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시대, 직업의 패러다임 시프트 바라보기
'변호사', '판검사', '의사', '약사'이 모든 직업에 공통적으로 붙어 있는 '사'라는 단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좋은 직업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다. 단순히 그 직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안정성뿐만 아니라 전문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존중 받을 수 있는 직업으로 자리해왔다. 이처럼 '사'의 직업들이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근간에는 그 지위를 갖기 위해 상당한 정도의 공부가 필요하고, 그렇기에 아무나 그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 인식은 지금에 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또한 절대적으로 많은 공부 양과 그에 따른 높은 지적 수준은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철옹성 같던 '사'짜의 권위에도 흔들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른 직업이나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짜의 권위를 흔들고 있는 것은 바로 인공지능이다.
병원은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특히 국내에서는 길병원에서 이미 IBM의 왓슨을 활용한 암 진단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 성공적이다. 암이라는 병의 특성상 일단 증상을 확인한 후 그간 동일한 증상을 보였던 환자들의 치료 및 경과에 대한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치료를 진행하게 되는데, 당연히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정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인공지능은 치료법을 제안할 뿐 결정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앞으로도 결정의 영역은 사람의 손에 남아야겠지만 진단과 치료법 선정과정 상의 권위는 '사람'으로부터 '인공지능'으로 확실히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http://news.zum.com/articles/34669881
법의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의 파고가 더 높을 수도 있다. 스탠퍼드 재학생이 만든 앱 ‘두낫페이’(DoNotPay)는 지난 2년간 영국과 미국에서 자신이 받은 주차딱지에 대해 이의가 있던 운전자들을 도와 총 16만건 400만 달러어치의 주차딱지가 취소되도록 도왔다.
http://news.zum.com/articles/31525953
그렇다. '사'의 영역은 많은 지식과 뛰어난 두뇌의 이유로 존중 받아왔지만, 이제는 그 장점 때문에 인공지능에게 대체 당하는 것이다. 같은 ‘사’라 하더라도 의사와 약사는 스승을 뜻하는 '師'를, 변호사는 선비 혹은 관리직을 뜻하는 '士'를 한자로 사용해 차이가 있지만, 그 직업들 간에는 확실히 방대한 지식을 통해 존중 받는 '전문직'이라는 공통점이 분명히 있었다. 한편 이처럼 기존의 사회에서 높은 존중을 받던 전문직들이 분해되고 해체 당하게 될 와중에 나름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영역이 있다. 그건 바로 '가'짜의 직업이다.
그렇다면 '가'짜의 직업은 무엇이 있을까? 화가, 작곡가, 작가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 단어를 한자로 살펴보면 畫家, 作曲家, 作家이다. '가'짜는 집에 대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가'짜의 직업은 좀 더 사람의 삶 속에 있고 지식이 아닌 사람의 본질에 가까운 일인 것이다. 한편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데이터 분석가 역시 分析家라는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 '가'짜의 직업이기도 하다. 비슷한 관점에서 보면 '장사꾼' 혹은 '농사꾼' 등에 붙여온 '꾼'의 직업 역시 앞으로 '사'의 직업보다 인공지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지식, 데이터베이스 혹은 제도와 기준에 영향을 덜 받는 직업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IT영역의 개발자나 기획자 역시도 자유로운 창의와 본질에 집중하는 개발가나 기획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영역에서 기계가 인간을 보조하던 시대는 점점 기계의 빈 곳을 사람이 메우는 양상으로 변화 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대의 중심에서 직업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전문직이 아닌 창조직의 시대가 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바로 '사'짜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가'짜들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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