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가능과 불가능의 사이에 대하여
옷에 삐져 나와있는 실오라기를 잘라내보려고 한적이 있는가?우린 종종 가위로 잘라내면 깔끔할 그것을 칼로 자르겠다고 하는 바람에 실오라기가 계속 올라와 곤혹을 치를 때가 있다. 심지어 그 실오라기가 많이 올라오게 되면 옷의 한 부분이 터지기도 한다. 누군가 혹자는 어떤 상황에선가 칼이나 가위나 똑같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가위의 양날은 자르고자하는 입사면에 양방향의 압력을 주어서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반면 칼은 칼이 자르려고 움직이는 방향으로 잘리는 대상 역시 압력을 받고 움직인다. 이 간단한 원리가 반대쪽에 면을 맞대고 있는 물건을 자를 때 우리가 가위가 아닌 칼을 쓰는 이유이다.
서비스 기획을 하다보면 기능 정의라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도 심오하게 들여다 보면 가위와 칼의 관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주문취소와 반품처럼 말이다. 둘은 거래가 없었던 것으로 한다는 핵심은 비슷하지만 실상 본질은 다르다. 칼을 쓸 상황과 가위를 쓸 상황이 다르듯 취소를 할 수 있는 시점과 반품을 할 수 있는 시점은 다르다. 마찬가지로 언뜻 보면 그게 그거 같은 위시리스트와 장바구니 또는 주문서는 그 사용 목적이 다르다. 그 디테일을 잘 쫒는 이들을 나는 훌륭한 기획자라고 부르고 싶다.
정의를 잘하고 대체 불가능의 관계를 잘 구분하는 능력 말이다.
주변을 보면 출퇴근 거리가 멀어서 하루 걸음이 많아 운동을 안 해도 된다는 이들이 가끔 있다. 그들은 활동과 운동을 혼재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활동과 운동은 마음가짐과 시작 그리고 목표가 엄연히 다르다. 게다가 운동화와 러닝화도 다르다.
세상에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과 영화를 즐기는 사람이 다르고 캐롬 당구를 즐기는 사람과 포켓볼을 즐기는 사람이 다르다. 심지어 세븐포커를 좋아하는 사람과 텍사스 홀덤을 즐기는 사람이 다르다. 모두 다른 사용자의 경험을 위해 설계된 것이다. 당구큐대가 비슷해보이고 TV를 통해 본다고 모든 것이 같은 것이 아니다.
여담으로 한때는 골 넣는 골키퍼의 존재가 축구계에서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특히 유명했던 선수로는 칠라베르트라는 선수가 있었다. 그는 프리킥도 직접 차고 골대에서 거리를 좀 두고 수비진의 영역까지 가끔 나오기도 하였다. 그런 그를 보면서 우린 약간 짜릿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상황을 함께 보고 있던 감독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감독도 짜릿함을 느꼈겠지만 그건 아마도 조금 다른 종류의 짜릿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국가대표 골키퍼로서 많은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골키퍼 능력이 출중해서였다. 그게 엉망이고 프리킥만 잘찼다면 그건 골키퍼로서는 기본적인 골대 앞 수비 능력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 기본에 더 출중했던 이케르 카시야스, 잔루이지 부폰 그리고 페트르 체흐를 더 뚜렸히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제품을 설계하던 혹은 나 자신을 설계하던 대체가능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관점이 동일해 보인다. 어설프게 비슷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정의하고 그걸 디테일하게 다듬듯이 말이다. 모두가 세븐포커를 즐겁게 치고 있을 때 텍사스 홀덤을 생각해낸 사람의 마음이나 모두 칼로 물건을 자르고 있을때 가위를 고안해낸 사람의 마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