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살이 9년 차, 별 거 없네

10년 차를 1년 앞두고...

by 정재은

독일살이 초년생 시절, 독일에서 10년 이상 살았다는 한국인들을 보면 어딘가 낯설었다. 내 눈에 익숙한 하얗고 뽀얀 피부와 세련된 헤어스타일, 트렌드에 발맞춘 패션 등은 그들에게서 보이지 않았다. 구사하는 문장, 말투, 외형까지 전부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인도, 독일인도 아닌 그냥 외국인 같은 느낌이랄까. 그들의 지금 마음가짐은 어떨지, 가끔은 독일어로 꿈을 꾸기도 하는지 궁금했다.


아마 한국은 생각도 안 나겠지? 독일의 짠 음식에 익숙해졌겠지? 한국어보다 독일어가 편하겠지? 내가 10년 차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던 내가 10년 차를 1년 앞둔 독일 9년 차가 됐다. 18년 1월, 캐리어 두 개 달랑 들고 뮌헨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다. 여기서 얼마나 오래 지낼지 정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9년 내내 살 거라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다짐 따위도 없었다. 그저 독일어를 배우고 싶어서, 독일 축구를 취재하고 싶어서, 뮌헨의 영국 정원에서 피크닉이 하고 싶어서 왔을 뿐이다. 순수하고 패기 넘치게 떠나온 지 9년 차가 되었는데, 자. 뭐가 달라졌을까?


사실 모르겠다. 일주일 내내 독일어만 쓰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어보다 편한 건 아니다. 가끔 독일어로 꿈을 꾸기는 하지만 일상에서 독일어로만 대화하는 주변인들이 꿈에 나올 때나 그렇다.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 생각은 더 많이 난다. 엄마의 "밥 먹으러 나와" 샤우팅, 자동으로 열리는 지하철 문과 정말 안전하게 느껴지는 안전문, 반찬 그릇이 빌 틈이 없는 한국 식당의 넉넉한 정. 독일 뉴스에서 Südkorea가 보일 때면 초집중 모드가 되고 케이팝이나 한국 시리즈가 유행할 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이 몰려온다. 독일 음식을 좋아하긴 한다. 특히 등산을 한 직후에는 짭조름하고 리치한 독일 요리가 그렇게 당긴다. 하지만 집에서까지 독일 요리를 하진 않는다. 김치를 담고, 친구들과 무말랭이를 나눠먹으며, 목살을 구워 비빔국수와 맛있게 먹는다.


1년 차의 내가 기대하고 궁금했던 그 10년 차를 앞둔 지금, 생각보다 별 거 없다는 뜻이다. 나는 여전히 9년 전과 비슷한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고 그때 듣던 음악을 여전히 즐겨 들으며, 그때 들고 온 책은 여전히 나의 책장에 꽂혀있다. 문제는... 이런 내가 한국에 갈 때마다 문득 이 세월이 실감이 난다는 것이다. 나의 피부에 맞는 파운데이션 호수는 없거나 단종되었고, 한국 번호가 없어 택시 하나 제대로 부르지 못하며, 휘황찬란한 옥외광고와 수많은 인파에 정신이 혼미하다. 모르는 은어나 유행어가 부쩍 많이 생겼고 친구들이 당연하게 사용하는 줄임말이나 어플도 나의 머릿속과 휴대폰에는 없다. 내가 입고 있는 옷과 신고 있는 신발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기도 한다. 어딘가 촌스럽게.


그래도 한국어가 들려서 좋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온사방에 보이는 한글, 한국만의 냄새, 여기저기 보이는 검은 머리,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기는 엄마.


아, 나의 고향에 왔구나. 나의 집에 왔구나.


한국어로 마음 편하게 진료를 받고, 올리브영에서 요즘 유행하는 아이템을 쇼핑하고, 독일에선 비싼 속옷이나 양말을 열심히 쟁인다. 나의 오랜 친구들이나 옛 동료를 만나 사는 이야기, 옛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새벽 2시가 되도록 환한 밤거리에서 떠돈다.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물을 감사히 마시고, 한국어로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즐겁게 시청한다.


그러니 독일에서 산 지 10년이 다 되어가도 달라지는 거 크게 없다. 한글로 글을 쓰는 시간을 사랑한다. 그때처럼, 지금도 똑같이.


IMG_6670.heic 2026년 1월 1일, 폭죽놀이로 새해를 맞이했다


글=정재은

사진=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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