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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배기 May 03. 2020

어떠한 상실도 절대적이지 않은

인문잡지 "세대"  중에서


- 영화 "벌새" -

-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이라면 약간의 스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


2019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독립영화 중 하나였던 "벌새"


199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지금으로서는 낡아보이는, 당시엔 흔했던 복도식 아파트를 배경으로 정신 없이 초인종을 누르며 엄마를 찾는 주인공 은희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이미지적인 배경과 서사적인 배경이 딱 맞아떨어지는 첫 씬의 상황은 은희가 가족으로 부터 받고 있는 소외감과 상실감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그저 집을 잘못 찾은 아이의 머쓱한 모습이라기엔 불안에 떨고 있는 아이의 표정, 이 모습을 그냥 지나친 채 일상적인 질문에만 정신 없는 엄마의 모습까지. 그 시기 학창시절을 겪었다면 느껴볼 수 있는 흔한 일련의 사건들도 소개가 된다.


영화는 그렇게 첫 장면 처럼 큰 굴곡 없이 흘러간다. 흔한 청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갈등과 저항, 성장 보다는 잔잔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은희가 겪는 많은 일들과 그 감정을 시청자가 고스란히 느끼게끔 해준다.


물론 특별한 무언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은희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학원 선생님 "영지"가 바로 그런 캐릭터인데, 사실 영지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대학생으로서 완벽한 어른은 아니었지만 은희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고, 은희가 받은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 속에서 성장하기를 응원했다.


비록 영지는 끝까지 은희의 곁에 남지 못했지만. 영지를 통해서 결국은 상처를 조금은 극복한 듯한 은희의 모습은 한 단계 성숙해진 듯 하게 비춰지기도 했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와 상실감을 극복한 것 처럼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다. 그렇지만 영화가 가진 1994년이란 시간은 꽤 특별한 시간이다. 성수대교 사고, 김일성의 죽음, IMF 이전의 호황, 서울의 흔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과 같이 영화에서 비춰진 일련의 이미지들과 은희의 시간은 뒤섞인다. 그리고 그런 큰 사건들과 엮인 주변의 모습들을 통해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마지막 은희의 모습에서 아픔을 이겨낸 것 아닌가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인문잡지 "세대"에서도 비슷한 논조로 이 영화의 해석을 다루고 있다. 절대적인 상실은 없다는 제목은 그 곳에서 발췌한 문장인데, 사실 이 말은 영지의 편지 마지막 줄의 내용이기도 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나쁜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일이 함께 닥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아름답고 신기하다"


나쁜일들과 기쁜일이 함께하고, 절대적인 상실은 없으며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서 생각과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기쁜 일들에 쉼 없이 웃기도 한다. 지옥 같은 삶이라도 살다보면 한번 쯤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는 이유가, 작은 행복이라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이 문장에서 찾을 수 있는 간단한 원리?.. 같다는 생각이든다.


가끔은 부조리하기도 하고, 화도 나지만 그래도 다들 한번 쯤 작은일에 살만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적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들 본인이 생각하는 행복한 미래를 찾기 위해 다들 이를 악물고 뭔가 달리고 있기도 하고..


물론 N포세대니 뭐니. 힘들고 지친 청년들에겐 (필자를 비롯한) 이 말이 막연한 위로의 말 같겠지만.

그런 힘들고 나쁜 일들이 있기에 같이 닥칠 기쁜 일들의 가치가 더 빛나보이는게 아닐까 싶다.


분명 세상의 부조리함을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며 끊임 없이 힘들테지만 영화는 그러면서 어른이 되어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많은 영화들에서 다루고 있는 자수성가한 대단한 청년의 이야기, 히어로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러기에 더 와닿는 이야기였고, 보통의 사람으로서 우리가 마주한 당장의 문제들에도 분명 길이 있을 것이란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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