F1 머신은 혼다의 1.6리터 터보엔진을 사용하고 있으며, 과거 BMW의 12V 6L의 어마어마한 엔진을 올린 경험도 있다. 또 미션은 ZF에서 받아 맥라렌 차량에 맞게 세팅 값을 수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맥라렌은 부품산업에 큰 공력을 쏟지 않고 부품을 잘 만드는 업체들과 유기적으로 협업해 온 셈이다. 이런 맥라렌의 특징은 어쩌면 다양한 파트너사와 협업을 통해 밸류를 만들어내야 하는 플랫폼 사업에 가장 적합할지 모른다. 결국,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 가운데 이런 유연한 특성을 가진 맥라렌만큼 매력적인 파트너가 없었을지 모른다.
맥라렌은 그냥 맥라렌일 뿐이다. 아우디와 플랫폼이나 부품을 공유해야 하거나 할지도 모르는 람보르기니나 벤틀리가 아니다. 거대 자동차 회사에 속해 있다는 것은 꽤 많은 부분이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렴한 마세라티의 기블리나 가야르도와 R8이 비슷한 자동차 특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모델을 만들고 그 와중에 운신의 폭이 좁다.
과거 맥라렌 역시 그런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바로 벤츠와 손을 잡았던 시절이다.
맥라렌은 벤츠와 협업을 통해 SLR맥라렌이라는 희대의 겉간지 끝판왕 자동차를 생산했지만, 그 만남은 전혀 달콤하지 않았다. 결국, 둘의 만남이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맥라렌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지니어 고든 머레이와 예쁘지만 에어로다이나믹을 무시하는 자동차를 요구하는 벤츠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두 회사는 갈라섰다. 이후 맥라렌은 그냥 맥라렌으로 남았다.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맥라렌으로 말이다.
거대자본 혹은 기존의 패권사업자와 손을 잡지 않는 것은 애플의 기존 통신사 협업 전략이나 정책에서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존사업자나 패권사업자는 혁신에 무디고 잘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가볍고 함께 잘 뛸 수 있는 파트너가 더 절실한 법이다.
결국, 엔진도 미션도 거대 자본도 없는 이 회사가 생존하는 방식은 그 외의 장점을 응집하여 잘 달리는 차를 만드는 것이다. 그건 바로 서스펜션과 에어로다이나믹이다. 그리고 그 분야는 맥라렌이 가장 인정받는 분야이다.
슬프게도 엔진과 미션의 강자는 사실 머지않은 미래에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내연기관의 종말은 배터리 엔진 시대를 열면서 과거 강자들을 같은 출발선에 서도록 강요할 것이다. 동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기 에너지는 미션의 역할도 축소할 것이다.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되는 자동차 회사들에게 남는 경쟁 포인트는 바로 서스펜션과 에어로다이나믹이다. 이건 맥라렌에 유리한 게임임이 분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강점이 현재의 약점이 되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절묘한 궁합에도 맥라렌은 애플과 어떤 협상도 진행하고 있지 않다는 공식입장을 루머가 나온 지 하루 만에 발표하였다. 실제로 애플이 맥라렌에 돈을 투자할지 알 수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애플이 맥라렌과 손을 잡는다면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가장 크고 성공적인 협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부는 맥라렌이 세단 차량 디자인이나 대량 생산 체계에 약점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애플이 ARM과 TSMC 그리고 삼성과 협업하며 모바일 산업을 키웠던 것처럼 풀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매력적인 조합을 정말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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