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 보거스를 닮은 귀여운 축구 선수가 골을 펑펑 터뜨렸다. 최다골을 넣은 그는 '골든 부츠(Golden Boot)'상을 받았다. 토마스 뮐러다. 당시 그의 나이는 20세였다. 골 잘 넣는 귀엽게 생긴 선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내게 축구는 '월드컵'에 불과했다. 2002 월드컵에 푹 젖었던 어린 나는 축구는 월드컵 때만 열리는 스포츠인 줄 알았다. 2006 월드컵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고, 2010 월드컵도 그랬다. 거기서 뮐러라는 선수를 접한 내게 뮐러는, 그러니까, 4년을 더 기다려야 볼 수 있는 존재였다. 클럽 축구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이 열렸다. 독일문화를 전공한 나는 더욱더 독일 대표팀에 빠져들어 월드컵에 열광했다. 뮐러는 여전히 골을 잘 넣었고, 마누엘 노이어를 통해 '스위퍼 키퍼'를 배웠고, 브라질을 7-1로 산산조각 내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월드컵이 아닌 '축구'에 관심이 생겼다. 중원에서 토니 크로스가 참 잘하길래 좀 찾아보니 뮐러와 같은 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뛴다더라. 그러다가 "토니 크로스가 레알 마드리드로 간다는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크로스가 떠나면 바이에른 중원은 누가 지켜?!'
아마도, 그렇게 클럽 축구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마침 그해 여름 방학, 언어 교환 코스로 뮌헨에 왔다. 아직 축구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얼떨결에 '방금 막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린' 나라 한복판에 뚝 떨어졌다. 월드컵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마리엔플랏츠(Marienplatz)에서 독일 대표팀 응원가를 부르며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많았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독일 국가대표팀이나 바이에른의 유니폼을 사복처럼 입고 다니는 사람들,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비어가르텐에서 한껏 어울려 마시고 취하고 흥이 잔뜩 올라있는 모습, 바이에른 엠블럼이 그려진 필통을 꺼내 두고 스타벅스에서 공부하던 소녀. 1시간 동안 진행된 오픈 트레이닝장에 몰린 팬 수백여 명. 축구는 월드컵 같은 이벤트에 불과했던 내게 이런 '문화'는 꽤 충격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정원에서 작은 골대를 두고 축구하고 놀던 젊은 사람들, 기숙사 뒤편에서 테니스를 치고 배구를 하며 저녁 여가 시간을 보내던 학생들을 보며 놀랐다. 스포츠가 이렇게 일상 속에 녹아들어 있다니. 그런 모습을 보며 유럽의 스포츠, 축구 문화에 푹 빠졌다.
축구라는 스포츠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뮌헨에서의 2개월이 끝난 후, 나의 길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났다. 곧장 휴학하고 미친 듯이 분데스리가를 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리그이길래 이 나라 사람들이 저렇게 축구에 열광하는 걸까. 독일 대표팀이 우승한 힘은 뭘까. 새벽마다 해외 중계를 찾아보고, 분데스리가 구단들을 전부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너무 재밌는데 딱 한 가지 아쉬웠던 점. 한국에 분데스리가 팬이 많이 없고, 또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별로 없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세워져 있는 기분이었달까.
축구 매거진 <포포투>에 입사하고 그 아쉬움을 직접 달랠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 편집장님의 제안으로 분데스리가 콘텐츠를 매주 대형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내보내기로 했다. 입사한 지 고작 몇 개월 만에 내 이름이 달린 고정 콘텐츠가 생긴 건 정말 커다란 행운이고, 벅찬 일이었다. 선배들과 머리를 맞대고 제목을 고민하다가 '책 읽어주는 남자', '요섹남'등 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분데스리가 들려주는 여자를 만들어냈다.
하필 손흥민도 토트넘으로 떠나 한국 축구 팬들의 분데스리가를 향한 관심은 더욱더 떨어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바이에른이 지배하는 리그 이미지가 강해 부정적인 시선이 더 컸다. 분데스리가도 충분히 재밌는 리그인데 왜 이렇게 인기가 없을까? 고민해본 결과, 우선 독일어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인기가 없으니 중계도 많지 않았다. 구자철, 홍정호, 지동원이 뛰던 아우크스부르크 정도? 프리미어리그나 레알, 바르사처럼 세계적인 스타 선수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재미없는 리그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런 리그를 다루는 콘텐츠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문적이고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진지한 느낌보단, 정말 친한 언니, 옆집 누나가 들려주는 분데스리가 이야기 콘셉트로 나가기로 했다. 진입 장벽을 조금이라도 낮추고 싶었다.
(이런 콘텐츠다)
재밌게 봐주는 분들도 많았고, 거부감을 표하는 분들도 많았다. 덕분에 분데스리가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선플이든 악플이든 어쨌든 분데스리가를 조금씩 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재밌게 콘텐츠를 만들었다. 주말에 K리그 취재를 다녀오고 나서도 밤마다, 새벽마다 분데스리가 경기를 최대한 많이 챙겨보며 더 재밌는 장면, 더 의미 있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생각보다 관심을 많이 받은 덕에 네이버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에도 출연했다. 라디오 방송은 처음이라 떨렸는데 선배들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몰라도 아는 척, 어떻게든 더 전문적인 척을 해야 하는 게 방송이라고. 무엇보다 내가 '여자'라서 더 '까일'거리가 많기 때문에 그 아는 척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사전에 대본을 좀 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다. 나의 첫 라디오 출연은 처참했다. 지나치게 솔직한 탓이었다.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의 현지 평가는 어떻냐는 질문에 '응? 나는 나겔스만 감독을 실제로 본 적도 없고 무엇보다 호펜하임에 가본 적도 없는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냥 기사나 신문에서 보고 들은 걸 토대로 조금 더 살을 붙여 대답했어야 하는데, 너무 순진하고 솔직했던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걸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이후로 나는 먼지가 되도록 '까였다'. 분데스리가 들려주는 여자 시리즈에는 물론이고, 내가 쓰는 모든 기사에 똑같은 사람들이 꾸준히, 열심히 악플을 달았다 (아이디가 다 기억난다). 기사 올라간 지 1분도 안 되어서 악플이 후두둑 달렸다. 인신공격부터 소름 돋게 구체적인 악플까지... 당시 너무 무섭고 괴로워서 외출도 하기 싫을 정도였다. 밤에는 이불속에서 엉엉 울었다. 기사를 쓰는 모든 순간에 손이 덜덜덜 떨렸다. 사회에 진출한 지 겨우 몇 개월 됐을 뿐인데, 당시 아직 대학교 졸업장도 받기 전이었는데. 분데스리가 들려주는 여자로 네이버 메인에 내 얼굴이 걸릴 때마다 숨고 싶었다. 악플이 더 달리기 전에 얼른 메인에서 내려갔으면... 하고 빌었다. 이 콘텐츠 하나를 위해 밤을 꼬박 새워 축구를 보고, 독일 신문과 기사를 뒤적이고, 하루를 통째로 바친 나의 시간에게 미안했다. 또, 그 댓글을 보고 속상해할 가족도 걱정됐다. 그래도 친구들에게서, 심지어 친하지 않은 지인에게서 위로 문자를 받으며 견뎌낼 수 있었다. 주위에선 기죽지 말고 계속하라고,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격려해준 덕에 버틸 수 있었다.
속으로 이렇게 결심했다. 내가 언젠가 독일에 가서 나겔스만 감독 만나고 만다. 이 악플러들아.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독일에 왔다. 뮌헨에서 쓰는 분데스리가 들려주는 여자 시리즈로 새롭게 출발했다. 타이밍이 좋게 정우영, 이재성, 이청용 등이 독일로 진출하며 자연스레 분데스리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나는 이때다 싶어 부지런히 취재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우리 선수들이 정착하는 모습을 열심히 한국으로 전달했다. 뮌헨에 사는 덕분에 알리안츠 아레나도 주말마다 들락날락거렸다. 분데스리가 들려주는 여자 시리즈는 2018년 봄, 여름까지 하고 끝냈던 것 같다. 이후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분데스리가 소식을 꾸준히 전했다. 분데스리가의 기사 조회수가 프리미어리그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에 개인 SNS로 짧고 가볍게 소화하기도 했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에서 #분데스리가읽어주기 해시태그로 개인 콘텐츠를 쌓고 있다. 분데스리가 소식을 한국에 전한다고 하니 발 벗고 나서 도와주는 독일 동료들도 많이 만난 덕에 조금 더 퀄리티 있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아, 물론 나겔스만 감독도 실컷 만났다.
내게 축구는 월드컵이라는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토마스 뮐러를 통해 클럽 축구에 관심을 갖고, 갑자기 떠난 뮌헨에서 분데스리가의 매력에 빠지고, 지금은 독일에서 그 분데스리가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소식을 전한다. SNS 쪽지로, 블로그 댓글로, 이메일로, 곳곳에서 축구 팬들이 메시지를 보낸다. '기자님 덕분에 이 선수의 매력을 알았어요'라든지 '프리미어리그만 봤는데 기사를 읽으며 분데스리가까지 챙겨보게 됐어요'라든지. 악플 세례에 울던 나인데, 이런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짜릿하다. 이따금 독일에 있는 선수들의 격려를 받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6년 전 나는 '분데스리가 들려주는 여자를 통해 분데스리가에 입문하거나 혹은 더 즐길 수 있게 된 사람이 1명만 생겨도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그 보다는 더 큰 보상을 받은 것 같다. 분데스리가는 이제 내게, 뭐랄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같다. 코로나19로 취재에 제한이 생긴 이후 내 존재 이유에 의문이 생겼던 것도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분데스리가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난 댓글들로 인한 자괴감,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 등 온갖 힘든 시기를 분데스리가를 통해 보냈다. 동시에 이루 말하지 못할 뿌듯한 일들, 보람찬 일들도 많이 겪었다. 나의 희로애락이 담긴 곳. 내가 향후 어떤 길을 걷든 분데스리가는 늘 다루고 싶다. 더 다양한 플랫폼에서, 더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은 생각이 여전히 가득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분데스리가가 그렇게 재밌어?'라고 물음표를 띄운 분이 있다면 오는 13일(토), 현지 시간 오후 3시 30분, 한국 시간 밤 11시 30분에 열리는 도르트문트와 호펜하임의 맞대결을 추천드린다. 절박한 두 팀이라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싸울 거다. 특히 도르트문트의 9번, 덩치 큰 '베이비페이스' 엘링 홀란드가 골을 넣는 모습을 꼭 보시길.
마지막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동료가 있다.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만난 그는 조심스레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꼭 말해주고 싶었어. 같은 문화권도 아니고, 언어가 비슷한 것도 아닌 먼 타지에서 와서 이렇게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존경스럽다고 생각했어. 너를 응원해." 힘이 들 때마다 그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벌떡 일어선다. 위는 그가 찍어서 내게 보내준 사진이다. 언젠가 다시 저런 현장이 가능해지길 고대한다. 이 글을 볼리는 당연히 없겠지만, 고마움을 표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사진=정재은, Alexander Hassenstein
그래픽=포포투 디자이너 황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