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함이 결여된 자신감 또는 사실이 아닌 자기묘사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자
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그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이 보기에는 할 수 없는 것을 스스로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직 글을 잘 못 읽는 둘째를 가리키며 까막눈이라고 이야기 하면 둘째는 바로 욱하며 "나 글 읽을 줄 알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와는 조금 다르게 축구를 배운지 꽤 되었지만 축구를 그리 잘하지 못하는 첫째가 축구 수업을 다녀온 날 축구 수업을 잘했는지를 물어보면 이내 역동적인 경험담들이 쏟아져 나온다. 당연히 그런 첫째와 둘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흐뭇하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줄 몰라서 또는 잘 할 줄 몰라서 시무룩해 있는 것보다는 더 당당하고 활기차서 이내 곧 잘할 것 같은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상이 어른이라면 이야기를 좀 다를 수 있다.
이렇게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로서의 입장에서는 포용력이 높은 나는 이와는 다르게 나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이지 못하거나 이미 충분히 이성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하는 사람이 무언가 부풀려진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겉으로는 잘 티가 안나는지 모르겠지만 내적 알레르기 반응이 생긴다. 이에 대한 연장선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꽤 어려워 한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를 평가할 때는 객관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업으로 삼고 있는 UI UX 혹은 서비스 기획 영역만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잘하는 기획자인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이 부분은 잘하고 못하고에 대한 정확한 척도도 없을 뿐더러 타인의 평가만을 정성적으로 듣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나 스스로는 타인에게 "저는 얼마나 괜찮은 기획자인가요?"라고 묻지도 않지만 그 답을 듣는다고 해서 내가 궁금해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할 수 있나 혹은 잘 할 수 있나 라는 질문은 영원히 풀릴 수 없는 해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경우로눈 달리기를 이야기 해 볼 수 있다. 나는 최근 들어서는 몇 개월 시간을 내어 달리기를 꾸준하게 하고 있다. 달리기는 다른 종목보다 매우 뚜렷한 기록 경기이다. 그리고 대략 6개월 정도 시간을 꾸준히 투자해서 달리니 처음 기록보다는 현격하게 기록이 향상되었다. 기록을 항상 측정해주는 NRC(Nike Run Club)앱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5km기준으로 km당 최소 1분을 줄였으니 기록 향상만으로는 스스로를 칭찬할만 하다. 하지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내가 나 자신을 '달릴 수 있다' 혹은 '잘 달릴 수 있다'라고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건 여전히 어렵다. 간혹 잘 달리는 사람들이 가득한 마라톤 관련 커뮤니티에 가게 되면 내가 얼마나 한 없이 평범한 생활체육인인지 가감없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일반인인데도 1km를 3분대로 주파하는 러너들이 많다. 나와는 괴리감을 느낄 필요조차 없을 차이이다. 그 안에서 나는 그저 평범한 일반인일 뿐이다.
꼭 달리기만 그렇겠는가? 세상만사가 사실 그렇다. 살다보니 모든 일은 내가 스스로 입을 뻥끗거리고 자랑을 하기에는 놀라운 능력자들이 많다. 그들과 비교를 했을때 움츠러드는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보다 못하기에 원래 하던 달리기나 서비스기획에 대해서 자괴감이 들거나 못해먹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다. 결코 자만해서는 안되겠다는 경각심이 내 온몸을 파고 드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나 '이것만큼은 내가 왠만하면 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쯤 있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에게는 그것이 게임 '애니팡'이었다. 전국민이 애니팡에 흠뻑 젖어 있었을때 나는 주변의 모든 카톡 친구들을 통틀어 심지어 내 주변 지인의 모든 지인을 통틀어 압도적인 1등이었다.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면 겨우 애니팡 따위 잘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무쓸모한 만족이었겠지만 평생 누군가를 압도해본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매우 생경한 만족감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스스로 '고수'라고 칭하여 농담반 진담반 페북에 포스팅한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나의 팀장님께서 댓글로 왈 '고수는 스스로가 고수라 칭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피드백을 주신 적이 있다. 나도 물론 진지하게 나 스스로를 고수로 칭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팀장님의 댓글은 스스로 호칭하는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언제나 평가란 내가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시작되고 끝난다는 평범한 사실 속에서 말이다.
다시 달리기 이야기를 하자면 꾸준한 노력 덕분에 나는 5km 24분대 기록과 1마일 7분 20초의 기록을 얻었다. 하지만 그 모든 기록은 컨디션과 날씨 그리고 집중력이 모두 갖춰진 결과였다. 평상시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닌 것이다. 거리 역시 12km를 넘게 뛸때도 있지만 그게 내가 남들에게 저 "12km 뛸 수 있어요!"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느껴진다. 1.내가 해본 것 혹은 2.할 수 있을 것 같은 것과 3.실제 지금할수 있는 것 간의 차이는 분명 크다. 내가 할수 있는건 안정적인 5km 26분대와 매일 12km가 아닌 3km를 꾸준히 달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분명히 크다. 내가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려면 그건 26분과 3km이지 24분과 12km는 아닐 것이다.
살다보면 너무 쓸데 없이 혼자서 자랑스러움이 많으신 분들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간혹은 본인이 하지 않은 것도 본인이 했다고 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또는 자신의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자랑스러움을 자신의 것으로 치환하시는 분들도 많다. 당연히 그들이 전혀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도 잘못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진실의 농도 혹은 Reality의 농도의 차이에 따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곤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면 거짓말쟁이 역시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한 때는 주변에서 그런 태도를 가진 이들에게 그것이 잘못되었고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스스로를 드러내야 하지 않겠냐고 되묻곤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나는 마음 속의 평정심이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구태여 그런 이야기를 하지도 않게 되었다. 물론 그리 이야기 해 봤자 무언가 바뀔 것은 없다는 사실도 나의 묵언수행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저 표현의 차이, 의도의 차이 그리고 사람의 차이가 있는 것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그 상대성 때문에 어울릴 수 있는 대상과 어울리지 어려운 대상이 갈라질 것이다. 나 역시 그렇기에 객관성이 결여된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작은 것을 크게 부풀리는 사람들과 상황들을 겪을 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적 알레르기 반응을 가지고 있고 이런 메커니즘에 따라 그들과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알레르기 반응의 원인이 이 세상을 다채롭게 만드는 다양성을 창조하는 기반이 아니겠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면서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