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은 Jul 11. 2024

독일 회사가 극우정당을 대하는 방식

극우정당에서 광고 진행을 요청하면

AfD(Alternative für Deutschland). 독일을 위한 대안. 2013년 창당된 극우 정당이다. 이슬람 반대, 이주민 추방,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관계, 이민자의 거주권 박 등을 주장하며 독일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나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활동이 최근 들어 점점 활발해지고, 지지율이 높아지며 올해 초에는 AfD를 반대하는 시위가 독일 전역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우리 회사는 고객사들의 광고에 적합한 미디어를 플래닝한다. 독일의 모든 미디어를 다 다루다 보니 크고 작은 고객사들의 광고 플래닝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까다로운 고객사가 몇 있는데, 종교적이나 정치적인 성향을 띤 광고는 여러 가지 특별 규율이 있어 매끄럽게 플래닝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웬만하면 모든 고객사들의 니즈를 맞춰주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해부터 부쩍 AfD의 연락이 잦았다. 올해 있던 2024 EU 선거를 겨냥해 선거 활동을 더 공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보통 잠재 고객이 연락을 취하면, 프리 세일즈가 고객사의 자격 요건을 확인하고, 충족이 되면 CRM에 등록 후 광고 프로세스를 진행한다. AfD는 프리 세일즈선에서 정리가 됐다. 그들은 AfD가 제아무리 큰 버짓을 들고 와도 단칼에 거절했다. 군침이 돌만한 버짓인데도,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에 반하는 광고는 걸어줄 수 없다는 포지션이었다.


광고 요청을 하는 루트는 하나 더 있다. 우리 회사 플랫폼에서 고객사가 직접 플래닝을 해서 예약하는 시스템. 웬만하면 자격요건은 다 되기 때문에 일을 더는 장점이 있지만, 웬만하지 않은 고객사라면 귀찮아진다. 세일즈를 거치지 않고 미디어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AfD는 자꾸만 세일즈 측에서 막히자, 우리 플랫폼에 직접 들어와 광고 예약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 미디어팀에서 예약을 거절할 때는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미 돈을 지불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AfD 따위도그 절차를 거치고 거절을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고민은 하루 만에 사라졌다. 팀헤드가 스탠다드 텍스트를 작성해 우리에게 공유한 후, 앞으로 AfD가 예약하면 이 텍스트를 보내고 바로 문의 거절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Sehr geehrte/r Frau/Herr xyz,

vielen Dank für Ihre Anfrage. Bitte haben Sie Verständnis, dass eine Zusammenarbeit nicht zustande kommt. Als internationales Unternehmen mit Mitarbeiter*innen aus vielen Ländern und Kulturen setzen wir keine Kampagnen um, die gegen unsere Werte und Grundsätze verstoßen.


친애하는 xyz씨,

광고 문의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협업은 성사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이해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나라와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동료들이 있는 인터내셔널 한 회사로서, 우리의 가치와 원칙에 반하는 캠페인은 진행하지 않습니다.


짧지만 간결하고, 강한 메시지. 이걸 전달받고 왜인지 찡한 감동을 받았다. 해외에 사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 고향과 뿌리를 인정함과 동시에 자기네 사회 일원으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내가 늘 우리 회사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아무래도 한번 더 해야겠다. 이 회사에 오기를 잘했다.


외국인은 독일을 떠나라는 노래를 부르고, 아돌프 히틀러의 수염을 손모양으로 그리며 노는 젊은이들의 영상이 한창 화제가 됐다. 내 나이 또래 청년들이라는 점에서 너무 충격적이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저건 빙산의 일각일 뿐일 텐데, 앞으로 이 사회에서 저런 목소리가 계속 커지게 되면 어떡하지. AfD 지지율은 올해 역사상 최고 기록을 찍었는데.


하지만 그런 목소리가 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광고를 막는 회사가 있고, AfD를 규탄하는 걸개가 곳곳에 있고, 대규모 시위를 가감 없이 여는 독일 국민들이 있다. 외국인 및 이민자를 위해 싸워주는 것이 아니라, 독일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지만 이민자로서 고마운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일단 회사에 돈을 많이 벌어다줘야지..!



사진=정재은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회사에서 독일어는 스펙이 아닐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