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메이커에 대하여
힙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약 20년차 이어폰 리스너다. 롤링홀 같은 곳에 가서 언더 공연을 본적도 없고 이미 그런 곳에 가기에는 나이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힙합을 찾아서 듣고 즐기는 사람이다. 항상 유튜브 안에서 좋은 국힙을 찾고 있다. (외힙은 거의 듣지 않는다.)
아주 예전에는 힙합은 1인 (혹은 단일그룹/팀) 음악에 가까웠다. 혼자 비트를 따고 샘플링을 얹고 혹은 멜로디 라인을 입히고 가사를 쓰고 녹음을 뜨는 구조에 가까웠다. 내가 그 음악계를 확실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아티스트 1명이 1인 5역을 하는 것에 가까운 것이 힙합 음악이었다. (혹시 오래전부터 그렇지 않았다면 Sorry~)
물론 조력자들은 있었다. 국힙이 언더만 있던 시절, 레이블은 커녕 크루도 없던 시절에는 아마도 그들에게 그냥 친구들 (다른 아티스트)들과 서로 건너건너 알게되어 힘을 합치고 음악을 하였다. 뭔가 최고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역할 조합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내가 느낀 국힙의 느낌은 그냥 'Yo! Bro!'의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그 시절에도 가리온의 '무투'나 '소문의거리' 혹은 '영순위'와 같은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o7cBSfYzBx4
내가 힙합 음악을 직접하는 사람도 녹음실에 한 번 가본 사람도 아니기에 감히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믹스테입'이라는 문화? 요소? 역시 1인 창작 중심으로 실력을 평가 받는 힙합 시스템의 프로세스라고 생각하다. (요즘에는 일단 디스가 벌어지면 믹테나 열심히 만들으라고들 하니까.)
이후 나오기 시작한 본격적인 크루 힙합은 서로의 색을 섞어서 하나의 탄탄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꼭 서로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합친다기 보다는 그냥 개성을 섞고 연대하는 느낌이었다.
부산을 중심으로 했던 지기펠라즈나 더콰이엇, 키비, 화나, 마이노스나 크루셜스타 그리고 최근 2~3년 사이에 핫한 매드클라운이 몸담았던 소울컴퍼니 그리고 CSP나 매슬로우, 지금은 JM에 있는 블랫넛이 있었던 소울커넥션 등등 많은 크루들이 2000년대 초반에 생겨나고 2000년에 후반까지 명성을 이어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JdWmLH41-yY
흔히 국힙을 많이 듣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가운데 덕화는 랩을 못하니까 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일리네어 공연 라이브를 유튜브로 보게 되면 휘몰아치는 랩은 도끼, 분위기와 간지는 빈지노 그리고 덕화는 랩도 많이 담당하지만 다른 멤버에 비해 훅이나 더블링의 비중이 높게 느껴진다. (오래전부터 국힙을 들었던 사람들은 솔컴의 덕화를 그리워하지만 나는 그둘을 모두 좋아한다. 적어도 음악적 색깔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비트메이커로서의 능력은 양쪽에서 모두 훌륭하니..)
https://www.youtube.com/watch?v=MVpIewh1Jog
그런데 꼭 랩의 비중이 적어도 일리네어에서 덕화의 비중은 결코 도끼에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프로듀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일리네어 음악 중 비트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덕화이다. 어쨋든 그의 비트 위에서 팬들이 즐거워하고 흥이 오르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LH9TJKAFFc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외힙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았다 혹은 그 이상이다.'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슈는 이 글에서는 배제하도록 하겠다.
이 부분에서 또 언급하고 싶은 사람이 한 명있다. 바로 바스코다.
노창(뿐만 아니라 JM의 모든 멤버)의 더블링에 몸을 맞기고 랩을 하는 바스코!
https://www.youtube.com/watch?v=FfLkvdvrOlc
풍류의 시절에는 넋업샨이 만든 비트위에 리듬을 타던 그가 이제 더 전문적으로 비트를 만들어내는 노창의 더블링 위에서 플로우를 타는 것이다. (넋은 훌륭한 뮤지션이지만 현대의 힙합 음악 분야에서 비트만 전문적으로 만들어내는 뮤지션들에 비해서 그는 완벽히 라임을 타는 랩퍼에 가깝다.)
그는 약 15년의 세월을 앞뒤로 하며 그 시대에 맞는 비트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2명의 비트메이커와 작업을 했다. 분명 서로 다른 음악적 느낌과 다른이가 만든 비트 위에 바스코의 음악이 있다. 그리고 위에 적었듯이 노창과 넋이 다른 확실한 부분은 넋은 랩퍼로서 비트를 만들었고 노창은 랩보다는 비트를 중점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국내 많은 연예기획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역할을 나누고 힙합도 시스템화되면서 랩퍼와 비트메이커의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레이블들은 비트메이킹을 핵심 역량으로 인식하고 레이블을 대표하는 비트메이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길과 그레이가 쇼미5의 심사위원이 된 것 역시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국힙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예상했을 것처럼 길이 심사위원이 된 부분에 대해서 자격논란을 부추기는 댓글이 많이 올라왔다.
그레이는 AOMG의 음악의 마지막 관문이다. 로꼬, Jay Park, 쌈디의 음악에 모두 그레이의 색채나 비트가 들어간다. 아무도 그레이에게 분자요리 수준으로 비트를 쪼개 놓은 스킬 위주의 랩핑을 바라지 않는다. 비트는 기술이나 연습보다는 내 생각에는 감각의 분야이다. (알파고가 따라하기는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비트메이커가 음악의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어마어마하며, 그들이 심사를 하는 관점에서 '음악을 한다.'가 아닌 '음악을 듣는다.'의 관점에서 나는 이런 자격논란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곡들과 앨범에 이바지 했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EukciBGVyW0
노창의 '세계일주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최고의 랩퍼 혹은 라임메이커는 아니더라도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이기는 하다. 그는 최고의 비트메이커이다.
말이 되고 안되고에 대한 중요성보다는 입으로 나오는 음만으로도 플로우을 만들어내는 능력 바로 이런 것이 비트메이커의 감각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즉 음악을 근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420hjQNeBbw
MC(랩) 비보잉 디제잉 그래피티
위의 4 가지는 힙합의 4대 요소라고 아주 오래 전부터 정의되었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제 MC는 오히려 음악이라고 바꾸고
그 안에 랩핑/비트메이킹/비트박스 등으로 더 세분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음악계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시스템이 마치 공장에서 정해진 플랫폼을 바탕으로 자동차를 생산하듯이 양산화된 음악 시스템이라고 싫어할테지만 이미 그런 흐름은 피할 수 없다. 서서히 올라섰던 뿌리깊은 나무 위에 피어나는 꽃들처럼 더욱 전문화된 비트메이커들은 앞으로의 힙합음악을 새롭게 물들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