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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Jul 25. 2021

나겔스만, 환영해. 뮌헨은 처음이지?

안티 1860 때문에 울다가, 뮐러 덕에 웃다가

24일 오후 바이에른 뮌헨의 써머투어 '아우디 풋볼 써밋 2021'이 열렸다. 바이에른이 매년 여름 3팀을 알리안츠 아레나로 초대해 펼치는 대회다. 이날 바이에른은 네덜란스 명문 아약스를 상대했다. 


경기는 2-2로 끝났다. 베테랑 에릭 막심 추포모팅의 한 방, 요슈아 지어크제의 바보짓 등 꽤 볼거리가 많았다. 무엇보다 통산 30회 우승으로 별 다섯 개를 가슴에 달고 나온 바이에른은 이날 자리한 8,500명 관중에게 자부심을 선사했다. 


그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은 인물이 있다. 그라운드 밖에 있는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이다. 올 시즌 부임한 나겔스만 감독의 알리안츠 아레나 데뷔 무대였다. 팬들은 그와 사진을 찍고 싶어 난간에 딱 붙어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사진 기자의 카메라 세례를 가장 많이 받기도 했다. 장내 아나운서도 우렁찬 목소리로 바이에른의 새 수장 이름을 외치며 나겔스만을 한껏 환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핑크빛이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뮌헨이다. 호펜하임이나 라이프치히는 그 지역의 절대적 1강이지만 뮌헨은 다르다. 여기엔 바이에른 팬들이 우주에서 제일 싫어하는 TSV1860뮌헨도 있다 (보통 바이에른의 라이벌을 도르트문트로 꼽지만, '찐' 라이벌은 1860이다). 하필 나겔스만이 과거 1860에서 뛰고, U-17팀의 코치로 활동한 '전적'이 있으니 그를 반대하는 세력이 알리안츠 아레나를 찾는 건 어쩌면 예견된 수순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이에른의 서포터석 '쥐트 커베(Süd Kurve)'에 1860의 상징인 사자가 그려진 플래카드가 등장했다. 그 사자에는 총구를 겨눈 듯한 조준선이 그려져 있다. 그 플래카드를 둘러싼 20명가량의 바이에른 팬들은 "나겔스만 너 이 새끼, TSV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사자 옆에는 Munich's Red Pride라고 적혀있다. 그들의 외침은 75,000명을 수용하는 알리안츠 아레나에 아주 크게 울려 퍼졌다. 반대편 기자석에 앉아있던 나도 들을 정도였으니, 나겔스만 귀에도 당연히 들어갔을 거다. 


경기 후에 나겔스만은 "나도 들었다. 관중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라고 말했다. "하나 말하고 싶은데, 나는 엊그제까지 1860에 있던 게 아니다! 그리고 라이벌전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참겠다. 내가 라이벌팀에서 왔다는 사실에 모두가 박수를 보낼 필요는 없다. 어떻게 대응하든 우선 각자 양심에 손을 얹어야 한다"라고 나겔스만은 덧붙였다. 


꽤 속상한 모습이었다. 바이에른주의 란츠베르크 암 레히 출신 나겔스만은 어릴 적부터 바이에른 팬이었다. 그러니 마음이 더 아팠을 거다. 고대했던 알리안츠 아레나 데뷔전부터 '안티팬'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경기 전날은 나겔스만의 생일이었다. 


그런 그를 마침내 웃게 한 건 같은 바이에른 지역 출신 토마스 뮐러였다. 뮐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엄지발톱이 다 상한 자신의 발 사진을 올렸다. 축구를 오래 한 뮐러의 발은 당연히 '예쁠 리' 없었다. 뮐러는 사진 아래에 '아마 빨리 나겔스만에게 가야 할 것 같군...'이라고 적었다. 


나겔스만의 이름을 사용한 언어유희였다. Nagelsmann의 Nagel은 손톱이나 발톱을 의미하고, Mann은 남자다. 즉, 나겔스만을 직역하면 손톱이나 발톱의 전문가 정도로 해석된다. 뮐러의 포스팅은 큰 인기를 끌었다. 동료들이 일제히 웃는 이모티콘으로 댓글을 달며 뮐러의 유머에 빵빵 터졌다. 


뮐러와 '맞팔'한 나겔스만도 포스트를 봤다. 평소 가볍고 유쾌한 질문을 잘 던지는 기자가 나서 나겔스만에게 물었다. 나겔스만은 "꽤 괜찮은 포스트다. 그렇게 스스로 웃을 수 있는 게 뮐러의 큰 장점 중 하나다"라며 웃었다. 이어서 "근데 내가 제일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발톱 깎기다! 배운 적이 없다. 아마 스스로 깎아야 할 것 같다"라고 선언했다. 뮐러가 꽤 속상(?)할 법한 대답이다. "뭐, 우리 팀에는 족부 전문의가 한 명 있다. 아마 그녀가 나보다 더 잘 깎아줄 것이다." 


데뷔전부터 안티 1860 팬들에게 욕먹을 줄은 예상치 못했을 텐데, 뮐러가 못생긴 발 사진을 올리며 자길 소환할 줄은 더더욱 몰랐을 거다. 


선수 영입에 관한 압박도 당연히 받았다. 기존 선수들과 유망주들을 활용하겠다고 수차례 선언했지만 이 자리에서도 그에게 새 선수 영입 계획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DFB 포칼을 모두 소화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넓은 선수 풀은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나겔스만은 "새 선수 영입하면 좋겠지만 현재 선수들을 봤을 때 딱히 필요성을 못 느낀다. 나는 이미 있는 자원을 활용할 거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판데미 속에서 모든 걸 다 갖추는 건 어렵다. 우린 좀 더 창의적으로 접근해서 이 경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선을 제대로 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른 시일 내에 같은 질문은 또 나올 거다. 여기는 뮌헨이니까. 각오하라구. 


뮌헨에 온 걸 환영해. Willkommen in München, Nagelsmann!


사진=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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