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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Apr 12. 2021

바이에른이 지금 유망주 대회를 열 때가 아닌데

요즘 뮌헨 날씨가 심상치 않다. 지난주에는 23도까지 오르던 날씨가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지더니, 눈보라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10일 오후에는 오랜만에 하늘이 맑았다. 선글라스가 필요할 정도로 쨍쨍했다. 뽀송뽀송한 기분으로 알리안츠 아레나로 향할 수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과 우니온 베를린이 2020-21 분데스리가 28라운드를 치른다.


경기 한 시간 전, 선발 라인업이 공개됐다. 날씨처럼 뽀송뽀송한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2000년생 티아고 단타스와 요시프 스타니시치가 나란히 선발에 이름을 올렸다. 스타니시치는 심지어 데뷔전이었다. 보통 벤치 멤버로 구분되던 보나 사르와 자말 무시알라도 선발로 나섰다. 교체 명단 상황도 비슷했다. 아무리 리그 1위라지만 너무 자만한 것 아니냐고? 바이에른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우선 스트라이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는 부상이고, 세르쥬 그나브리는 코로나19 확진자로 분류됐다. 3일 전 열린 파리생제르맹(PSG)에선 부상자가 4명이나 발생했다.


불행이라면 일주일 간격으로 만나는 PSG와의 1, 2차전 사이에 리그 경기가 있다는 점. 다행이라면 그 리그 상대가 ‘약체’로 분류되는 우니온이라는 점. 안타까운 건, 한스-디터 플리크 감독이 그 사이에서 로테이션을 고민조차 하지 못할 만큼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 마치 해탈한 듯한 느낌이 솔솔 들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흘렀다. 바이에른은 우니온을 지배하지 못했다. 첫 프로 무대인 스타니시치를 요슈아 킴미히가 자주 도왔다. 왼쪽 측면과 중앙을 쉼없이 오가며 어린 후배를 지원했다. 3일 전 뒤통수에서 피를 철철 흘렸던 뮐러는 이날도 풀타임 뛰며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런 형님들의 고군분투를 등에 업은 단타스는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현장에 있던 모든 기자가 입을 모아 단타스를 칭찬할 정도였다. 선제골의 주인공은 열여덟 무시알라였다.


후반전에 플리크 감독은 빠르게 선수들을 교체했다. 18세 탕귀 니안주와 크리스토퍼 스콧까지 투입됐다. 스콧의 프로 데뷔였다. 그렇게 두 어린 선수가 여기서 데뷔전을 치렀다. 마치 유망주 대회가 열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1-0으로 앞서던 바이에른은 결국 정규 시간 종료 5분 전, 마쿠스 잉바르트센의 발끝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날 리더 역할을 맡았던 하비 마르티네스는 허리를 푹 숙였다. 르로이 사네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추가 시간 3분 경 다비드 알라바가 희망을 안고 찬 슛은 하늘 높이 솟아버렸다. 바이에른은 그렇게 승점 2점을 ‘잃었다’.



이 경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바이에른이 우니온과 비기고 말았다. 생각나는 대로 타자를 두드렸다. 전력 손실이 뼈아프다. PSG전 패배로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을 바이에른에 아쉬운 경기다. 뮐러와 킴미히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레반도프스키가 필요하다. 그때 내 스마트폰 화면에 새 메세지 알림이 떴다. 평소 알고 지내는 독일 에이전트의 메세지다.


“우리 선수 스타니시치 오늘 잘하지 않았어?”


내 기억에서 벌써 사라진 2000년생. 그렇지. 오늘 이 선수 프로 데뷔전인데 준수하게 치렀지. 큰 실수도 없었고. 그라운드 위로 시선을 옮기니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플리크 감독의 모습이 보인다. 스타니시치는 아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라커룸으로 향했다. 스타니시치를 비롯해 이날 그라운드를 밟았던 어린 선수들은 뮐러와 노이어의 격려를 듬뿍 받고 있었다.


40분 후 플리크 감독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역대급’으로 늦게 시작됐다. 선수들과 대화를 오래 나눈 모양이다. 자리한 플리크 감독은 “아쉽다”나, “속상하다”는 류의 말은 꺼내지 않았다. 대신 “오늘 뛴 모든 어린 선수들이 잘했다”라고 했다.  


“티아고도 잘했다. 그는 볼을 안전하게 소화했다. 스타니시치는 원래 우측 풀백을 보거나 센터백으로 선다.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 서서 아주 좋은 경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볼을 갖고 있을 때도 자신감을 보인 모습이 좋았다. 역시 볼간수를 잘했다. 공중볼도 괜찮았다. 그에게 확신을 가진 순간이었다. 팀 전체가 좋은 정신력을 보였다.”


플리크 감독의 이런 평가에 취재진이 던지는 질문의 흐름도 유망주에게 흘러갔다. 티아고를 향한 구체적인 멘트, 골을 넣은 무시알라의 능력 평가 등을 요청했다. 그렇게 우니온전은 바이에른에 성공적인 ‘유망주 대회’로 끝났다.



바이에른은 무승부는 아쉽지만 숨은 보석을 찾아 긍정적인 경기로 받아들인 것 같다. 조금 안타까웠다. 지난 시즌 바이에른은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그때도 새로운 영입이 많이 없었지만 로테이션을 충분히 활용할 정도는 됐다. 무엇보다 멀티 플레이어가 많았다. 서로의 빈자리를 잘 채웠다. 올해도 영입 이력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상황이 영 딴판이다. 2군에서 선수를 끌어와야 하는 수준이다. 3일 전 PSG전에 2-3으로 지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시 살려야 하는 우니온전에서, 뜻밖의 ‘프로듀스 101’이 열렸다.


‘프로듀스 101’ 우승자들을 데리고 당장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와 견줘야 한다면? 바이에른이 딱 그런 상황이다. 그 뽀송뽀송한 이들을 데리고 파리로 날아가 PSG를 만난다. 네이마르와 킬리앙 음바페가 휘젓는 PSG를. 이럴 때가 아닌데, 별다른 방도가 없다.


결국 본질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지난 시즌 지킬 수 있던 퀄리티 있는 선수(ex. 이반 페리시치)를 끝내 놓쳤고, 돈을 들여 영입한 선수는 벤치에서 엉덩이 떼기가 어려울 정도의 실력을 보인다. 스퍼트를 힘차게 내야할 중요한 시기에 유망주 발굴이나 하고 있다. 바이에른이 UCL 8강에서 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이적 시장에 많은 부분을 관여하는 하산 살리하미지치 이사와 수장 플리크 감독은 계속 갈등을 빗고 있다. 요즘도 충돌은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허버트 하이너 회장의 자세는 꼿꼿하다. “두 사람과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기존 선수들의 “바이에른 DNA”가 새 선수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거라고 확신했다.


글쎄. 이사진에서 충돌이 잦고, 주전 선수 몇 명 다치자 2군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데 ‘바이에른 DNA’가 무슨 소용일까. 뮐러와 킴미히, 마르티네스가 뼈를 갈아봤자 UCL 4강 진출이 아슬아슬한 이 상황에서 ‘프로듀스 101’이나 치르고 있는걸.


바이에른은 포칼도 떨어졌고, UCL도 확신할 수 없다. 리그는 어찌저찌 우승할 수 있겠지만 지난 시즌 트레블 팀의 성적 치고는 너무 초라하지 않나. 이번 4월을 반면교사로 삼야할 것 같다. 올 시즌 유망주 수확은 무시알라로 충분했다.


사진=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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