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ㅇㅇ씨는 왜 머리를 안 바꿔요?
“ㅇㅇ씨는 왜 머리를 안 바꿔요?”
회사를 다니며 자주 들었던 말이다. 뭐, 물어볼 수 있다.
한참 꾸미기 좋아할 나이인 20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같은 머리에, 심지어 질끈 묶고 다니니 궁금할 수밖에.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당황했다. 적절한 대응법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저 허허하고 머쓱하게 웃으며 “제가 꾸미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근데 나는 사실 꾸미는 걸 좋아한다. 옷도 좋아하고 액세서리도 좋아한다. 화장하는 것도 좋아하고 네일 하는 것도 좋아한다!!! 다만, 머리는 건드릴 수가 없는 영역이었을 뿐이었다. 저 질문을 한 사람들 눈에는 다른 건 안 보이고 안 바뀌는 머리만 보였겠지. 그렇다고 “아, 제가 가발을 써서요.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가 없어요.”라고 대답할 순 없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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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성인이 되면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었을 텐데, 나의 경우에는 그게 피어싱과 염색이었다. 내가 학교 다닐 적만 해도 복장 규정이 심했고 두발 자유화가 되지 않았기에 머리를 길게 기르지도, 파마를 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욕구가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피어싱은 20살이 되자마자 뚫어버렸지만, 염색은 20대 후반이 된 지금도 경험하지 못했다. 탈색을 하고, 백금발로 어느 정도 살다가 빨주노초파남보. 색을 바꿔가며 다양한 색으로 머리를 해보는 것이 내 꿈이었는데.. 아마 평생 못 이루지 않을까. 이 슬픔을 저 질문을 했던 사람들은 알까? 모르겠지. 어떻게 알겠어.
이 글을 읽지만 탈모와 가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차피 가발을 쓰는 거면 여러 가발을 사서 다양한 색으로 다양한 스타일로 매일 변화를 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발에 관련해서는 추후 더 깊게 글을 써보려고 하지만, 간단히 써보자면 일상생활에서 티가 그나마 덜나고 나에게 맞는 전체가발을 구매하려면 최소 100만 원이다. 최소.
쇼트커트 정도의 기장이 최소이다. 단발, 중단발, 장발까지 가면 금액은 최대 2-3배까지 추가된다. 이건 인모가발의 이야기이다. 인모로 가발을 만들었기 때문에 염색 파마 고데기 등 스타일링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러면 가발의 수명이 반으로 단축된다.
가발은 관리만 잘하면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몇 년을 쓸 수 있는데 평균 100-200만 원짜리의 물건을, 내 얼굴에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도 모르는 스타일링을 한다는 것은.. 일반인으로는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가발을 몇 개 두고 돌려가며 착용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로 현실성이 없는 일이다.
인터넷에 가발 치면 몇만 원 짜리도 많이 나오던데? 그런 거 쓰면 안 되냐고? 착용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런 것들은 인모가발이 아니어서 티가 난다. 마네킹 머리, 인형 머리와 같이 반짝반짝 거린다. 2-30만 원, 심지어 50만 원짜리도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다. 안 그래도 난 가발을 써서 신경 쓰이는데. 24시간 매분, 매초를 신경 써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결론적으로 가발을 바꿔가며, 스타일링해가며 가발을 착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몰랐지만, 꽤나 상처를 받았었던 20대 초중반의 나는 그 이후로 더욱 말조심을 하게 되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은, 너무나도 맞다.
내가 생각 없이 뱉은 말에 평생 가슴에 남을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