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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Aug 01. 2021

축구선수들에게 강남 스타일이란

BTS가 다 뭐야, 역시 공 좀 차는 사람이라면...

“쥐트코레아(Südkorea)! 강남 스타일!” 2014년 8월, 독일로 언어교환을 왔다가 강남 스타일의 위력에 새삼 놀랐다. 어디를 가든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전부 두 팔을 앞으로 쭉 뻗고 강남 스타일을 외쳤다. Münchner Freiheit(뮌히너 프라이하이트)역 부근 젤라토 가게 직원마저 강남 스타일 노래를 부르며 아이스크림을 펐다. 


한국에서 2012년 여름에 발매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독일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아마 강남이 서울 남동부에 위치한 지역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춤’을 추겠지. 


매년 여름 뮌헨의 레오폴드슈트라세에서 ‘스트릿 라이프 페스티벌’이 열린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잠정 중단됐는데 규모가 꽤 큰 길거리 축제다. 매일 다른 댄스 동아리가 각자의 테마로 춤을 추는데, ‘케이팝 데이’도 있다. 재작년에는 그곳에서 어린 학생들이 블랙핑크, BTS 등 최근 ‘핫한’ 스타들의 춤을 췄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 보고 있는데 맥주를 잔뜩 마시고 거나하게 취한 청년 무리가 등장해 강남 스타일을 부르고 펄쩍펄쩍 뛰며 지나가는 게 아닌가. BTS 춤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그 청년 무리를 향해 손을 뻗으며 뜨겁게 호응했다. 친구 율리아는 자기가 아는 케이팝 노래는 강남 스타일밖에 없다며 노래를 부른다. “오빤 강남 스타일~”을 흥얼거리는 그녀의 쌍비읍 발음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이제 '오파(Oppa)' 발음은 옛날이야기다. 강남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 마누엘에게 한국의 부자 동네 중 하나라고 알려주자 “역시 한국은 잘 사는 나라였어! 그러니까 제일 유명한 노래가 ‘강남 스타일’이지!”라며 신기한 논리를 펼친다. 




독일에서 강남 스타일은 아이콘이 됐다는 뜻이다. 아무리 독일 유튜브 상위권에 BTS, 블랙핑크, 레드벨벳 등이 자리해도 K-POP계의 왕좌에서 강남 스타일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럽의 우리나라 선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강남 스타일을 부를 수 없다. 평생 춤을 한 번도 안 춰봤을 것 같은 이들이 마이크를 잡고, 손을 꼬고, 펄쩍펄쩍 뛰며 신고식을 치른다. 그와 상반되는 수줍은 표정은 덤이다. 정우영은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할 때도,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할 때도 모두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라이브로 말이다. 축구 빼고 다 못할 것 같은 권창훈도 디종과 프라이부르크에서 말춤을 전파했다. 박자를 꽤 잘 맞춰 놀랐다. 발렌시아의 이강인도 예외 없었다. 평소 흥이 넘치기로 유명한 베르더 브레멘의 박규현은 경기 승리 후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괴성’에 가까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신나게 춤을 췄다. (혹자는 손흥민이 이거 하기 싫어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 안 한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왼쪽부터 박규현, 정우영, 권창훈


그래도 황희찬 정도면 그런 신고식은 필요 없겠지. 러시아 월드컵도 뛴 스타고, 무엇보다 코로나19 시국인데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고 춤을 출 순 없으니까. 라고, 그가 지난해 라이프치히에 입단할 때 잠깐 생각했다. 아니, 희망했다. 라이프치히의 황희찬 입단 공식 영상을 클릭한 후 나의 희망은 와장창 무너졌다. 상상도 못 했던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굵직한 목소리의 독일인이 “희찬 강남 스타일”을 불렀다. 황희찬의 득점 장면을 편집한 20초 동안 다섯 번 반복했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를 제치는 장면, 황희찬의 잘츠부르크 득점 개수보다 더 많은 찬사를 받은 바로 그 멋진 장면까지 강남 스타일로 뒤덮었다. 영상의 제목은 ‘황(Hwang)남 스타일’이다. 꼭 그래야만 속이 시원했나. 


기회가 생겨 라이프치히 관계자에게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미디어 팀의 기획이었다. 우리의 유명한 DJ가 ‘강남스타일’을 ‘황남스타일’로 바꿨다. 노래도 직접 녹음했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재밌게 여기고 우리 팀에 주목할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 팀 그리고 새 선수 희찬이 이목을 끌기를 기대했다. 나아가 한국 팬들이 우리 팀 소식을 계속 받아보는 효과를 기대 중이다. 물론, 희찬이 조금 부끄러울 수는 있다, 하하"


그에게 "혹시나 황희찬이 그 노래를 부를 확률은...?"이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골 좀 넣으면 부탁해보려고!"


함께 자리했던 황희찬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한동안 잠잠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나, 유럽 내 이적 소식이 좀처럼 들려오지 않은 덕분(?)이다. 


그러다 올여름 아주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드디어 이재성이 분데스리가에 발을 디뎠다. 홀슈타인 킬에서 역사를 만든 후 마인츠05로 이적했다. 그의 오랜 염원이었던 빅리그 진출은 모두를 기쁘게 했다. 심지어 등번호도 7번이다. 팀에서 그를 향한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마 이재성은 마인츠에서도 잘할 거다. 


마인츠는 한국의 스타를 품어 어찌나 신났는지 SNS를 그의 사진으로 꽉꽉 채우고 있다. 이재성은 열심히 리포스트를 하며 퍼다 나른다. 독일에서 이재성을 쭉 지켜본 나 역시 덩달아 신나서 이재성의 SNS에 올라오는 소식을 빠짐없이 받아보고 있다. 그날도 그랬다. 인스타그램을 켜자 이재성의 스토리에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왔다. 빠른 속도로 엄지를 옮겨 그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오늘은 어떤 사진이 올라왔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말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재성이다


방심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이재성이 선글라스까지 준비해와서 강남 스타일을 추고 있다. 그것도 아주 격정적으로! 흩날리는 단발머리도 같이 신나게 추는 듯한 착시 현상. 아이돌들은 머리카락으로도 춤을 춘다는데, 이재성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게다가 여긴 동료들까지 덩달아 신나서 같이 폴짝거린다. 영상이 심하게 흔들리는 걸 봐선 이 영상을 찍은 동료 무사 니아카테도 같이 추고 있었을 거다. 


그가 말춤을 신나게 추면 출수록, 동료들이 열광하면 할수록, 내 안의 내면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유일한 빅사이닝인 당신이 이 노래를 소환한 덕분에 또 향후 몇 년은 계속 강남 스타일이겠구나. 다시 한번 희망을 갖고 이재성에게 슬쩍 물었다. 언젠가 신고식 세대교체(?)가 가능할지 말이다. 


돌아온 그의 대답은...


세대교체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분위기 띄우기 위해선 강남 스타일만한 게 없거든요! 


싸이가 참, 큰일 했다. 




그동안 나는 강남 스타일에 열광하는 독일을 보며 늘 “도대체 왜?”라며 의문을 던지고, 부정했다.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며 말이다. 선수들이 다이너마이트나, 뚜두뚜두 한 번만 춰도 마케팅 효과는 확실할텐데. 우리 젊은 선수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노래일텐데. 황희찬의 라이프치히 입단 영상이 그런 나를 호되게 혼냈고, 이재성의 강남 스타일 2021년 버전이 나를 완전히 녹다운시켰다. BTS가 다 뭐야, 독일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알겠어, 알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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